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은 안된다

무관심의 가장 큰 벌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지배받는 것...

by 이원희

우리집에는 7년 전 쯤 버려진 강아지(푸들)를 입양하여 키우던 분이 알러지 땜에 키울 수 없어 오게된 흰색 애완견이 있다. 애완견 이름은 '송이'. 암컷이어서 그런지 송이가 온 뒤로 무뚝뚝한 두 아들 밖에 없는 집안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키워온 송이가 사람 나이로 보면 중년 나이에 접어 들었다.


나는 살아있는 동물을 무조건 싫어한다. 특히 접촉하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송이를 씻어주는 일은 아내와 아들들 담당이다. 또 송이와 같이 부대끼면서 소파에서 함께 누워있는 것도 나를 제외한 가족과 함께이다. 나는 살아있는 동물이 내게 가까이 오는게 싫다. 그래도 직접 키우기 전보다는 애완견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 들었다. 다른 분들이 키우는 애완견에 대해서도 친밀한 인사나 관심을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직접 안거나 가까이 하기는 싫다.


애완견 특히 푸들은 똑똑한 축에 속한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대소변도 잘 가리고 음식을 줘도 한꺼번에 먹지 않고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싫은 내색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퇴근하고 돌아오면 그렇게 반가워들 한다고 하면서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데는 동의할 수 없다. 내가 경험하기로는 퇴근하여 나를 따라오는 것은 매일 주는 육포 비슷한 간식을 먹을 때까지만이다. 간식 주는 위치에 가면 따라다닐 뿐이지 그 다음엔 본 척도 않는다.


마치 우리 정치인들 같다. 다른 나라 정치인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표밖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나머지는 모두 명분일 뿐 다음에 다시 당선될 궁리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 심한 표현일까. 선거구 획정과 국회의원 수 등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되는 사안에만 엄청난 전력을 쏟다가 혹은 내용보다는 명분 때문에 지리한 싸움을 벌이다가 정작 중요한 법안들을 미루고 미루다가 한꺼번에 거래하듯이 정리해 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여러가지 부정부패를 저지르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해 놓고서는 고도의 정치력으로 피해 나간다. 이런 정치인들의 구태를 바라보다보면 일반 국민들은 정치의 무관심으로 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때 사람들은 말한다. 모두 같은 놈들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같은 놈들이 아니라, 잘 살펴보면 덜 나쁜 놈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100억을 먹은 놈이나 1억을 먹은 놈을 같이 나쁜 놈 부류에 넣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면 받게 되는 가장 큰 벌은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처럼 자신이 그 결과를 선택해 놓고 욕만 해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향린교회 설교 시간에 안토니어 그람시란 철학자의 말을 들으면서 무관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무관심을 미워한다"는 그 철학자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다. 나도 어느 새 무관심 층 속으로 휩쓸려 가면서 세상 속에서 적당히 누리고 적당히 살면서 적당히 잘난 척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정치인의 현란한 말, 속임수로 정말 진실을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진실보다는 뉴스꺼리가 되어야 보도하는 언론 태도로 인해 더욱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려워 어지간한 관심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한번 쯤은 나의 그런 태도로 인해 내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세상 구덩이로 가고 있는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정치인들이 우리 송이와 다른 점은 송이는 먹이를 줄 때마다 그래도 이쁜 척을 한다. 하지만 정치인은 표를 주는 사람이 대중이다 보니 대중을 무시해 버려도 어쩔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냥 처분대로 바랄 뿐이고, 새롭게 표를 줄 때면 이미 대중들은 그들의 과거의 행적은 이미 다 잊어버린 상태라서 또 속아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인터넷에서 그람시의 시를 찾아 다시 한번 읽어 본다.



나는 무관심을 미워한다, 그람시


나는 무관심을 미워한다.
산다는 것은 어느 한쪽을 편든다는 것이다.

무관심은 역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다.
무관심은 새로운 사상의 소유자들에게는 무거운 납덩어리이고,
가장 아름다운 열정조차 물 속 깊히 가라앉힐 수 있는
모래주머니이고, 어떤 전사나 어떤 강력한 방벽보다
구질서를 훨씬 더 잘 방어할 수 있는 늪이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최상의 활동가들조차 감염시켜
흔히 그들이 역사를 만들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관심은 역사의 강력한 힘이다.
무관심은 소극적으로 작용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무관심은 작용한다.

...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는 흔히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염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건 발생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기 때문에,
그 사건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

언뜻보면 역사적 사건이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듯 하지만,

그것은 무관심과 기권주의가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다.

나는 어느 한쪽을 편든다. 나는 살고 있다.

우리 편의 적극적인 의식에서


나는 이미 미래 사회가 건설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인간 사슬에서는 아무도 무거운 짐을 지지 않고,
모든 일은 행운이나 운명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다.

아무도 소수가 희생되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어느 한쪽을 편든다.
그 때문에 나는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 사람들,

무관심한 사람들을 미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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