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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Dec 31. 2016

큰 청탁, 작은 청탁

큰 것이 더 문제이긴 하지만,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큰 청탁, 작은 청탁

큰 것이 더 문제이긴 하지만,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청하여 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청탁'이라고 한다. 

남에게 '부탁'하지 않고 혼자서만 살아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부탁'과 '청탁'은 다른 뜻으로 쓰여지는 것 같다. 청탁이라고 하면 왠지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 기준과 절차를 무시하고 지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힘이 있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부탁이라는 이유로 그 부탁을 들어 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는 청탁이, 특히 사회 지도층에 있는 고위층의 청탁이 문제가 되곤한다. 어떤 사람은 청탁 문제로 인해 자신의 자리가 위협 받기도 한다. 그 사람의 청탁으로 인해 일반인의 기회가 박탈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권력에 있는 사람들의 청탁은 엄하게 다뤄지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근, 최순실씨의 부정입학 사건은 청탁을 넘어 권력을 이용한 압력 수준이었다고 보여진다. 결과적으로 입학이 취소될 뿐 아니라 관련자의 소명이 줄줄이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으로 인해 이런 저런 피해를 입게 되었다.


또 고위직의 청문회를 하다보면 빠짐없이 단골로 나오는 소재가 자녀에 대한 청탁에 관한 이슈다. 군복무에서 좋은 보직을 맡게 해 달라는 청탁에서부터 공공기관에 자녀나 지인의 취업을 부탁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처음에는 발뺌을 해보지만 깊히 조사해 보면 해당 지인의 좋은 보직과 입사를 위해 기준을 바꾸고 절차를 변경한 사실들이 드러난다. 그리고는 국민들의 공분에 휩싸이게 되고 잘못하면 그 일로 인해 소중한 자리를 잃기도 하고 법적인 문제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나는 이와 같은 청탁에 의해 자리를 얻게 되고 좋은 자리로 가게 되는 일이 매쓰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드문 일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일어나며 다만 그들은 운이 나빠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에 노출되지 않았을 뿐 잠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청탁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기 수준에서 통하는 청탁을 수시로 행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본다.


내가 대기업에 근무할 때, 평소 연락을 안하고 지내던 지인들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오는 경우 상당수는 자신의 자녀가 내가 다니는 기업의 계열사에 지원을 했는데 혹 아는 사람이 있는지 혹은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묻는 넓은 의미의 청탁 전화였다.





군복무를 하게 될 때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군입대를 하는데 그냥 알아서 잘 다녀오라고 내버려두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혹시 자신이 아는 군관계자 중에 가장 고급장교가 있는지 살펴보고 자녀가 군대생활을 좀 더 편하게 의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요청을 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군대를 가지 않게 하는 방법도 모색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고위직의 자녀가 군복무를 하는 비중이 일반인 보다 훨씬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 또한, 자녀가 취업을 하게 될 때나, 동생이나 자녀가 군입대를 하게  될 때 관련 계통에 있는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방법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막연하게 매달렸던 기억이 난다. 만약, 이때 그 분이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나의 청탁이 작용 되었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수준만큼 대부분 청탁문화 속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냉정히 생각해 보자. 이렇듯 청탁 문화가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 사회 고위직으로 가는 사람이 더 비난을 받게 되고 일반인의 청탁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런 비난도 받지 않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일까? 다시 말해 큰 청탁은 비난 받아야 하고, 작은 청탁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일까? 큰 청탁이든 작은 청탁이든 청탁은 청탁이지 않은가? 이런 문화가 없어지는 것이 먼저야지, 내가 현재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서 남들의 큰 청탁을 함부로 비난하고 그들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향력이 큰 사회지도층의 큰 청탁부터 사라져야 공정한 사회 구현이 빨라지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작은 청탁부터 사라질 때 큰 청탁도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인맥의 의미 속에서도 따지고 보면 나중에 필요할 때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두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조건'이라는 전제가 될 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리한 조건을 뒤집어서까지 청탁이 이뤄진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공정하기 못한 사회란 뜻이다.


사회 지도층의 청탁이 문제가 되는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얼마나 떳떳한 지를 생각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

큰 청탁에 돌을 던지기 전에 나를 향해 먼저 돌을 겨누고 나의 작은 청탁부터 크게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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