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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Mar 04. 2019

프라하마저 내 눈 안에

지칠 틈을 주지 않는다...

잘츠부르그에서 체코 프라하까지는 우리 나라 서울 부산 거리다. 버스로 그것도 눈길에 이동해야 하므로 4시간에서 5시간 가량 걸린다. 버스 출발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점점 눈발이 강해지면서 버스 주위의 배경이 흰색으로 덮히기 시작하더니 이런 눈길 속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운행하는 버스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나중에 가이드가 한 말이지만 버스가 길을 잘못들어 하마트면 오도가도 못할 지경이 될 뻔 했다고 한다. 출발후 세 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조그만 휴게소에서 쉴 수 있었다.

마지막 일정 경로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 도로를 이동함]


도나우강 린츠지역 지남


힘들게 국경을 넘어 프라하에 진입하니 눈비가 섞여 내리고 있다. 그래서 점심 먹으려고 간 시간이 오후 2시다. 이곳 현지 가이드를 만나자마자 구시가지를 번개같이 횡단하여 식당으로 향했는데 허기 때문인지 이곳 인기 메뉴라는 등갈비가 맛있다. 우리나라 패밀리 레스토랑의 립 특선 정도로 보면 되겠다. 등갈비에 일행중 한 분의 자녀가 금융권 취업했다고 한 턱 내는 바람에 기분 좋게 이곳 체코에 유명한 맥주라는 흑맥주와 라거까지 곁들일 수 있었다.


체코

인구 10,625,250명 (2018 추계)  

수도 프라하  (인구 130만 명)

면적 78,865㎢  

민족 구성 체코인(90%), 모라비아인(4%), 슬로바키아인  

언어 체코어  

종교 로마가톨릭(27%), 개신교(2%), 그리스정교(3%)

화폐 크로니 : 25크로니가 1유로에 해당


솔직히 나는 여전히 체코슬로바키아인 줄 알았다. 1918-92년 보헤미아 모라비아 슬로바키아와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로 있다가 1993.1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독립했다고 한다. 인구 천 만에 면적은 우리나라 80%쯤 된다.  종교는 로마가톨릭이 많기는 하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이 전체의 35% 정도 밖에 안되다. 신기해서 다른 자료를 찾아봐도 마찬가지다. 수도는 프라하이고 제 2의 도시는 부루노인데 생물학자 멘델이 탄생한 곳이란다.


이 나라를 관통하는 강이 블타바강 영어식 발음으로 몰다우강인데 체코의 젖줄 역할을 한다. 이 강의 이름은 이 나라 민족주의 작곡가 스메타나에 의해서 우리에게도 익숙해졌다. 스메타나는 체코 음악아버지로 불리우며 1948년 6월 혁명에 적극 가담하면서 예술가의 사회참여의 선구자가 되어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분이다.  이곳 시민회관 이름도 스메타나홀인데 매월 5월이면 스메타나의 '나의조국'이 연주되면서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가 시작된다고 한다.

블타바강, 도나우강
체코 시민회관, 스메타나 홀, 왼쪽 건물은 화약탑
스메타나, 다음백과자료


맥주라 하면 흔히 독일맥주를 생각하기 쉬운데, 버드와이즈 원조가 체코다 그리고 모라비안 화이트와인도 유명한데 이곳이 종주국이라고 한다. 음식은 훈제 폭립과 같은 등갈비와 우리 족발 같은 꼴레뇨, 온천수로 만든 밀병이 유명하다. 인형극 마리오네트가 유명하여 보헤미안 크리스탈과 마리오네트란 인형이 이곳 최고의 기념품이라 한다.

마리오네뜨가게, 인형극의 본 고장 체코


프라하 시내를 차로 이동하다 보면 승차감이 굉장이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고풍스런 돌바닥으로 되어 있어 그렇다. 그리고, 가이드말로는 체코는 현대건물과 옛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인데 춤추는 건물이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 어디를 가나 유대인 강제이주구역이나 빈민가를 호칭하는 게토구역이 있는데 프라하에도 유대인 거주 구역이 있다고 한다. 대학살의 슬픈 역사를 가진 곳이지만, 지금은 상제리에거리처럼 명품거리로 바뀌었다 한다.(일정상 가보지 못함)

승차감 주범
춤추는 건물, 인터넷 자료
프라하 게토지구에 있는 참혹하게 학살된 유대인 상징 동상, 인터넷 동상


식사를 마친후 본격적인 프라하 시내 관광이 시작되었다.

식사장소를 이동하면서 가이드의 안내를 몇 군데 받았으나 말이 너무 빨랐다. 말 속에 유머까지 섞여있어 더욱 정보 만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1등으로 가이드 자격증을 획득했다는 말에 은근 기대했던 것이 실망감으로 변해 버렸다. 나중에 말을 천천히 해주길 부탁했는데 속도는 조금 달라졌으나 입 속에서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인해 알아 듣기가 너무 힘들었다.

주요 방문지


식사 장소로 이동할 때 팔라디움이라는 백화점과 무슨 공연장, 카를대학교 등을 지나치면서 얘길를 했는데 자세히 듣지 못했다. 아무튼 이 곳은 카를 황제가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곳곳에 있는 그와 관련된 건물들이 말해 주고 있었다. 까를 5세가 이곳에서 추앙을 받는 이유는 까를 5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는데 당시 점령지역이 동서로는 스페인(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1세임)에서 오스트리아까지, 남북으로는 네덜란드에서 나폴리왕국까지 어마 무시한 지역을 통치할때 수도를 프라하로 했기 때문이라 한다.

모든 쇼핑이 가능하다는 팔라디움 백화점
[까를대학교]


모짜르트의 돈조바니를 프라하에서 초연을 했다고 해서 만들어진 기념 동상이다. 나중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영화를 보니 모짜르트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내고 난 뒤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태에서 1789년에 만든 오페라인데 프라하에서 처음 연주를 했다고 한다. 내용은 귀족들의 권력을 이용한 사랑과 권선징악을 표현한 오페라.

돈조반니 초연 기념동상


[구청사와 천문시계]

천문시계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대한 원형 두개로 만들어진 시계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가이드는 시계를 바라보며 시계 주위의 조형물에 대한 설명을 빠른 말로 진행했으나 잘 알아 듣지 못했다. 이번 여행기간에도 천문 시계를 몇 군데서 봤는데 지금도 작동되는 기준으로는 가장 오래된 천문시계라 한다. 매 정시마다 해골모형과 예수님의 12제자 인형이 돌면서 시간을 알리고, 마지막에 닭울음으로 마무리 하는데 해골모형은 인생을 무상함을 의미한단다.

중세천문시계, 시계 위 창문에 인형이 돌고 있음


[틴교회과 구시청사]

천문시계를 보고 나서 바로 큰 광장과 뾰족하고 거대한 첨탑 2개를 맞았는데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시커먼 첨탑은 광장 분위기와 멋진 조화를 이루었는데 틴교회라고 한다. 그 첨탑은

아담과 이브를 상징하는데 크기가 다르다. 바깥에는 고딕양식이지만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미사 때 외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한다.

위에서 본 틴성당과 광장, 인터넷 자료


[얀후스동상]

광장 중간에는 그의 순교 500주년(1915년)에 세워진 이 나라 국민 영웅 얀 후스 동상이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었다. 얀 후스는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당시 이 지역 토지의 80%가 성직자 소유)을 주창한 사람으로 체코어를 쓰는 사람 중심의 민족주의 개혁을 앞장선 사람이라 이 곳 사람들에게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잘못을 인정하면 풀려날 수 있었으나 거절하여 화형 당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농민들이 봉기하여 기독교 군대와 전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개혁지도자 27명이 이 광장에서 단두대에 처형당하게 된다고 한다. 광장바닥에 그 십자가 표시를 해서 기념한다고 한다. 얀 후스 동상에는 "진실을 사랑하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지켜라"라고 새겨져 있다.


[자유시간]

어느 정도 설명이 끝난 뒤 광장에서 몇 십분간 자유시간을 주었다. 바닥에 흰색으로 X표시가 된 곳이 24명의 순교와 단두대를 나타내고 있다해서 기념 사진으로 남기고, 광장 한 바퀴를 돌고 이곳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굴뚝과자(뜨르들로)를 하나 사서 일행과 나눠 맛 보았다. 맛은 그럭 저럭... 아마 금방 밥을 먹은 상태라 그랬을 수도 있겠다.


이어서 앤틱 자동차를 타고 시내를 일주하는 여행이었는데 차 모양이 장난감처럼 예뻤다. 과거에 실제 굴러가던 차량이라는데 바닥이 돌로 되어 있어 승차감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비가 흩날려서인지 비닐로 덮혀 있어 사진도 찍을 수 없고 바깥도 제대로 볼 수 없어 괜히 이 선택 관광을 했다고 후회하면서 프라하 시내를 돌아 다녔다. 게다가 가이드의 목소리가 우물거리듯 설명해서 잘 들리지도 않고 속도도 빨라 설명하는 내용을 짐작하면서 그냥 답답한 공간에서 시내를 한 바퀴 도는 정도였다. 마지막에 가이드가 사전에 얘기도 없었던 운전자 팁까지 줄 것을 권유해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비오는날은 특히, 완전 비추)


엔틱차량은 두 군데서 멈춰 설명하고 사진 찍을 시간을 주었는데, 한 곳은 프라하 성이고 다른 한 곳은 존레넌 담이었다. 프라하 성에 도착해서는 성 외부만 바라보며 불만 가득히 사진만 찍었는데 가이드의 재촉 가운데서도 프라하 성은 프라하 시내 전체를 조망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빨간 지붕으로 빼곡히 들어선 프라하 시내를 사진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프라하성은 다음 날 개인 관광으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프라하성 입구
프라하 성 언덕에서 바라본 프라하

[존레넌 담]

전 세계인의 낙서장이라는 존레넌벽으로 갔다. 1980년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레넌이 암살 당한 시점부터 자유와 평화를 열망하며 반 공산주의를 외치던 체코 사람들이 비틀즈의 가사를 생각하며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표현한 곳이다. 이매진 음악을 들으며 담벼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카를교]

까를교는 첫날 저녁에는 약간의 비와 함께 바람이 불어 추워서 야경을 관람하는데 급급했지만 다음 날 밝은 까를교를 다시 보며 찬찬히 관광할 수 있었다. 블타바 강을 잇고 이 있는 멋진 이 다리는 까를 5세에 의해 15세기 초에 세워졌다고 한다. 길이는 500여미터에 폭이 10미터 정도 되는데 다리 위에 30여개의 조각상이 멋지게 놓여 있고 그 중 하나가 잘츠부르크에서 가이드가 기억하라고 얘기했던 네포목 주교의 동상이었다.

네포목 주교 동상


네포목주교는 당시 황실에서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에 대한 비밀을 지키다가 이 다리 위에서 떨어져 순교하게 되었는데 그 동상 밑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동판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빠진 곳에서 다섯 줄기의 빛이 나왔다해서 머리 위해 5개의 별 모양을 달았다고 한다.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네포목 신부의 동판
야경, 프라하성이 멀리 보임
까를5세 동상


저녁 소고기 등심으로 만든 것과 빵으로 스프로 찍어 먹는 현지식(스피치코바)이었는데 이름은 스비치코바라고 한다. 맛은 괜찮았지만 점심을 등갈비로 먹은 상태라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저녁 식사후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를 타기 위해 구시가지를 빠져 나오기 전에 화약탑이 있었는데 왕과 여왕의 대관식장소로 쓰다가 17세기에는 화약창고로 사용하면서 이름이 화약탑이 되었다고 한다. 화약탑을 지나면서 나온 곳이 바츨나프 광장이었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나누는 경계에 있는 화약탑


바츨라프 광장 1968년 프라하의 봄과 민주화의 혁명이 일어났던 곳이다. 광장은 우리 광화문 광장처럼 대로로 되어 있고 광화문에 해당되는 지점에 국립박물관(국립박물관에서는 외세의 침입때 다 가져가 버려 볼게 없단다.)이 있고 그 앞에 체코인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성 바츨라프 기마성이 서있는 이곳은 체코인들의의 자유를 향한 열망이 깃들여 있는 장소로 프라하의 봄때 쏘련의 침공에 맞서 당시 학생이었던 얀 팔라크가 분신 자살한 장소였다고 한다

바츨라프 광장, 멀리 국립박물관이 보인다.


그리고 체코관광에서 듣는 말 중 벨벳혁명이란 게 있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벨벳혁명은 뭘까? 생각했는데, 프라하봄이 구 쏘련의 탱크로 무참히 짓밟힌 후에 1989ㄴ년 11월 극작가이지 인권운동가였던 하벨 대통령이 우리 촛불혁명처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시민혁명을 성공한 뒤 하벨이 대통령이 된 뒤, 연설에서 평화적으로 혁명을 이뤄냈다면서 벨벳혁명을 이뤘다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한다.

벨벳혁명을 기억하며 하벨 대통령을 추모하는 장면, 인터넷자료


체코를 한번에 정리하기 너무 많아 프라하성과 황금소로 그리고 카프카기념관은 마지막 여행 소감과 함께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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