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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Apr 15. 2016

호칭이야기

나는 이런 호칭이 좋다.


나는 무엇으로 불리워지길 원할까?

우리들은 어떤 직위로 불리워지길 원할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으로부터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높은 직위로 불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수 십년 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회사에서 불려지는 거의 모든 호칭으로 불려져 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처음 승진했을때 '대리'라는 직함으로 불려졌다. 첫 승진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기도 하고 기억에도 남는다. 지금은 상황이 어떤지 몰라도 그때는 대졸 3년이면 대리 승진을 하던 시절이다. 그렇지만 대상자의 전부가 아니라 60%에서 70%정도 였기 때문에 동기들 중 30~40%는 승진에서 탈락한다. 대리 승진이란 것이 실력이라기 보다는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느냐에 따른 운(승진적체가 많은 부서냐 그렇지 않은 부서냐)에 따른 것이지만 첫 승진에서 누락한 동기들은 엄청난 실망을 하면서 회사를 떠나는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긴 직장생활에서 생각해 보면 1, 2년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랬다.


다음으로 불린 호칭은 과장이란 호칭이었다. 그리고는 팀제도가 확산되면서 팀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졌다. 

이어서 부장, 실장, 이사, 지사장, 총괄, 사업부장, 상무, 대표이사 등 회사에서 불려지는 거의 모든 호칭으로 불려지면서 직장생활을 했다.



근무했던 한 직장에서는 모든 호칭을 '님'으로 만 호칭하게 했다. 서구사회 처럼 권위의식을 없애고 서로 존중하자는 차원에서 정한 룰이지만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래 사람을 부를때는 자연스럽게 '님'호칭이 가능했지만 윗 사람을 호칭할때는 거의 직위명을 붙여서 불려졌다. 가령, 자기가 근무하는 대표이사에게 홍길동'님'으로 호칭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대표이사로 근무했던 나 역시도 아랫사람이 이원희님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만큼 우리들은 은연 중에 높은 호칭으로 불려지기를 원한다.


지금은 중소규모의 회사에서 부사장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전에 만났던 분들은 나에게 '사장님' 혹은 '대표님'으로 불러준다. 사람들은 상대가 가졌던 최고의 호칭으로 불러주는 경향이 있다. 이 또한 은연 중에 높은 호칭으로 불려지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서로에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퇴임을 하고 나서, 내게 새로운 호칭이 생겼다.


'주인공빅뱅'이란 책을 낸 뒤, 지금처럼 글을 쓰면서 불려지는 '작가님'이란 호칭이고, 또 하나는 대학교 강의를 나가면서 불려지는 '교수님'(실제로는 강사이지만 학생들이 그렇게 불러준다)이란 호칭이다. 


나는 어떤 호칭으로 불려지기 원할까?


여전히 대표로 불려지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개 중에 뽑으라면 작가님이란 호칭이다. 작가님이란 호칭으로 불려지기에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은 안다. 그렇지만 작가로 불려지기 원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치열하지 않다. 

기업에서 불려지는 각종 호칭들은 전쟁의 결과로 얻은 호칭이다. 생각만 해도 치열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 누구든 다 작가로 불려진다. 유명작가 무명작가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작가란 이름으로 같이 불려진다. 


그리고 작가로 불려질 때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회사에서도 성장하겠지만 좀 다르다. 보다 정신적인 성장으로 치면 작가가 우위일 것이다. 작가는 의식적인 측면에서의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나는 작가란 명칭이 좋다.


또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호칭이어서 좋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통해서 대중과 교감한다. 피상적인 교감이 아니라 좀 더 내면적인 교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작가란 이름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다. 


학교에서 불려지는 교수란 이름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앞에서 얘기한 것 처럼 작가란 이름을 따라갈 수는 없다.

물론,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얘기했듯이... 반드시 이름이 앞에 와야 한다. "이원희 작가"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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