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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Nov 01. 2023

이별 연습

자연원리에 아름답게 순응하는 연습

등이 크게 굽었고 털도 많이 빠졌다. 잘 걷지도 못하고 앞도 잘 못 보기 때문에 자꾸 넘어진다. 사람을 봐도 짖지도 않고, 잠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와도 한참 시간이 흘러야 고개를 들고 천천히 일어난다. 아직 청각은 살아있는지 소리나는 쪽으로 사람 주변을 맴돈다. 혹시나 좋아하는 간식을 줄까하는 생각에서 계속 발 앞으로 통행을 방해하기 때문에 그 녀석과 부딪히지 않으려 급정지하는 경우가 많다. 밟지 않기 위해 피하면서 걷다 보면 짜증이 밀려올 때도 있다.   

   

17년 전, 몇 개월 안된 유기견으로 입양되어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집 반려견, 푸들. 언젠가부터 화장실에서 대소변 처리하는 일이 어려워졌는지 거실이나 방바닥에 실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화장실 턱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 가는 길에 실례하는 경우나 그냥 우리를 쳐다 보면서 그 자리에서 실례하기도 한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이 녀석이 실례한 부분을 처리하느라 20~30분은 보내야 한다. 특히 대소변에 미끄러져 몸에 혹은 발에 묻히고 돌아다니는 경우는 최악이다. 집안 전체 대청소를 해야 한다. 이런 일이 잦아지고 있다.      


여행 가는 일도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모두 출가해 버렸으니 이 녀석을 돌볼 사람이 없다. 원격모니터링 시스템을 설치해 두었지만 여행지에서 반려견 상태를 지켜볼 수 있다는 자기만족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것도 여행 중에는 생각도 나지 않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나 한번 접속해 보는 정도다. 짧은 여행인 경우는 큰아이 부부가 여행 중간쯤에 와서 봐주지만 긴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아직 애견호텔 신세를 져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는 그래야 할 듯 하다.).    


20~30년 전쯤이면, 반려견 때문에 행동이 제약된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반려견도 가족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세상이 그래서라기보다는 뭐든 오래 함께 하면 정이 들어 함부로 할 수 없는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송이 리즈시절


우리 집 반려견 ‘송이’는 아내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결혼해 출가한 아이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나는 우리 송이를 포함해 모든 동물에 대한 정은 없다. 징그럽거나 무섭다. 송이와 같이 살면서 다른 집 반려견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 정도지 그 이상은 아니다. 그래서 송이에 대한 목욕이나 털 깍는 일 등은 모두 아내 몫이다. 나는 집안청소만 열심히 하면 되었는데, 이제 집안청소하는 일이 어마어마한 일로 되어버렸다. 스팀 청소기까지 구입해 활용하고 있지만 노년의 한 마리의 개가 오염시키는 집을 관리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란 생각에 버거워하고 있다.    

 

한편, 이 녀석이 우리를 일깨워주는 부분도 있다. 우리 부부는 일찌감치 부모님을 여의었다. 아내는 40여 년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어 결혼 당시에 안 계셨고, 우리 부모님은 결혼 후 돌아가셨으나 두 분 모두 돌아가신 지 25년 정도 흘렀다. 아내는 당시 중풍으로 쓰러지신 어머님을 1년 반 가까이 대소변을 받아내며 모셨다. 당시 나는 나의 어머니인데도 불구하고 그 일이 쉽지 않았는데 그래서 아내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우리 또래의 부모님들이 모두 80, 90 나이가 되면서 친구 부부들의 최대 고민이 부모님을 모시는 일이 된 것을 보면서 먼저 가신 부모님이 그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찍 가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도 든다.      


14세


이제 우리 나이가 60을 넘으면서 우리의 만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건강에는 전혀 문제 없어 보이던 맏동서가 80이 넘으면서 갑자기 쓰러져 지금껏 못 일어나자 70대 후반의 처형으로부터 모든 수발을 받고 지내는 것을 보면서 나와 아내의 미래 모습을 보게 된다. 보다 직접적으로 우리 ‘송이’의 노년을 경험하면서 더 실감하게 된다. 등은 구부러질 것이고 눈은 더 보이지 않고 귀는 더 안 들리고 몸의 움직임이 내맘대로 되지 않으면서 언젠가는 대소변마저 혼자 처리하기 힘든 날을 맞게 될 것이다.       

 

함께 건강하게 있다 같이 가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고, 함께 살더라도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힘든 시기를 맞을테고 남은 이는 지금 송이를 돌보듯이 챙겨야 할 것이다. 송이의 모습처럼 스스로 하는 일이 불가능해졌을 때, 나는 아내에게 혹은 아내는 나에게 어떤 대상이 되어 있을까? 의료시설의 도움을 많이 받겠지만 아마도 함께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서로에 대한 태도가 결정될 것이다. 그 삶은 은퇴 후의 삶을 말한다. 은퇴 전의 삶에서는 돈벌이에서 비롯되는 남성권력 아래서의 삶이었기 때문에 공평한 상태에서의 삶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각이기는 하지만 식물을 보면 만년도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 같다. 단풍이란 이름으로 재탄생을 위해 썩어가는 순간까지 우리에게 아름다움으로 비춰진다. 명을 다한 고목의 모습도 숭고하게 느껴진다. 식물은 자연의 순환 원리에 순응하는 듯하다. 반면, 인간은 할 수만 있다면 갖은 수를 써서라도 생명을 연장하려고 노력해온 결과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음에 이르기는 더 힘들게 된 것 같다. 마치 자연의 원리에 저항하면서 목숨을 연장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인간의 최후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의료인 조력 사망제도가 더 필요한 것 같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삶의 질이 떨어졌을 때 나의 결정으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료인의 도움으로 잠들 수 있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이런 제도가 반려견에게도 적용되면 좋겠는데, 반려견은 사망시점을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하다. 수의사의 공인증 같은 것을 활용하면 될 수도 있을 듯....     


우리 ‘송이’가 더 아프지 않고 편히 잠들면 좋겠다. 미래의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 희망으로 산다.


등도 굽고, 다리 힘도 없고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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