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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Sep 27. 2019

나는 소통능력이 있다고 착각했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지금 나는 내 또래의 중장년보다는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좋은 환경에 있을 뿐 아니라 나름대로는 젊은 세대들과 친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40년이나 후배인 학생들을 늘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고,  의식적으로 학생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요즘 학생들이 듣는 음악에도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이 최근 밀레니얼세대를 위한 리더십이란 강의를 준비하면서 접한 몇 권의 책을 통해 나는 젊은이들과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감과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참 많이 듣는다. 인공지능과 컴퓨터가 급속도로 사람이 하던 일을 대체해 나가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조직에서도 그렇고, 그 조직 속에서 일해 나가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와 일하기 위해서도 공감과 소통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과거에도 공감과 소통 능력은 조직에서 중요한 대인관계 능력에 포함되어 왔지만 그 중요성이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변화속도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직장 생활을 시작할 할 때인 1990년 대만 하더라도 세상의 변화를 감지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선배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회사 경험 만으로도 큰 노력없이 직장에서 간부로 살아갈 수 있었다. 이후 관리자 반열에 있는 분들이 바빠지기 시작하더니 IMF를 거치면서 나이와 경륜이 대접받는 시대가 저물고 전문가들만이 생존하는 세상이 오면서 나이와 관계없이 평생 공부해야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제는 지속적으로 공부해도 그 변화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세상이 빨리 변하니 노력하지 않으면 이전에 알았던 것은 금세 구닥다리로 변하므로 소통이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 속도를 따라 잡으려면 현재 가진 생각과 지식을 계속 업데이트 해 나가야 한다. 과거 생각으로 뭔가 어필하려 하면 바로 꼰대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소통하기가 어려운데 공감이란 단어까지 들어간 소통은 더 어렵다. 현재 조직 속에서 마주하는 상대의 현재 행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속도만 따라 잡아서는 '공감'에 이를 수 없다.


그들을 공감하지 않은 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는 척 할 뿐 실제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다 말로하면 젊은이들의 태도를 수긍하기는 힘들지만 조직갈등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해하는 척 하는 것이란 의미다. 이런 소통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진정한 소통이라 하기 어렵다.




요즘 세대들을 일컫는 몇 가지 예를 보자.


요즘 세대들은 끈기가 없다.

요즘 세대들은 조직에 충성심이 없다.

요즘 세대들은 경제적인 부분에 너무 민감하다.

요즘 세대들은 예의가 없다.

요즘 세대들은 집안 일을 너무 챙긴다.

요즘 세대들은 자기주장이 강하다.


이런 얘기를 듣고 맞는 얘기라고 맞장구 친다면 새로운 세대에 대한 자신의 소통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반면 이런 얘기를 듣고도 그럴 수도 있을거야라고 인정하면서 접근하는 기성세대는  어느 정도 소통능력이 있는 부류에 속한다. 이런 분들은 요즘 젊은이들의 행동이 이해는 되지 않고 불편하지만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이해를 해야한다고 하는 입장을 갖는 태도라 볼 수 있다. 나의 소통 태도로 이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태도는 요즘 세대들이 그런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성장 배경과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러야 공감적 소통을 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들을 진정성 있게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태도인 것이다. 내가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세대들이 보이는 태도를 이해한 결과는 이렇다.


우선, 모든 세대들은 다음 세대들이 예의가 없고 버릇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BC 1700년 수메르시대 점토판),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말을 지금 시대에 적용해 보면 고개가 절로 끄떡여진다. "부모한테 대들고, 음식 먹을때 떠들고, 선생님을 우습게 여긴다."는 딱 우리들이 신세대들을 보면서 해오던 말들이다. 이런 말이 수 천년 전에도 같이 언급되었던 사실을 알고 나면 "각 세대들은 모두 앞선 세대보다 머리가 좋고 뒷선 세대보다 지혜롭다."라고 했던 조지오웰의 말이 이해가 될 뿐 아니라 현 세대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물론 젊은 세대의 그런 태도가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요즘 세대들이 끈기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요즘 세대들이 하는 일과 이전 세대들이 하는 일의 종류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면 대부분 성과가 나는 일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요즘 일들은 그렇지 않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한 시대이다. 과거에는 인풋이 중요한 시대였다면 지금은 아웃풋, 즉 결과가 중요한 시대다. 그래서 과거에는 함께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며 회사에서 버티는 인풋 중심의 근무를 당연시했기에 요즘 세대들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진 것이다. 요즘 세대들도 자신이 원하거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하면 열정과 끈기를 보인다. 따라서 요즘 세대들의 끈기를 원하다면 그런 일을 부여하여야 할 것이다.


인터넷이미지


요즘 세대들은 조직에 충성심이 없다.라는 말이야말로 요즘 세대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나온 말이다. 충성심의 대상이 달라진 것 뿐이다. 이전에는 조직에 충성하면 조직이 충성한 개인의 미래를 보장해 줬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큰 문제가 없으면 직장이 정년까지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줬다. 반면에 요즘세대들은 그들의 부모가 IMF와 금융위기를 거치는 동안 조직이 구성원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눈으로 보며 자랐다. 그런 세대들에게 조직에게 충성하라는 것은 넌센스다. 영국의 유명한 찰스핸드는 충성심의 방향이 첫째는 자신과 자신의 미래, 둘째는 자신의 일과 자신이 하는 프로젝트, 마지막으로 조직으로 옮아 갔다고 했다. 충성심의 대상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요즘 세대들도 충성심이 있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그들의 태도를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요즘 세대들은 경제적인 부분에 너무 민감하다.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에 민감한 것은 어느 세대나 다 마찬가지지만 요즘 세대들이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은 자라온 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이 자라면서 본 부모들은 대체로 외벌이, 즉 아버지 혼자 벌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시대였다. 언젠가부터 더 풍족한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맞벌이 시대가 되어 버렸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대된 것과도 연관이 있겠지만 양쪽 모두 벌지 않고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었다. 양 쪽이 벌면서도 주택 구입과 자녀 양육이 쉽지않아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이들이 경제문제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런 이해가 선행된다면 그들이 경제에 민감한 태도를 공감할 수 있다. 요즘 세대들은 공사 구분이 안될 정도로 사적인 일을 많이 챙길 수 밖에 없는 것도 맞벌이 시대에 누군가는 가정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한다. 이건 다른 말로 하면 자기표현이 좋은거다. 이것 역시 우리들이 현재의 세대들은 키워오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현재 세대들은 핵가족 하에서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로부터 최고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랐다. 그들을 키우면서 자기 표현을 잘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과거에는 조직에 자기 주장(표현)이 강하면 '빨갱이'라고 했다. 그냥 묵묵히 조직이 시키는대로 하길 바랬다. 또 그렇게 해도 조직이 어느 정도 그의 미래를 보장해 줬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기 표현과 자기 주장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다.


밀레니얼세대 특징, 인터넷자료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세대간 공감소통하는 일이 공부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세대차가 나는 사람 들끼리의 공감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세대들끼리의 공감도 쉽지 않다.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자란 배경, 환경이 모두 다르게 때문에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게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같은 세대끼리의 공감은 마음만 열면(이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세대간 공감은 공부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공부가 필요한 영역이 세대간의 이해 뿐이겠는가?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슈들도 공부하지 않고 언론들이나 특정 세력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흘리는 껍데기 정보로는 절대로 그들의 속셈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을 공감할 수 없다. 공감은 커녕 비난과 손가락질 행렬에 동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러했었다.)


그래서 진정한 공감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한다. 나이만 먹는다고 지혜로워지는 세대는 우리 할아버지 세대 정도에서 끝났다. 이제는 공부하지 않으면 금세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이 그렇게 빨리 바뀌고 있다. 늙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 있다. 꾸준히 변하려 노력하고 공부한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공감 능력을 유지할 수 있고 다양한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나의 공감소통능력은 하락하고 있다.

나이는 더 많아지고 세상도 더 빠르게 변하고 내 생각을 방해하는 정보들도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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