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원희 Apr 13. 2016

이런 선배를 원한다

이런 선배가 되어야지...

요즘 신입생 환영회에서 막걸리 이벤트가 제법 뉴스꺼리로 등장한다.

주로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면서 당장 폐지되어야 한 악습이라며 경쟁하듯이 보도한다. 학교 측에서도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한다.


30~40년 전 신입생 환영회 때에는 어떠했을까? 모양은 다를지 몰라도 그때도 그런 절차가 있었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선배의 낡은 구두에다가 막걸리를 부어 마시게 하거나 술판 위에 놓여 있는 다양한 술과 김치국 같은 액체를 한꺼번에 양푼이에 부어 한 사람씩 마시게 하면서 신입생들을 환영(?) 했다. 보다 전통이 있거나 자부심을 가질 만한 학교나 학과의 신입생 환영회일수록 더 요란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그 이벤트가 내가 그들의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의례히 거쳐야할 통과의례로 생각했지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결국 적응 못하고 나오긴 했지만, 심지어 나는 술을 마시는 것이 주 목적인 동아리를 경험한 적도 있었다. 그 동아리 회원들은 만나면 술부터 마시면서 주도와 주법을 얘기하는 가운데 선배로부터 인생을 배우는게 목적인 동아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술을 통해 인적 네트워킹을 강화하자는 취지의 동아리였지만 나는 매일 술을 마시며 늦게 귀가하는 일이 되풀이 되는 그 동아리 적응에 실패했다. 어찌보면 그들 만의 그룹에 들어가는 통과의례에 실패한 셈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조직에 속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론으로 보자면 귀속과 애정의 욕구에 해당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그룹이든 그 그룹에 속하려 하고 그 그룹에 속하기 위해서 그 그룹에서 행해지고 있는 암묵적인 통과의례를 감수하기도 하는 것이다.


가끔 TV를 보면 아프리카 종족 중에는 지금도 훨씬 더 무시 무시하고 위험한 통과의례를 치르는 곳도 있다. 주로 성인식을 치르거나 그들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해 치르는 의식이지만 저렇게까지 해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미개한 악습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만의 전통과 자부심의 상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통과의례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사회나 어느 집단에서나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한 통과의례가 유지되는 것은 그 집단의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장치일 것이고 그 집단이나 그룹에서 상대적으로 먼저 태어나서 겪고 경험한 연장자들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방법의 하나로 그러한 통과의례가 생겨난 것이라 생각된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정보가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기 때문에 연륜이 곧 그 집단의 상위계층으로 가는 가장 유력한 기준이었고 따라서 연장자가 그 그룹에서 자연스럽게 힘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연장자에게 머리를 숙이는 방법이 곧 그 그룹에 빨리 적응하고 인정받는 방법이 되므로 자연히 그 통과의례에도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모든 정보가 연령에 관계없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그런 통과의례가 권위를 갖기 힘든 구조다. 그래서 더욱 더 그런 통과의례에 대한 부작용과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1, 2년 먼저 그 그룹에 들어온 선배란 사람의 지식과 성숙 정도가 얼마나 높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때에는 "선배는 하나님과 동격이며... 예수님과 동기동창이다"는 농 비슷한 문구를 술과 함께 외치며  그들 세계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선배들은 먼저 그 그룹에 들어왔다는(대부분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 만으로 그 그룹에서의 위상을 다지고 나 또한 나의 후배들에게 그와 같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위상을 확보해 누렸다고 볼 수 있다던 것이다.


한편, 1,2 년 먼저 들어온 선배란 이유로 선배 역할을 해야하는 부담도 있다. 마음 같아서는 누구나 후배들의 우상이 되고 싶고,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싶지만 거기에는 기본적인 통과의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갖게된 권위 외에도 제법 다른 투자가 따른다. 밥값이라도 한번 더 내야하고 힘든 일이 있을때도 시범도 보여야 하고... 그런 역할이 힘든 사람도 있지만 선배라는 이유 만으로 어색해도 그 역할을 할 때가 있다.(마치 남자역할 요구에 갈등을 겪는 것 처럼) 여기서 생기는 역할갈등도 만만치 않다. 그들만의 그룹에서의 위상을 갖기 위한 댓가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어떤 선배에게는 쉽지 않고 어색한 일이기도 하다.



요즘 신입생 환영회를 보면서 나이값으로 저절로 되는 선배가 아니라, 참 선배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까지 살면서 만나는 대단한 분이라며 치켜 세워지는 선배들은 대략 이 세 부류다. "대단히 똑똑하신 분이다. 가진 돈이 수 십억이다. 국장님, 그룹 임원 혹은 장관을 지내신 분이다"와 같이 소위 지능이 높은 부류, 재산이 많은 부류, 높은 직위에 있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 분들이 어떤 과정으로 이런 재산과 직위에 올랐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리고 일류대학과 높은 지능은 다른 무엇보다 선배를 평가하는데도 여전히 높은 잣대가 된다.


이런 선배들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간단하다. "돈과 권력이 최고야! 늙어서도 돈이 없으면 끝이야!"


그렇게 말하는 선배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아 우리들도 그와 같은 선배들이 되기 위해 자신들만의 통과의례를 만들고 그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면서 그들만의 써클을 공고히 해간다.


그런데, 아직 나는 다음과 같은 선배는 별로 못 만나 봤다.

돈, 명예, 권력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얘기하고 이웃의 아픔을 이야기 하고, 소박한 삶 가운데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언행이 늘 일치하면서 삶에서 향기가 나는 그런 선배 말이다. 이런 선배들이 사회에 더 많아지고 이런 선배들이 더 존경받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선배들이 인정받고 존중받는 조직에서도 과연 그런 통과의례라는게 필요할까? 요즘 신입생 환영회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나부터 그런 선배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지...



작가의 이전글 선생 흉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