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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Feb 22. 2019

이 도시가 없었다면... 피렌체

르네상스를 이끌다


여행8일차 피렌체


피렌체로 올라가는 동안 내려오면서 봤던 중세도시 오르비에토가 멀리 보였다. 아침이라 산꼭대기의 마을이 훨씬 선명하게 보였다. 가이드의 이런 저런 설명을 듣는 동안 바깥은 눈빨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주위 경관이 하얗게 바뀌기 시작한다. 이제 에스프레소 맛에 익숙해져 중간 휴게소도 기다려졌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의 3배 면적에 인구는 비슷한 곳인고 물가가 도시별로 차이가 많은데 커피의 경우 앉아서 마시는 것과 서서 마시는 것은 천차만별이란다. 로마 당시 도로 길이가 89,000키로라 하는데 우리나라 현재 도로 길이가 4,900키로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피렌체는 토스카나 지방에 소속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로 보면 함경도 쯤 되는 곳에 위치해 있고 날씨는 우리 나라 전라남도 쯤 된다고 한다. 이 지방은 포도로 유명하고, 단체의 신곡과 함께 최고의 종교 서사시로 평가받는 존밀턴의 실락원이 탄생한 지방도 이곳이라 한다.


피렌체는 바다가 아닌데도 중계무역을 해서 돈을 벌었는데 이것은 목숨을 걸고 했다는 의미이며 번 돈으로 바다의 도시 피사를 사버릴 정도로 부가 넘친 곳이었다 한다. 주요 수입품은 레몬과 후추 그리고 비단이었는데 레몬은 당시 유럽에 많았던 비타민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으로 인해 그 가치가 굉장하였고 후추는 장기적인 전쟁에 필요한 단백질 보충원인 하몽을 자연에서 훈제시켜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반면, 철, 옷감, 양모는 내다 파는 품목이었다. 이런 무역과정에서 도둑들에게 돈을 뺏기는 일이 흔해지자 금융업이 발달하게 되어 세계 최초 어음도 생기게 되고 1434년에는 현재와 같은 은행도 설립되어 상업활성화에 도움을 주게 되는데 당시 유럽에 92개의 은행 지점을 둘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불효하는자, 배신자, 고리대금업자가 지옥에 간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를 면하기 위해서 성당을 짓고 그 성당을 꾸미는데 돈을 투자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예술과 과학으로의 연결되어 르네상스로 이어지게 된 것이라 한다.


1507년에 길드조합이 만들어졌는데 길드는 조합으로 운영하고, 한 회사에서 만들 수 있는 물량정해 준단다. 길드에 소속된 배가 좌초되면 나머지 가족들 도와주게 되며 조합에 들지 않으면 정계등 활동이 불가하므로 무조건 가입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가장 돈 많은 길드가 양모길드. 하지만 이 나라는 양모가 많은 나라가 아니므로 프랑스와 영국에서 들여와 이곳에서 양모를 가공하여 수출하면서 뛰어난 양모가공 기술을 갖게 되었다 한다. 이런 조합이 발달해 오면서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재벌이 생기면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 때문에 재벌이 거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피렌체에 도착하자 약간의 비가 내렸으나 우산이 필요없을 정도가 되더니 곧 맑게 개었다. 정말 변덕스런 날씨였다.


꽃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피렌체는 32만 정도의 도시인데 중세 때도 그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의 도시규모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시라고 했다. 당시에 잘 나가는 국가의 수도 인구가 5만 정도였다니 피렌체는 그 여섯 배 규모였던 도시였던 셈이다. 이곳이 이렇게 상업이 흥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서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중개무역을 통해서여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부를 이룬 대표적인 가문이 메디치 가문이고 메디치 가문은 그렇게 축적한 부를 미술과 건축등 예술에 투자함으로써 우리가 세계 최고의 화가로 여기는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비롯해 수많은 천재들이 르네상스시대를 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잘나간 메디치가 - 코시모, 로렌초, 레오10세 교황, 클레멘스7세 교황]


피렌체는 천재의 도시로도 알려져있다. 앞에 말한 화가뿐 아니라 천문학자 갈릴레오, 신곡을 쓴 단테, 마키아벨리, 그람시와 같은 천재 450여명을 배출한 도시라고 한다. 당시 두 집  건너 한 집에 천재가 있을 정도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동네 구장도 잔디구장일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고 자살율이 가장 낮은 도시이란다.


처음으로 이동한 곳은  피렌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언덕이었는데 중앙에는 청동으로 된 거대한 다윗 동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윗은 성경에 골리앗을 때려눕힌 영웅으로 남북이스라엘 왕국을 통일(?한 인물이다. 미켈란젤로가 1501년 26살에 시작하여 28살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붉은 색 지붕으로 도배한 듯한 피렌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도시꽃이 붉은 백합이라 의무적으로 붉은 지붕을 사용하게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저멀리 돔형식의 두오모 성당이 보이고 그 옆에 종탑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도시를 가로지는 아르노강과 그 강을 가로지르는 유명한 베끼오다리 등이 눈에 들어왔다.


1345년에 건설된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피렌체를 관통하는 아르노 강의 가장 폭이 좁은 곳에 건설되었다. 이 다리 위에는 상점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원래는 푸줏간 등이 많아 악취가 풍기는 곳이었는데 다리 가까이 있는 궁전에서 페르디난도 1세가 궁전 주변에 어울리는 보석상과 같은 상점으로 들어서게 했다고 한다.


다리에는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금 세공업자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강변에 단테와 그의 연인 베아트리체가 만난 장소여서 더욱 유명한 다리가 되었는데, 다리에는 사랑의 징표인 자물쇠가 많이 채워져 있다고 한다. 우리는 멀리서 지켜보며 설명만 들었다.

[베끼오다리, 인터넷사진]


그리고 점심때가 되어 식사하러 가려다가 일정이 바뀌어 시뇨리아 광장에 먼저 가게 되었다. 가는 동안 돌로된 바닥에 개똥을 조심하라고 해서 긴장하면서 이동하게 되었지만 생각만큼 거리가 지저분하지는 않았다. 광장에 다가가자 이곳 천재들이 묻혀있는 장소인 성십자가성당(산타크로체 성당)이 나타나고 곧이어 입구에 동상 하나가 나타났다. 그 동상이 바로 단테였는데 신곡을 쓰기 전에 단테는 이곳을 쫓겨나 베네치아를 다녀오던 중 라벤나란 곳에서 객사하여 라벤나 성당에 묻혀 있는데 돌려주지 않아 이 성당에는 그의 가묘만 있다고 한다. 이 곳에 묻힌 대표적인 인물들이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마키아벨리, 로시니 등이다. 그리고 단테의 가묘가 미켈란젤로와 나란히 있다고 한다.

단테 동상


시뇨리아는 시의회로 과도정부 공화정이 있던 자리였다. 지금도 이곳 광장에서 피렌체의 주요한 기념행사들이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 광장에는 마치 조작 전시장과 같이 곳곳에 조각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런 귀중한 조각을 이렇게 사람들이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방치(?)해도 되나 싶은 정도로 많았다. 광장에는 원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동상이 있었던 자리에 복제본이 놓여 있었고 그 좌편에는 헤라클레스 상, 그리고 그 우측 강당과 같은 곳에 다양한 조각물이 놓여있었다. 거기에는 사비니 여인의 약탈상도 있었다. 사비니 여인의 약탈상은 고대 로마 시대 때 로마를 세운 로몰루스가 로마의 인구를 늘리기 위해 인근 마을의 사비니 여인을 초대한 뒤 약탈해 가는 장면을 묘사한 석상이라 한다.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상]


[사비니 여인의 약탈]


[야외박물관처럼 설치되어 있는 조각상들]


머리를 크게 만들고 오른 손은 올리고 다리는 길게 만든 다비드 상

머리가 큰 것은 사고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하고 다리를 길게 한 것은 그리스 조각을 형상화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밑에서 보았을때 완벽한 상이 된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메디치 가문은 두 명의 교황과 2명의 프랑스 왕비를 배출한 가문이다.  대단한 가문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두 사람이 아래 동상의 코지모와 그의 손자 로렌츠다. 둘 다 문화 예술 과학에 많은 후원을 한 인물로 코시모는 현대 기업경영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 한다. 예술자, 성직자 등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을 모아 네트워크를 만들어 창조와 혁신적인 성과를 내는 것을 '메디치 효과'라고 한다.

[코지모 메디치 1세 기마상]


베기오궁은 13세기에 지어져 피렌체의 중앙 관청으로 사용되다가 16세기 부터는 메디치가의 궁정으로 사용된 곳이라 한다. 현재는 피렌체의 시청사로 사용하고 일부는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베끼오 궁]


또한, 광장 모퉁이에는 이곳 유명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우피치 미술관이 있었다. 우리 일정에는 우피치 미술관 관람이 없어 외형만 보았는데  원래 우피치미술관은 메디치가의 집무실로 메디치가에서 소장하던 미술품을 전시한 곳이었는데 대중의 공익을 위해 제공한 것이라 한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의 수집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특히 보티첼리의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인터넷 자료]


그리고는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했는데, 이번 여행은 가격이 낮아서 그런지 식사가 좋지 않아 큰 기대는 않았는데 이 곳 음식점은 1300년대 건립된 건물로 입구에서부터 궁전에 들어가는 느낌의 스파게티 레스토랑이었다. 내부에는 북적이는 인파로 외부에서 보는 그런 품격있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스파게티 본 고장인 이곳 스파게티 맛은 내 입에는 부드럽고 괜찮았다. 접시를 포개서 먹는 것이 이 쪽 문화인데 움폭 파인 접시에는 스파게티, 납작한 접시에는 고기를 담아 먹으면 되는데 후루룩 소리를 내서 먹는 것을 가장 나쁜 매너라 한다.  처음엔 의식하면서 조심해서 먹다 그냥 우리식대로 후루룩 소리내며 먹었다. 늦은 점심인데다 맛도 괜찮아서였는지 한 접시 더 시켜서 넉넉히 먹었다. 이어지는 돼지고기 요리와 야채는 그저그랬다.


점심식사후에 이동한 장소는 이곳 두오모성당이었다. 피렌체 두오모는 1296년에 공사 시작해서 두번이나 중단되었다가 성당지붕이 없는 상태에서 완성되었다가 1420년 수학천재가 판테온을 보고 그 공법으로 돔을 올리고 우리나라 고려중기때인 1436년에 140년이나 걸려 완성되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4번째 규모의 성당이고 원래 이름은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라고 한다. 이곳 역시 내부 관람시간은 나지 않아 외부만 관람하게 되었다. 스페인, 영국, 프랑스에서부터 계속 성당을 봐온 터라 성당이 거기서 거기란 생각을 하면서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 마자 또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외벽이 다른 성당과 달리 세가지 대리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흰색, 분홍, 청색의 조화 속에 만들어진 외벽과 그 웅장함은 또 다른 성당으로 인정받기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관리하는 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2곳을 인도의 타지마할과 이곳 피렌체성당을 선정했다는게 이해되었다.


이곳 두오모성당은 로마에서 자주 보이는 고딕양식에 르네상스를 이끈 이곳의 르네상스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라고 했는데 그것의 특징적인 것이 바로 거대한 돔이라고 했다. 실제 이 건축물은 돔 없이 완성되었다가 그 이후 천재 수학가... 에 의해서 16년에 걸쳐 이곳을 완공했다고 한다. 처음 이 성당의 건립을 기획한 사람과 이후 돔을 완성한 설계자가 나란히 앞 건물 벽에 두오모를 바라보는 자리에 커다란 부조물로 새겨져 있었다.


아래 조토의 종탑은 82미터 높이로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한다. 이 건물을 따로 건립되었는데도 전체 두오모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오모성당 옆 건물에 미켈란젤로가 이 곳을 들어가면 천국과 연결되겠다고 황금으로 장식된 문을 가진 세례방 건물이 놓여 있었다. 여러 각도로 기념 사진을 남기고 다시 버스에 올라 4시간 여행으로 이탈리아의 마지막 여정인 베네치아로 향했다.

[기베르띠 천국의 문, 인터넷 사진]


피렌체 두오모성당 조감도, 인터네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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