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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Mar 29. 2016

선생 흉내

고루 고루 관심을....


어떤 분이 지금까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선생님은 학원선생님이었다면서 지금처럼 사교육이 활성화된 시대에서 학교선생, 학원선생 구분할 것 없이 어디서든 자신에게 훌륭한 스승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지금처럼 학원과외가 활성화 되지 않은 시대라 학원에서는 물론이고 초중고를 거치는 동안 학교에서도 스승다운 스승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 당시는 선생님은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그냥 우러러 보였고 대단하게 보였던 것이지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한 분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직업으로서의 교사 역할을 한 정도였지 않았나 싶은 분들 밖에 없었다. 나 뿐 아니라 내 또래의 분들은 대부분 그렇게 느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겪은 선생님들 중에는 이런 분이 어떻게 선생이란 직업을 선택 했을까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생활에 막무가내 행동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렇게 선생님을 한꺼번에 매도해 버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자녀를 키우면서 만난 선생님들 중에서도 한 두 분은 그야말로 존경을 받을 만한 분들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불행히도 그런 분이 없었다. 그 당시 대부분 선생님의 메시지는 공부였다. 공부를 잘하면 훌륭하고 공부를 못하면 나쁜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교육태도였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귀여움과 관심을 받고 그렇지 않은 쪽은 관심과 사랑의 대상에서 멀어졌다. 아니 다른 변수가 하나 있긴 했다. 학교에 영향력을 주는 분이거나 부유한 부모들의 자녀는 예외였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선생님의 관심을 받는 학생들은 기껏해야 전체의 3분의 1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 그 선생님을 잊을 수 없어, 나를 유난히 예뻐하고 잘해 주셔던 분이야." 이 말은 자신에게는 좋은 선생님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에게도 같은 느낌을 주는 선생님이었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고 그런 선생님이 없었겠는가? 초등학교때는 반장도 제법 했으니 당연히 그런 교사분들이 계셨다. 그런데 나에 대한 그분들의 사랑은 앞서 언급한 3분의 1에 속한 학생이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선생님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그 정도로는 스승님의 역할에 충실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언뜻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50대 중반인 나의 의식수준이 아직 이 정도인데, 당시 선생님의 나이를 생각 해보면 교사로서의 사명감이나 의식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이해가 되기도 하다가도 한편으론 이건 나이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교사분들 중에는 교대나 사대를 막 졸업하고 젊었을때는  교사로서의 사명감으로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다가도 결혼하고 가장이 되어 나이가 들었던 분일수록 오히려 더욱 생계수단으로서 의무감에 의한 교사생활을 하는 분들이 더 눈에 많이 띄였던 것 같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어찌보면 술집카페에서 말벗을 해주는 아름다운 여주인 같은 역할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 많은 남자들이 그 카페를 찾아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달래지만 그 여주인은 모든 남자에게 고루고루 웃음을 나누어 준다. 돈이 목적이기는 하지만 쉽사리 어떤 특정인에게 넘어가지 않고 균형적인 호감을 유지한다. 마치 그 카페를 드나드는 남자 입장에서는 자신 만 관심받는 것 처럼 느끼게 해준다. 선생님의 역할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그리고 조직구조 원리상 그렇게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은 학생들의 미래에 투자하는 측면에서 보면 가장 나쁜 방법일 수 있다. 모두에게 좋은 상사는 위기시에 아무도 편이 되지 않는 조직세계의 원리와 비슷하다. 몇 몇 될 만한 학생들에게 확실하게 투자하는 것이 남는 장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선생님들은 교육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모든 학생에 대한 사랑의 실천방식을 택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나는 요즘 학생들을 만나면서 부쩍 그런 생각을 많이한다. 잠시 거쳐가는 시간강사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몇 시간이 이들의 삶에는 어떤 큰 영향을 끼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며 수업에 임한다. 그냥 단순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의미전달자가 되려고 한다.  1대 N이 아니라 1:1로 만나려고 노력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사람 그 자체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나에게도 벌써 좀 더 이뻐 보이고 착한 학생이 눈에 띄기 시작하지만 최대한 골고루 관심을 주려고 노력해 본다. 이런 노력이 당시 모두가 갈망했던 선생님에 대한 관심을 나누는 실천이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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