공감, 알고보니 복종이었어

사람들에게만이라도 동물의 복종원리가 비켜 갔으면...

by 이원희

"복종을 공감으로 착각하지 말자"


요즘 공감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공감능력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수적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상대로 부터 진정한 참여와 인정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 관계 속에서는 공감보다는 복종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공감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안전에 대한 욕구이고 안전은 돈과 직결되어 있다. 아무리 거창한 구호와 멋있는 이념도 당장의 배고픔과 위험 앞에서는 의미없다. 우선은 내가 안전한게 먼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전을 보장 받고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 가치 이념과는 무관하게 우선 공감하는 척 한다. 결국 다른 형태의 복종인 셈이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상사가 무슨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표현을 한다. 그리고 상사들은 자신의 말에 도취되어 더욱 더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런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사는 자신의 생각을 직원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다른 사람과의 공감이 뛰어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회사 뿐 아니다 사회적인 계급이 존재하는 곳에는 모두 다 그렇다. 그 계층 속에 자신의 위치를 보장 받기 위해서 공감하는 척 할 뿐이다. 진전한 공감여부는 사회에 나와 동등한 위치에 되었을때 혹은 서로에게 아무런 이해관계에 놓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도 공감해 줄때 진정으로 공감능력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부모에게 고개를 끄떡이는 것은 공감해서 라기 보다는 '생존'하기 위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결국 가정에서 조차도 부모나 배우자로부터 진정한 존경과 신뢰를 끌어낼 수 없는 것이다.


교회도 비슷하다. 본인이 목사이고 장로 위치에 있으면 아무래도 교우들은 그들이 하는 말에 수긍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것이 진정한 수긍인지 복종인지 여부는 그 교우들이 뒤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봐야 알 수 있다.


이 처럼 자신의 껍데기를 벗고도 상대에게서 진정한 존중과 신뢰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고지식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어 막힌 사람으로 된다. 그때 쯤 되면 자신은 모른다. 또, 다른 사람도 더 이상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신은 여전히 다른 사람의 공감을 잘 얻고 있다고 착각하며 평생 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은근히 상대의 복종을 즐긴다는데 있다. 그래서 그 맛을 보게 되면 버리기 쉽지 않다. 공감이든 복종이든 '복종'의 형태로 나타나면 되지 그것이 굳이 공감에 의한 복종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의 속성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세계에서 마저 그 자연속성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사람이 동물과 다를 것이 없어져 버린다.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질이나 힘과 계급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복종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복종(공감)이 우리 사람들 사이에 더 퍼졌으면 좋겠다.


어제 직장 후배들과의 모임에서는 같은 팀에서 근무를 했던 직원들 6명이 만났는데, 그 중에 팀장 역할을 했던 사람만 나를 포함해서 3명이었고 지금도 그 회사 그대로 근무하는 사람은 딱 1명 뿐이었다. 어제는 당시의 계급이 완전히 무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훨씬 편하게 서로 흉금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 가운데 그 당시 후배들이 느꼈던 솔직한 감정까지 포함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여러 얘기들 속에서 어느 팀장이었던 한 분이, "어, 내가 그랬다고?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 당시 팀장의 생각은 '공감'이었는데, 직원들의 입장은 '복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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