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힘든 우리들의 진정한 안식처는 어딜까?
셔틀버스 타고 교회가는 사람들...
설교도 들어보면 자신에게 맞는 설교가 있다. 좋은 설교를 찾아서 멀리 찾아가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큰 교회들의 셔틀버스를 타고 교회를 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이유로 그 교회를 다닐까? 큰 교회의 하나님은 작고 조그마한 지역교회의 하나님과 다른 분일까? 만약 다른 분이라면 그들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간다. 그런데 같은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장소에 관계없이 같은 은혜를 주실 수 있는 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큰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믿는 것이다. 큰 교회에 가면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도움을 기대하면서 그 교회를 다니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성경말씀을 빌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라고 한다. 작은 교회에서는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성경의 진리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그들은 굳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큰 교회를 다니러 나온다.
그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들에게 종교란 어떤 것일까? 그냥 삶의 한 수단에 불과할 뿐 인것 같은데 그렇다면 차라리 동호회 활동이나 향우회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밀어주고 힘이되어 주는 것은 사회의 눈총을 받는 반면, 종교란 탈을 쓰고 나면 그 부분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종교 활동의 하나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 같은데...
심지어 결혼 적령기의 미혼 자녀의 결혼을 위해서 큰 교회를 찾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심하게 얘기하면 껍데기는 종교의 탈을 썼지만 사회에서 미혼 남녀의 결혼을 도와주는 중매업체와 같은 역할로 교회를 이용하는 것외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회나 성당, 사찰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므로 그렇게 일어나는 사람간의 교류를 부정적으로 만은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 버리면 종교가 왜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냥 종교의 이름을 빌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모여서 서로 교류하고 서로 도와주고 하면 될 일이지 왜 종교의 탈을 쓰고 거룩한 척 사회의 일반 평가에서 예외가 되어 버리는 가 하는 문제이다.
교회나 성당 사찰 등 종교시설은 그 지역민들과 밀착하여 조그만 생활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종교단체 에서만이라도 사회적인 계급에 관계없이 동등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종교단체에서 만이라도 아무리 힘들고 없는 사람이라도 사람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거기서만이라도 힘들고 병든 사람이 위안을 얻고 힘을 얻는 장소였으면 좋겠다.
종교단체가 거대한 '권위'의 표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종교단체가 막대한 자본의 대변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