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

세월만으로 그저 얻어지는 존경은 없다...

by 이원희

노인 십요(老人十拗) - 이익(李翼)

노인의 열 가지 좌절(拗)이란...

대낮에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 할 때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 흐르며,

30년전 일은 모두 기억되어도 눈 앞에 일은 문득 잊어버리며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 들어가는 것은 없이, 모두 이 사이에 끼며

흰 얼굴은 도리어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지는 것이니

이는 태평노인(太平老人)의 명담이다.

내가 장난삼아 다음과 같이 보충해 보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보면 오히려 분별할 수 있는데,

눈을 크게 가까이 보면 도리어 희미하며 지척의 말은 알아듣기 어려운데,

고요한 밤에는 항상 비 바람 소리만 들리며 배고픈 생각은 자주 있으나,

밥상을 대하면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 사십대 후반의 직장후배 한 사람이 이익의 성호사설에 나오는 '노인십요拗'를 거론하며 자신도 예전 같지 않다며 푸념하는 걸 페이스북에 올렸다. 후배에겐, 넌 아직 어리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공감되는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어지간해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는 결혼여부와 연령대를 추정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10살 정도 낮게 불러본다. 그렇게 하면 맞아도 좋고 틀려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이렇게 동안의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알다시피 나이가 들면 사람의 기관중 변화에 필요한 중요한 세 곳에 장애가 오기 시작한다. 사람에 따라 그 시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누구나 예외없이 찾아오는 장애다. 처음은 눈이다. 40대 후반 이후면 아무리 좋았던 눈도 침침해지면서 돋보기의 도움이 없으면 글을 읽기가 어려워진다. 다음은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작은 소리는 잘 안들리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여러 번 되묻기도 하지만 미안할때는 대충 문맥을 통해서 고개를 끄떡거리기도 한다. 대신 목소리는 커진다. 자신이 잘 안들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음은 기억력이다. 새로운 것을 봐도 금세 잊어버리고 과거의 기억도 희미해진다. 이미 봤던 영화를 끝까지 다음을 궁금해 하면서 긴장 속에서 보기도 한다.


이처럼 시력, 청력은 컴퓨터의 입력기관에 해당하고, 기억력은 저장장치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이 세가지가 다 부실해지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변화가 어려운 것이다. 당연히 과거가 편할 수 밖에 없다. 옛날에는 60이 넘으면 환갑이라해서 인생의 황혼으로 여기며 마무리를 하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후반부 인생의 시작으로 본다. 그런데 말한 것 처럼 그 나이가 되면, 변화에 필요한 세 가지를 비롯해 신체 기능이 점점 퇴화되니 노인십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알고있는 정도를 넘어 확신하고 있는 일까지도 사실과 다른 경우가 자꾸 생긴다.


고교친구를 만나서 얘기해 봐도 그렇고, 아내랑 신혼시절을 얘기해 봐도 그렇다. 그리고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맞춤법도 틀리게 알고 있는 경우도 흔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정보가 아니고는 상대방과 서로 맞다고 티격태격 할 이유가 없다. 바로 그 자리에서 네이버로 확인하면 되기 때문에.


그런데, 살아오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일들은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따라 자신에게는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알게 된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어지간해서는 죽지않을 뿐 아니라 엑스트라들은 바로 바로 스러지거나 숨이 끊어져 버리지만 주인공은 시간을 질질 끌며 할 말 다하고 의미있는 죽음을 맞는다. 영화처럼 사람들은 각자가 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의미 있는 기억만 그것도 미화해서 기억해 둬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여기다 노화현상까지 겹치니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이가 들면, 가졌던 기억도 흐려지고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도 만만 찮게 되는데, 말은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자기 주장은 더 고집스러워진는데 문제가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본인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전혀 미안함 없이 자신있게 떠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했던 얘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것도 역시 당연하다. 기억력이 떨어지니 지난 번에 했던 사실을 잊어버리고 반복할 뿐 아니라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과거를 자꾸 반추하여 얘기를 하면서 자신에게 조금씩 유리하게 각색해서 반복한다. 매번 처음하는 것 처럼 리얼하게 얘기하기 때문에 중간게 멈추게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유머에 대한 감각도 예전같지 않다. 소재나 방법이 과거스타일이 되니 그럴 수 밖에 없다. 후배들은 억지로 웃어주는데 여전히 자신은 유머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삶의 자연스런 과정인데...


나는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여전히 아니 죽을 때까지 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그런 장애때문에 미리 포기해 버려 더 힘든 상태가 되는 것이라 노력하면 상당부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상대를 대할때 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얘기하되 상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바로 대응하지말고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얘기를 할때는 혹시 이전에 한 얘기는 아닌지 미리 반응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니면 물어봐도 된다. "이것 지난 번에 얘기한 것 아닌가? 혹은 지난 번에 얘기한 것인지 모르겠는데...."라고 운을 떼고 얘기하는 것이 좋다. 물론, 유머감각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면 접근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젊은 분들이 나이에 따른 핸디를 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변화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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