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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Oct 10. 2019

주인을 속이는 머슴들...

더 이상 정치인의 욕망에 희생되지 말자

나는 지난 9월에 둘째 며느리를 맞았다.

둘째 며느리는 광주 출신이고, 부모님도 광주에 기반을 가지고 살아오신 호남 분들이다. 반면 나는 대구에서 자라서 공부하다 서울에 취업하여 지금껏 살고 있다. 이제 서울이라고 해야하지만 뿌리가 경상도이므로 영호남의 결합인 셈이다. 정치인들의 농간(?)으로 한때는 경상도와 전라도 간의 혼인이 쉽지 않던 시절도 있었지만 부모세대의 얘기지 지금은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다가 당황한 일이 있었다.


추석 명절되기 전 벌초하러 가는 길에 친척들에게 결혼 인사를 드렸다. 이제는 한 계급 위의 삼촌 반열의 어른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집안 형님과 조카들이 모여서 벌초를 한다. 서너 살 형님뻘의 한 분에게 이번에 둘째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이냐 묻길래 여차저차 설명을 드렸다. 그랬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 "광주? 자네는 며느리를 잘못 얻었구나! 어쩌다가 광주 며느리를 얻게 되었는가? 앞으로 힘들거네..."라고 말한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면서, 형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 아직 그런 식의 생각을 갖고 계신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데 주위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옆에 계시던 다른 집안 형님과 동생들도 축하보다는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조금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한 지역에서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국제 결혼도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광주가 고향인 며느리를 맞는 일에 정색을 하며 그런 말씀을 한다는게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지역별로 무조건적으로 형성된 작금의 이념 분리현상도 괜히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기가 기반을 두고 사는 지역과 그 지역에 사는 사람에 익숙해져 살아간다. 자신과 가까운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정이 가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에 대한 태도는 비슷한 정도의 비호감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특정 지역 거주자에 대해 더 많은 비호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 놓은 농간으로 봐야 한다. 이것을 신라와 백제까지 올라가 역사적인 배경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옹색하다(지금까지 남은 지역감정은 선거때마다 영호남 인구수 차이를 이용한 영남측 정치인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고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 특정 지역 사람에 대한 비호감이 더 크다면 그것을 틀림없이 그런 정치인들의 욕망에 자신이 놀아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정치적 이념이 특정 지역이 더 높은 것은 더욱 더 말이 안된다. 보수와 진보 성향은 비슷하게 나타나야 하는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 정치적 이념이 더 크게 나타난 것 역시 정치인들의 농간 결과이다. 그 속에 소속된 사람 중 상당수는 정치적 이념과 관계없이 그 지역 정치인에 부하뇌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요즘은 해외여행이 일상이 되었다. 직접 세계 곳곳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세계테마기행과 같은 TV 프로그램 영향으로 이제 앉아서 세계인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거리에 나서면 취업, 학업, 여행, 이민 등 여러가지 목적으로 방문한 외국인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특정한 지역에는 마치 외국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 말보다도 외국인들의 언어가 더 크게 들리는 곳도 종종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들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는 잘 모르겠지만(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는 상대국의 잘사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는것 같음), 여행지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다정하고 친절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낯선 이웃에게도 친절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이 일인양 도와준다. 도심을 벗어나 한가한 시골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더 그렇다. 내가 여행하면서 만난 외국인들도 한결같이 친절할 뿐 아니라 사람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국민과 국민들 간의 교감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데, 이것이 국가간의 교류로 가게되면 달라진다. 국가의 이해관계(엄밀히 이야기 하면 국가를 운영하는 몇몇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해는 철저히 감추고 국민들을 위한 일인양 포장한다. 그리고 그 포장에는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는 극단적인 우익론자들이 있다. 그들은 국내의 문제를 국외로 돌려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애꿏은 국민들을 내세워 국민들 간의 충돌을 부추기고 전쟁을 일으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몇몇 정치인들의 이익에 순수한 국민들이 이용당하는 셈이다. 우리는 그런 불행한 역사를 수없이 보아왔지만 잊을만하면 이들은 그런 행위를 반복하려한다.


인근 국가간에는 항상 크고 작은 갈등이 있어 왔다. 영국과 프랑스가 그러했고 프랑스와 독일이 그랬다. 우리와 일본이 그랬고 그리스와 터기도 그러했다. 심지어 우리가 과거 올림픽 축구에서 그리스를 1:0으로 이긴 적이 있는데 그 이유 때문에 터키인들이 우리나라를 더 좋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옆 나라를 싫어한다.  우리 나라도 일본과는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된다고 할 정도다. 가까운 나라끼리는 조그만 이해관계도 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 나라의 통치권자들은 그것을 자신의 권력 유지에 이용하게 되므로 불행한 역사적 관계가 이어진다. 그런데 내막을 보면 그 싸움 속에는 국가의 몇몇 정치인(왕이건, 수상이건, 대통령이건....)의 이해가 들어있다. 국민들은 그들을 대신해서 피를 흘리는 셈이다.


사실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들은 없다. 북한주민들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지배하는 자의 이익 때문에 전쟁의 가능성이 잠재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똑똑해야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정치인들은 평화로운 나라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때까지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언제든 국가간 갈등을 유발할 것이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그렇게 한다.  양 쪽 국민들의 피로써 자신들의 야욕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런 정치인이 필요없도록 국가를 없 버리자는 생각도 있었다. 소위 무정부론자들이다. 시민들끼리 싸우지 말고 잘 살자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편 가르기를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더욱 복잡하고 잦은 싸움에 휘말리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생겨난게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국가형태인 것이다. 그런데 그 국가를 운영하는 대리인이 주인을 갖고 노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한다. 결국은 각국 국민들이 현명해져야 한다. 그들의 지도자의 놀음에 속아서는 안된다. 국가 이익 앞에는 모든 것을 양보해야한다는 말도 의심해 봐야 한다.  그 말 속에 그 지도자의 욕망이 숨어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아베가 자신이 이익 때문에 양국 국민들을 갈등 속으로 밀어 넣는 것과 같다.


며느리 얘기에서 시작했지만 국민들 간의 갈등이나 지역간의 갈등이나 다를 바 없다.

그것들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에 속아서는 안된다. 지금 영호남 지역에서 무조건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정치인들에게 속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모두 자신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정치적 이념 비율로는 비정상적이다). 그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국민들 간의 싸움을 이용한다.  조금 물러나서 진정 사람의 생명을 위하는지, 약자를 존중하는지, 국민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약한자를 죽이고 강자만 살아야 한다는 약육강식, 즉 동물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동물이 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최근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대리인(정치인)의 모럴헤저드를 고발하기 위해 나선 우리 국민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이 위대한 것 같다.(실수, 이것도 국가주의 일종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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