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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May 02. 2016

퇴임후 1년

계급장 떼고 만난 세상, 상실이 가져다준 성장을 알게 되다

심하게 앓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금 말고 심하게 아파본 적이 누구나 한두 번 쯤 있을 것이다.


심하게 아플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 바쁜 일이고 급한 일이고 다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이 고통이 멈춰 줬으면 할 뿐 현재 내가 위치한 위상, 자리, 체면 따위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가까운 동반자의 따뜻한 손길과 위로 마저도 의미가 없는 고통 앞에서는 어느 작가가 얘기했듯이 마치 우주 한 공간에 내 던져져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찾아온다. 삶에 대한 의미도 다시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도 돌아보게 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프지 않더라도 그러면 좋을텐데, 아프기 전에는 현실에 매몰되어 있어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렵다. 평소 쳇바퀴에서 삶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보다.


준비되지 않은 퇴임! 그리고 방황의 시작...


매일 해오던 아침운동을 하고 나서 갈 곳이 없어졌다.  우선 어디 출근할 자리가 있어야 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사무실 한 곳을 정하고는 정상적인 출퇴근 패턴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쉬어야 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반복된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들이 얘기하는 쉼은 잘 자리잡지 않았다.



30여 년간 동일한 패턴으로 살아오던 직장인이었던 나는 지난 해 4월 나로서는 엄청난'상실감'을 겪게 되었다. 언젠가는 찾아올 현실이었지만 그렇게 찾아온 상실은 나에게 완전히 다른 나로의 변신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상실을 메꾸느라 의도적으로 나를 못살게 굴었다.원래부터 짜여진 생활을 좋아하지만 상실이 가져온 변화를 잊기 위해서라도 나를 짜여진 일정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는 동안 나에게는 새로운 삶과 호칭들이 생겼다. 지금 나가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불려지는 부사장 이름에서부터, 책을 내고 글을 쓰면서 생긴 작가란 이름, 그리고 학교 수업을 받고 가르치면서부터는 강사이면서 학생, 교수 명칭 등 이렇게 불려지는 명칭 속에서 매일 새로운 나를 만나고 있다.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화될까? 경험하지 않고 함부로 그 상황을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정상이던 시력을 잃어버리는 상황만큼 갑작스런 상실이 있을까. 그러나 우리들이 알다시피 시력을 잃게 되면 다른 감각기관이 발달하여 시력을 갖고 있을 때 만큼이야 안되겠지만 빠르게 바뀌어진 환경에 적응해 간다고 한다. 그냥 적응할 뿐 아니라 시력의 상실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나 또한 상실과 더불어 새로운 성장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런 퇴임으로서 잃게 된 것은 대부분 현실의 물질에 관한 것이다. 그 물질에 매달려 있는 동안 보지 못한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계급장 떼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마주치며 부대끼며 새로운 성장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관계근육이 든든해 지고 있다. 껍데기 근육이 아니라 알맹이 근육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유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 나가고 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만 가짐으로써 편해지는 소유의 미덕을 깨달아 가고 있다. 보다 심플한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내 것을 버리니 옆이 더 잘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실행까지는 멀었지만 생각만은 더욱 이웃과 가까이 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나를 더욱 사랑하려 한다. 그건 자기애가 아니다. 자존감으로서의 나의 사랑이 커지고 있다.


다소 빨리 찾아와 준 퇴임으로 부딪히게 되는 생각의 좌충우돌 속의 공감을 기다리는 나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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