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등한 사람존중,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이단’이라는 용어가 익숙하다. 평소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이단 혹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산을 탕진할 뿐 아니라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사이비 종교나 이단에 빠진 분들 중에는 사회에서 명망 있는 분이나 고등 교육을 받은 분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만큼 사람은 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신적인 유혹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이단이고 어디서부터는 이단이 아닌 단체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단이라는 종교단체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이단에 빠져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단을 판별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중요할 텐데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을까?
교회단체에서 얘기하는 이단 기준은 명확하다. 하나님 말씀을 적혀 있는 성경 기준에 부합하지 않게 행동하고 요구하는 종교단체는 이단이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성경’이 기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문서로 인정되는 범위도 사람이 정한 것이거니와 그렇게 정해진 성경에 대한 해석도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해석하기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진다. 또한 글로써 사람들의 복잡한 행동을 모두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럴 때 교회에서 자주 얘기하는 말은 “기도해서 결정하면 된다.”라고 하는데, 그 기도의 결과도 다 다르다. 결국 기도를 하더라도 사람들의 생각이 들어가기 때문에 누구의 기도에 따라 이단인지 여부를 정할 수가 없다.
지금 정상적인 교회단체로 되어 있는 곳들 가운데서도 과거에는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교회단체들이 많다. 그렇지만 그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종교단체로 편입되어 오곤 했다. 가령 전 세계 가장 큰 교회라 하는 순복음교회도 처음에는 이단으로 취급받았다고 한다. 지금 순복음교회를 이단으로 보는 교인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보면 가톨릭의 신앙도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이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유광수 목사란 분이 주도한 다락방선교회도 처음엔 이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세력이 커지면서 현재는 다락방선교회를 이단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가 아니라는 정치권의 규정이나 종교단체에서 얘기하는 이단 규정 논리나 다를 바 없다. 어떤 형태의 종교든지 세력화하여 여러 사람의 신도를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고, 정통 종교로 받아들여진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종교단체 간의 이단 논쟁도 마찬가지다. 종교단체 간의 세력 다툼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요즘 나는 한곳을 정해 두지 않고 매주 특별한(?) 교회를 방문하고 있다. 대형교회라는 곳도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100명 전후의 교인들이 출석하는 소규모 교회들이다. 이번 주에 다녀온 교회는 평일에는 카페를 하고 주일에는 교회로 사용하는 카페 교회였다. 15분 전에 도착했는데 목사는 무대 앞에서 직접 기타를 치면서 자유롭게 복음송을 노래하고 있고, 교인들도 목사의 연주를 들으면서 커피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통적인 교회의 예배 전 분위기로는 상상도 못할 모습이었다.
어느덧 11시가 되어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예배를 주관하는 사회자도, 찬양하는 팀도, 주보도 없다. 방문한 날은 교회 봉사하는 분들이 쉬는 날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목사 주도로 기타를 치면서 2곡을 교우들과 함께 불렀다.
그리고는 목사가 두 명의 초청인사를 소개했다. 한 명은 현재 신학 교수였고 한 분은 현직 의사이면서 신학을 공부하는 분 그리고 그 교회 목사 세 명이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신앙 생활에 대한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예배가 진행되었다. 미리 홈페이지를 통해 받아 놓은 질문도 있었고 즉석에서 궁금한 점을 묻는 질문도 있었는데, 2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기도와 광고를 하고 예배가 마무리되었다.
오늘 참여한 예배를 비롯해서 내가 최근에 다녔던 교회의 예배 형식은 기존 대형교회의 예배 형식 입장에서 보면 모두 이단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은 교회들이다. 목사가 아예 없는 교회에서부터 일반 신도에게 설교 기회를 주는 교회, 목사 설교 후 질문이 오가는 교회, 집사/목사 등의 호칭이 전혀 없는 교회 등……. 그리고 기성교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방향이 다른 곳도 많았다. 교회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되면 의무적으로 분립을 하는 교회, 교회 운영은 장로나 목사가 아니라 별도로 선출된 운영자들이 운영하는 교회, 교회의 모든 예산 수입 및 지출을 공개하고, 교회 건물을 갖지 않는 교회 등이었다. 이런 교회들의 가장 큰 특징은 교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가 높고 개개인이 교회에서나 사회에서의 위상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색다른(?) 교회 경험과 전통적인 교회까지 포함해 약 30여 년 간 교회를 다니는 동안 내가 정한 건강하지 않은 교회 판별법은 이렇다.
우선, 목사나 장로를 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목사의 설교에 자유롭게 토를 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목사도 사람이어서 완전할 수 없다. 그리고 목사보다 더 신학적 식견이 높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단지 목사는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이,고 그 설교에 대한 해석은 교우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해석해야만 한 사람이 독단으로 해석함으로써 생기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교회 출석을 안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면 문제가 있는 교회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교회는 주일날 교통사고가 나면 주일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하나님은어디에나 계신다고 하는 기독교의교리에도 맞지 않은 얘기다. 물론, 어느 단체든 소속되면 기본적인 예의는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건 어떤 단체든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가족행사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당연히 교회에 빠질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출석을 안 하고 주일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시작하면, 그 교회는 의심해 봐야 한다.
세 번째는 헌금에 대한 부담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교회다. 교회도 예산이 있어야 운영되는 조직체이지만 헌금이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헌금을 하고서도 부담이 전혀 안 되는 것도(소위, 교회에서는 성령 충만해서 그런다고 한다) 문제다. 다른 일에 돈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부담을 느끼면서 헌금이 이루어져야 정상적이지, 그렇지 않고 헌금 액수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더 행복하다면 자신의 종교 생활을 심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맹목적인 신앙자이거나 정신이상자일 가능성이 있다.
네 번째는 막무가내로 소리지르거나 고함치면서 사람들을 군중심리 속으로 몰아넣는 교회도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군중 속에서 소리치고 흐느끼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감정을 이용해서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교회는 이단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성령이 충만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냥 우리가 축구장이나 농구장에서 같이 소리치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이다. 그런 행동이 잘못 발전하면 과거 오대양 집단자살과 같은 단체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섯 번째는 교회 구성원 들간에 상하를 구분하는 계급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문제있는 곳이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곳이어야 한다. 오히려 사회약자가 더 대접받아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교회에 가서도 사회에서와 비슷한 계급이 느껴지면 그곳은 종교단체가 아니라 종교단체 포장을 한 사회 이해단체일 뿐이다.
여섯 번째, 자신이 믿는 종교가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믿는 사람의 종교를 바꾸게 하려는 교회는 수상쩍은 곳이다. 내가 믿는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도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도’실적 경쟁 으로 부담이 느껴지는 교회라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전도는 내가 신앙에 따라 사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과정이어야지,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상이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터득한 건강하지않은 교회 판별법이다. 기독교를 믿는 분들에게 조금은 도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신앙을 가지려면 이 정도 판별법을 갖고 있어야 바보가 안 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사람의 가진 것과 상관없이 얼마나 개개인이 삶이 존중되고 인정되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