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사라졌다

여전히 너무 많은 사진이 남아있다.

by 이원희

사진이 다 사라졌다.

제주여행 3일째, 친구부부 네 커플과 마지막 여행날이다.

예쁜 앨범을 만들어 선물하려고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공항 도착부터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록하기 위해 수시로 눌러댔던 사진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멍해졌다. 핸드폰의 각종 기능을 눌러보기도 하고, 삭제파일이 남아있는지도 보고, 인터넷 접속하여 복구하는 방법도 알아보고 복구 어플도 받아서 실행해 보고 ... 다 소용이 없다.

서울로 돌아 가보면 무슨 대책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남은 기간 몇 커트 더 찍었다. 이제 내 카메라에 남은 사진은 마지막 날 오후에 찍은 사진 몇 장 밖에 없었다.


서울에 와서도 몇 번 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사라진 사진을 찾아보려 했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아들에게 대책을 찾아보라고 했다. 역시 몇 번 들여다보더니 방법이 없다며 다음 날 AS센터에 가보라고 했다.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다음 날 버스를 타고 AS센터를 찾아갔다. 접수에서부터 고객을 응대하는 상냥한 태도는 맘에 들었지만, 배정된 AS기사가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복구가 불가능 하다고 한다. 이제는 남은 방법이라고는 전문복구업체에 맡기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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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 카메라를 메인으로 하기는 했지만, 동행인들도 많은 사진을 찍었다. 또, 동행했던 친구 부인 한 사람은 요즘 사진을 배우는 중이라고 하면서 제출할 사진 과제 용도로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단지 나는 앨범 작성을 위해 인물 사진 보다는 배경사진을 주로 찍는 편이다. 그런 배경사진이 없을 뿐이지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함께 찍은 사진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굳이 휴대폰사진을 복구하기 위해 따로 돈을 들일 필요가 있을까 고민했다. 결론은 '아니다'였다.


사진을 찍는 이유는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기억을 들춰내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셔트를 눌러둔다. 랜드마크가 될 만한 좋은 배경이 나오면 독사진, 커플사진, 단체사진, 남여구분사진 뿐 아니라 이 방향, 저 방향 등 다양한 컷을 남겨 둔다. 과거에는 필름량에 따라 24컷, 36컷, 48컷용의 필름으로 제한되어 있어 아껴가며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은 무한대로 찍을 수 있고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서 과거 기준으로 보면 내가 날려 버린 사진은 아무 일이 아닐 정도로 수 많은 사진들이 남아있는 셈이다.


요즘은 그렇게 많이 찍어둔 사진을 보관하고 정리하는 일이 더 문제다. 과거에는 좋은 사진을 인화하여 앨범에라도 철해 두기 때문에 가끔 앨범을 들춰 과거를 회상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지금은 실컷 사진을 찍어 휴대폰에 보관해 두었다가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있다가 새로운 폰으로 바꿀때면 PC에 옮겨 두거나 그냥 슬며시 없어져 버리기도 해버린다. PC에 보관된 파일들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면 또 새로운 PC로 변경하는 과정 중에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설차 보관된 상태라 하더라도 그것을 끄집어 내 다시 보는 경우는 잘 없다. 순간 순간 사진을 찍을때는 그 순간의 그 방향의 그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카메라에 담아 놓고서는 몇 년 지나고 나면 까마득히 기억에서 사라진채 어디선가 그 사진은 잠들어 있게 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는 옛날 방식의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족여행이나 회사에서 특별한 행사 혹은 친구간의 여행이 있는 경우에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사진을 정리해서 디지털앨범을 만들어 두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앨범이 15권쯤 된다. 그렇게 해서 앨범을 만들어 두면 그나마 가끔 들춰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앨범을 만들면서 느끼는 점은 한번 여행 가면 보통 300~500장 정도의 사진을 찍어 오지만 정작 앨범에 사용하는 사진은 50~60장 정도만 사용할 수 있음을 알고서 사진 고르는 일이 엄청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도 배경사진이나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 숙박시설 등의 사진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 인물 사진은 30~40장 밖에 안된다. 나머지 사진은 앞서 얘기한 대로 그냥 PC나 휴대폰 속에서 잠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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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30~40장도 적지않은 사진이다. 과거 사진이 귀했던 시절에는 결혼식 사진 한 두 컷과 백일과 돌 사진 한 두 컷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남아있는 사진 몇 장 만으로도 충분히 그 시절 그 상황을 회상해 낼 수 있다. 오히려 그렇게 귀하기 때문에 더 잘 관리하려고 한다. 지금은 너무 많기 때문에 귀하게 여겨지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셈이다.


지금은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사진을 잘 정리해 두는 일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순간을 기억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아깝지만, 사라져버린 사진을 찾지 않기로 했다. 친구들이 찍은 사진을 받은 사진 만도 51장이다. 여기다 아내가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까지 합한다면...


차귀도, 거문오름, 김영갑갤러리, 러브랜드... 그리고 맛난 음식들과 함께 사라져버린 사진들 중

'사라져버린 사진'이 이번 여행에서 최고 기억에 남은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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