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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Oct 05. 2019

그게 소수자의 삶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전부라는 인간존중의 삶을 따라 가고 싶다


나는 대구에서 자랐고 대구에서 공부하다 서울 취업해서 줄곧 서울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서울이 고향이나 다름없지만  여전히 지인은 대구 경북지역 사람이 많다. 그렇다 보니 요즘처럼 이념적인 대치가 이루어지는 시점에는 처신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쉽게 살아가는 방법(?)을 버리고 왜 대부분의 친구들과 척을 지면서 어려운 길을 택하려 할까? 그냥 아무 말 안하고 일상 생활에 대한 글만 올리고 적당히 기웃거리며 되는데 굳이 왜 상대방을 자극할 수도 있는 이런 글을 올리며 사는 걸까?


사실 다른 사람의 미움이나 질시를 받는 일은 멘탈이 약한 내 성격상 견디기 힘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격도 소심해서 특정 정당을 가입하거나 남들 앞에서 자기 주장할 인물도 못된다. 때로는 (내 생각에) 말도 안되는 상대의 행동에는 가슴이 답답해 소화가 잘 안될 때도 있다. 이럴 때면, 아내는 나 보고 바보라고 한다. 당신이 그런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냐고....


언론, 검찰, 특정 정당의 갖은 술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을 가진 분들이 소수에 해당되지는 않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보면 나는 분명 소수자에 속한다. 내가 나온 초중등 대학교 친구들, 내가 근무했던 대기업 구성원들 대부분은 나와 생각을 달리한다. 그래서 애써 소수자의 삶을 살고 있는 바보(?)인 셈이다.


그럼에도 내가 소수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숨어서 조그만 돌이라도 던지고 있는 것은 나처럼 돈없고 힘없는 약한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시대의 소수자들은 보수를 표방하는 정권 하에서는 항상 힘들었다. 힘이 센 사람들 위주의 정책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를 비롯해서 이주민들에 대한 정책, 장애자들에 대한 대책 등 약한 사람들은 약육강식의 원리에 의해 배제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적 소수자들에 대한 핍박을 생각해 보면 더욱 더 그 사실이 명확해진다. 반면, 진보를 표방하는 정권들은 약자에 대해 더 호의적이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시대의 약자들이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편에 서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이러니이긴 하다.


그런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대부분의 경북 대구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들도 평화를 존중하고 그들도 소수자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선택에서는 갈린다. 왜 그런 일이 생길까?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 친구들이 특정 정당의 당직자이거나 기득권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정당을 비롯한 기득권의 음모에 속아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몇몇 의원들의 뻔뻔한 거짓말 행진과 그 거짓말을 옹호하는 검찰과 언론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나타나는 기득권들의 행동은 그래도 인정할 만하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런 집단에 속하지 않는 친구들이 그런 사람들의 움직임에 동원되거나 동조한다면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내가 상대적으로 더 지지하는 쪽의 정치인들도 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둘 다 같은 놈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안된다. 그 정당이 표방하는 전체적인 정책방향은 여전히 유효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걸 보고 그 정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선택된 정부도 60% 정도의 국민은 다른 정당과 정치인을 선택했었고 그 60%의 국민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의 정책을 펼치는 정부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는 있으나 부인해서는 안된다. 그게 우리가 정한 민주주의 선택 방식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정치관련 이슈의 글을 올리면 내 글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아마 지인의 상당수는 앞으로 나를 안볼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대충 생각해 봐도 몇 분은 그럴 것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 부분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전히 내 생각을 말할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해주기 바랄 뿐이다.


지금 조국장관을 둘러싼 이슈들은 조국장관 자체의 결함을 들춰내려고 하는 수준의 작업이 아니다(알다시피 지금까지는 조국장관을 검증하기 위해 가족과 친인척을 볼모로 뒤졌지만 조국장관의 청렴한 면만 부각시켜 버렸다. 이 부분에 반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언론과 검찰이 만들어내는 막무가내식 거짓정보가 아니라 그 내막을 제대로 보면 좋겠다. 현 정부를 부인하고자 하는 정당을 중심으로 검찰과 언론이 결합하여 헌법을 무시하고 만들어내는 반란수준의 시도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을 지지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어느 정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동원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어느 누구도 조국장관보다 뛰어나거나 청렴한 사람이 없다고.


나와 생각이 다른 몇몇 친구들은 내 글에 다는 자신들의 논리가 상당히 설득력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나는 여태껏 대부분의 친구 댓글이 나를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했음을 알리고 싶다. 자기 만족 차원에서 댓글을 다는 것은 자유지만 그 댓글에 대한 답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순히 자특히, 비아냥거림이 느껴지는 댓글은 다는 친구는 자신의 수준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것에 불과함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꼰대는 자신이 꼰대임을 모른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에 못 미친다고 답답해 한다.

자신의 생각을 강화시켜주는 정보만 접하고 그 틀 안에 갇혀 살면서 상대를 원망해서는 안된다.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는 그런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지 늘 공부하면서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들의 그룹 속에 속하지도 않으면서 그들 기득권의 놀음에 꼭두각시가 된다.

나를 비롯해 우리 친구들도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지인의 글에서 인용한 소설가 매큐언이란 분의 글이다.

"인류애의 핵심에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자비의 정수이고, 도덕성의 단초다."


나는 나를 둘러싼 지인들이 어떤 정치적인 이념에 있던 지금 조국가족처럼 희생자가 된다면 기꺼이 그를 위해 변호하고 그를 위해 싸울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내가 지향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게 소수자의 삶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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