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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Feb 18. 2019

로마를 봤다

Rome was not built in a day. 인정!

오전에 바티칸을 보고 오후 로마 시내 관광에 나섰다. 이탈리아의 수도이고 도시 전체가 관광지라는 로마, 오후에는 다행히 비가 그쳐 관광하기에 좋았다. 밴츠투어를 택하지 않은 일행은 걸어서, 우리들은 카니발과 비슷한 벤츠 차량에 탑승해서 투어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밴투어를 택한 것이 걸으면서 관광하는 것보다는 좀 더 많은 관광지를 보게 되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로마

인구 2,869,461명 (2014)  

면적 1,285.0㎢  (서울면적 2배)

언어 라틴어  


만신전 판테온신전


가장 먼저 이동한 곳은 판테온 신전이었다. 판테온은 판(모든)+테(신)+온(장소)란 의미로  로마가 그리스도 국가가 되기 전에 수많은 신을 모신 곳이었다는데 지금은 성당으로 활용하니 유일신을 모시는 장소로 용도가 바뀐 셈이다. 기원전 27년 아그리파가 처음 세웠고 화재로 AD125년에 새로 세웠다고 하는데 그렇더라도 1900년 가까이 된 건물인 셈이다.


나는 오기전에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햇갈렸었다. 바깥에서 외형을 보고 안에 들어가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대단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높이의 돔이 기둥하나 없이 거대한 공간을 만들고 있었는데 중간에는 지름 9미터의 완벽한 원으로 뻥 뚫려 있었고 별도의 조명이 없이 돔 천정 구멍의 빛만으로 내부를 밝히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그 구멍 바닥에는 약간의 물기만이 있었는데 오전에 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빗방울이 그 구멍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고 나서 가이드가 요구하는 곳에서 포즈를 잡고 기념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는 신전 내부를 둘러 보았다. 신전 내부에는 라파엘로의 유골을 모신 곳이 있어 사진으로 남겼다. 바깥에 나와서도 사진 찍는 포인트에서 여러 기념 사진을 남겼다.

[라파엘로가 묻힌 관]

[뚫려 있는 판테온 돔 천정]


판테온 신전은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도록 설계되었고 꼭지점을 이으면 완벽한 정삼각형을 이룬다고 한다(건축학자 정태남님 설명과 자료)


고대 전차경기장(차르코 마시모)

전차경기장은 우리가 영화 벤허에서 본 것과 같이 황제와 시민들이 전차시합을 관람하던 곳이었는데 기원전 7세기 경에 만들어졌으며 수용 인원이 25만 명이나 되었다 한다. 이 곳이 더 유명해진 것은 이 곳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라 한다. 넓게 확트인 공간에서 옛날 그 모습을 상상하며 엄지를 위 아래로 표시하던 황제를 흉내내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전차경기장 복원도, ENJOY 이탈리아 인터넷 자료]


콜로세움

로마 최고의 랜드마크라 할만한 콜로세움 앞으로 갔다. 베스파시아누스황제는 아들 티투스와 함께 이전 네로황제를 거치면서 나빠진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시민들을 위한 공공시설을 대대적으로 건립하는데 공중목욕탕이나 콜로세움과 같은 원형경기장을 세우는 일이었다. 콜로세움은 72년에 축조공사를 시작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죽고 그 아들 티투스가 이어받아 AD 82년 전체 4층 중 3층까지 건립 후 100일동안 개막행사를 벌였다고 한다. 그때 희생된 맹수 만도 5000마리라고 한다.

당시 5만명 이상 수용하던 지금의 종합경기장 같은 곳인데 각 문을 통해 30분 만에 들어가고 나갈 수 있고, 물을 채워 해전을 치를 수도 있도록 물을 넣었다 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니 과연, 세계7대 불가사의중 하나라 할 만하다. 층별로 다른 형태의 문양인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기둥 모양을 설명해주었는데 학창시절 도리아와 이오니아식이 늘 햇갈려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원래는 지붕도 있고 엘리베이터식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건물 외벽의 구멍이나 뜯겨나간 부분은 중세 교회건물을 세울때 가져 간 것이라 한다.

콜로세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가이드의 주문에 따라 어색한 사진을 남겼다.



개선문

콜로세움을 지나 나타난 건축물은 개선문이었다. 로마에는 여러 개의 개선문이 있단다. 콜로세움 옆에 있는 이 개선문이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서로마 통일 기념으로 세운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마주하는 개선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보이는 개선문인데 티투스황제 개선문이라 한다. 나머지는 포로 로마노에 있는 아우구스투스와 세베루스황제의 개선문이다. 이곳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에 영향을 받은 것이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이라 한다. 황제들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때 통과했다는 했다는 이런 건축물은 당시에 시민의 사기를 높이고 국가의 자부심을 위해 만들었다는데 이런 건축물을 만들면서 힘들었을 시민들을 생각해 보면 특권층의 사기와 자부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멀리 보이는 티투스 개선문]


진실의 입

다음 가이드를 따라 이동한 곳은 그리스정교 성당 한쪽 벽에 걸려있는 진실의 입이라는 상징물로 갔는데, 비수기이고 운이 좋아 줄이 많지 않았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성수기에는 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기 위해서도 몇 시간을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진실의 문 조각은 하수구 뚜껑이었는데(확인된 바는 없다고함) 이것에 손을 넣었을때 거짓말을 할 경우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있는데, 중세 일부 영주들은 실제로 사람들에게 손을 넣게 해서 손을 잘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한다. 우리 순서가 되어 두 사람이 같이 손을 넣고 아픈 표정으로 그리고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을 남기고 안의 성당으로 들어 갔다. 성당에 들어가자 바로 왼편에는 어떤 분의 무덤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2월 14일을 기념하는 바렌타인 신부의 무덤이란다. 그리고 연결된 성당을 관람했는데 그리스 정교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일반 성당과는 사뭇 달라 몇 컷의 사진을 남겼다.


나오면서 건너편에 멋진 건축물이 있어 물어보니 헤라클래스 신전이라고 했다. 과연 로마는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이동하면서 고대 아파트였다는 곳을 지나쳤다. 당시에 13층 규모로 건립했다고 하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접근이 힘들어지니 하층민이 살고 아래층에 부유층이 살았다고한다.


포로로마노

고대 로마 시대의 민주 정치와 상업, 법률의 중심지였다. 한 마디로 최고 번화가였다고 보면 된다. 얼핏 보면 폐허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 발굴을 계속하고 있고 당시 발전상을 보기 위해서는 최고의 장소라 한다. TV에서 굉장히 상세하게 건물별로 설명이 있었는데 우리는 남은 잔해와 용도를 매칭하지는 못하고  멀리서 기념사진만 남기고 자리를 옮겼다.

[포로 로마노, 인터넷 사진]

[포로 로마노 약도, 인터넷 사진]


트레비분수

또 하나의 로마의 상징이라는 트레비 분수로 갔다. 트레비는 세 도로에 있는 분수란 의미란다. 모두들 생각보다는 적은 분수라고 했는데 내 머리 상상속의 규모와는 비슷했다. 분수에서 동전을 던지기에 앞서 주위 가게에서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본젤라또 맛을 보기로 했다. 하나당 3유로 정도 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분수 앞에서 일행들과 포즈를 취했다. 많이 달지 않고 먹을만한 아이스크림이란 생각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난 뒤 분수 주변으로 다가갔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 소매치기를 경계하며 분수앞에서 동전을 던지며 사진을 남겼다. 중앙에 있는 동상이 바다의 신 넵튠이고 주위에 있는 조각들이 반인반어의 해신 트리튼이란다. 이곳에서 뒤로 동전을 던지면 한 번 성공하면 다시 오고, 두 번 성공하면 운명의 사랑을 만나고 세 번 성공하면 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속설이 있다는데, 옆에 아내가 있기 땜(?)에 한 번만 던져 보았다. 이 곳에 던져지는 동전은 연간 19억원에 이르는데 과거에는 모아서 자선단체에 기부한다고 하다가 경제가 어려워진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단다.


통일기념관

통일기념관은 476년 분열되어 도시국가 형태로 있던 1870년 이탈리아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시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한 곳이라 했는데 그 규모가 어마 어마했다. 에마누엘레 2세 동상 아래에는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모태가 되었다는 여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사방에 웅장하고 멋진 조각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


그 동상 앞에 펼쳐져 있는 광장이 베네치아 광장이었다. 베테니아 광장 왼편이 베네치아 궁전인데 이 곳에서 뭇솔리니가 20년간 머물렀던 장소이고 2차대전 참전을 선포한 장소라 한다. 매년 6월 2일이면 이곳에서 이탈리아 통일기념 행사가 개최된다고 한다.



벤츠를 타고 다녔지만 걷는 거리가 만만찮다. 차량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이렇게 바삐 관광을 하고 도보로 관광하는 팀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그곳은 스페인 광장이었다. 스페인 대사관이 자리잡은 이후로 스페인광장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 광장과 계단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햅번이 걸어내려 오면서 더욱 유명세가 붙었다고 한다. 헤어졌던 일행들이 광장 분수가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과거에는 이곳에서 본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즐겼으나 거리가 더럽혀지는 바람에 현재는 금지되었다고 한다.

[스페인광장 , 인터넷사진]


이동하면서 가이드가 이탈리아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으나 체계적으로 기록을 못했지만 몇가지 생각나는 것을 정리해 보면, 이탈리아는 봉건제를 거치면서 도시국가 형태로 발전하여 도시마다 성벽을 구축하였다고 한다. 척박한 땅이라 농경과 목축을 함께 하며 올리브, 포도, 밀 같은 작물을 주로 경작했는데, 콜럼부스가 들여온 옥수수나 감자는 오래 지으면 땅이 척박해지므로 적당치 않았다고 한다. 석회질이 풍부해서 작물은 잘 자라지만 마시기는 힘든 물이라 식수가 귀한 편이란다. 호텔에 있는 물도 거의 수돗물 수준인데 좋은 호텔의 물은 가져가면 난리가 날 정도로 생수의 가치가 크다 했다. 의료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응급실에 가도 돈을 내지는 않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기본 열시간이며 설사 그렇게 죽더라도 의사가 책임지지 않는단다. 의료보장시스템은 우리나라 시스템도 이제 남부럽지 않을 정도는 된 것 같다.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연결하는 중심에 있어 세력이 클 때는 유럽 전체로 뻗어나갈 수 있지만 반대로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기도 쉬운 지역이다. 몇 번의 십자군 전쟁도 이탈리아 도시국가가 번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이때 가장 부를 많이 축적한 곳이 다음에 관광할 피렌체다. 이렇게 해서 축적된 부는 노블리스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거상들 덕분에 르네상스의 발판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탈리아는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도로사정이 열악하고(실제 이동할때 도로가 정비되지 않은 곳이 많았음) 관광수입의 의존도가 높아져 관광객들에게 진입세와 같은 세금을 자꾸 높여 재정 충당에 보탠다고 한다.


이제는 피렌체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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