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치와 자신감

당당하자

by 이원희


나는 TV 앞에 앉으면 제일 먼저 찾는 프로그램이 각종 가요경연 프로그램이다. 내가 왜 가요경연프로그램을 좋아하는지 심리학을 공부한 아내에게 물어봐도 마땅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가요경연프로그램은 모두 다 좋아한다.


슈퍼스타K에서부터 복면가왕, 너의목소리가 들려, 히든싱어, K팝스타, 불후의명곡 등등... 사회자의 맛깔스런 진행과 더불어 출연자의 사연을 담은 감동까지 또 평가자들의 평가내용 등을 통해 가끔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또 어떤 노래들은 공감을 자아내고 감동을 주기도 한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아내도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로 출연자의 점수나 대결 승리자를 잘 맞춘다. 나는 박자감각이 좋지않아 조마조마해 하면서 노래를 하기 때문에 내게 특별한 음악적인 재능이 있어 평가를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곧잘 맞추는 것은 음악도 소통방법의 하나이고 소통의 핵심은 공감능력이기 때문에 나에게 공감을 준 만큼의 점수를 준 것이 대충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요즘은 음치라고 해서 노래를 잘 못부르는 사람들도 출연하여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냄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더해 주기도 하고, 시청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또 음치가 부르는 노래는 그 나름대로 매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노라면 세상이 정해놓은 잘한다는 기준이 얼마나 고정관념의 산물인지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노래 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천성적으로 노래를 못하게 태어난 것을 가지고 기가 죽거나 그걸로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는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해놓은 잘한다는 기준 속에 들지 못하게 되면 미리 주눅들게 되고 노래를 부르는 자리가 불편한 자리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노래방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놀이들은 잘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바둑, 고스톱, 카드놀이, 탁구와 족구를 비롯한 각종 운동경기 등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각종 놀이를 잘하는 사람들을 잡기에 능하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한 가지 잘하는 사람은 다른 분야도 잘하는 것 같다. 반면 나 같은 같은 사람은 거의 모든 분야에 재능이 없다. 이러한 여러 놀이들이 사람들간의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관계를 맺는데 적지않은 핸디캡이 된다. 이도 저도 안되는 사람이 주로 택하는 교류방법은 음주가무일텐데 이것도 만만치는 않다. 음주량이 많으면 몸에 무리가 가고 노래도 워낙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 동석자들에게 인상적인 수준까지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모든 잡기에 잼뱅이라(이것 표준말인가?) 음주라도 해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해 보지만 체력도 변변찮아 그 마저도 쉽지 않다. 그나마 재능이 있어 보이는 것 중 하나가 노래인 것 같은데 노래는 대중 앞에 나서서 하는 부분이라 늘 자신감 문제가 따른다. 노래를 하기 전에 자신감을 갖느냐 마느냐에 따라 노래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노래를 불러 본 사람은 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재직시절에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유한 사장님을 모시고 어려운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한 사람씩 노래를 하는 시간이 오게 되었다. 임원들 이상이 참석한 자리인데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어려운 상사 앞에서 하는 노래라 여간 긴장되지 않았다. 그때 내 18번은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였는데, 문제는 새로 부임한 사장의 18번이 나와 같은 '너를 보내고'란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장이 만약 그 노래를 부른다면 나는 무슨 노래를 부를까 머리 속에서 여러 노래제목이 오가고 있었다. 다행히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른 신임사장은 다른 노래를 불렀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근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겨우 겨우 노래를 마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자리로 돌아왔다. 신임 사장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 상무는 그 좋은 노래를 그렇게 재미없게 부르지..."


아무리 잘 부르던 노래도 고수나 평가자 앞에서는 긴장이 되고 원래 능력을 제대로 발휘 할 수 없다. 내가 그 자리에서 노래를 제대로 못한 것은 잘 불러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한다며 남을 의식하면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생활도 비슷한 것 같다. 내가 가진 여러가지 능력 중에 사회적인 일반 기준보다 나은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을 것이다. 특히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능력인 경우에는 내가 그 일반기준 보다 못하다고 해서 자존감을 잃을 필요는 없다. 내가 노래를 잘 못하면 못하는대로 노래를 잘하면 잘하는대로 나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노래를 잘하게 태어났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물론, 노래교습소에 가서 좀 더 나은 노래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개발하는 우선순위가 거기까지 못미치면 그 상태대로 당당하면 된다.


내 주위에도 지독한 음치인데도 불구하고 얼굴 색깔 하나 변하지 않고 끝까지 노래를 마치며 노래를 즐기는 지인들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노래를 못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술에 잔뜩 취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하던 노래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정말 본받아야 할 사람들은 전자와 같은 사람들이다. 선천적으로 노래를 못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피부색깔이 다른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


음치들도 당당해지는 세상을 보면서, 다른 삶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나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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