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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an 12. 2016

피가 땡기나요

나라면 못할 것 같아

헤어진 지 15년 된 내종사촌오빠가 페북을 통해서 내 근황을 보고는(정말 오랜만에 페북을 봤던 거라고 함) 깜짝 놀라 메신저로 연락을 해왔다. 오빤 서울에서 약사인 아내와 박사 과정을 하며 살다가, 어린 남매를 데리고 온 가족이 함께 캐나다로 이주해서 포닥을 했다. 그 후 미국으로 이주한 후 계속 살았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학교를 다녀서 가족과 한국어를 듣고 읽을 수는 있지만 말하고 쓰는 것은 익숙하지 않고, 언니는 약사 일을 그만두고 이곳에서 공부를 더 해서 임상병리사가 되었다고 한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떠났던지라 오빠는 내 남편을 만난 적이 없고 더더군다나 내 아들은 ㅋ. 내 기억 속에서 오빠는 차분한 모범생이었고 언니는 매우 똘똘한 가장이었다. 오빠는 지금 알칸사 리틀록에 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한 후에 내 주소를 묻더니 망설임 없이 "그럼 내가 그쪽으로 갈게. 저녁을 같이 먹자. 호텔 잡을 테니 식당 예약만 하고 부담 갖지 마라."라고 얘기했다. 나는 진짜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9시간 걸리는 거리를 마치 옆집 가듯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근데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친척'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지칠 대로 지친 내가 오빠의 메시지를 보고 진심으로 기뻤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못 봤던 사촌동생을 만나러 9시간을 운전해서 오겠다는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약간 설레기까지 했다. 속으로 쿨하지 못하다고 자신을 나무랄 정도로.


약속한 시간에 시간대를 넘어 오빠가 하나도 안 늙은 언니와 함께 우리집 주차장에 나타났을 때, 나는 순도 100%의 반가움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살살 걸어서 이 근처에서는 꽤 가격대가 있는 레스토랑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미국 생활이 익숙한 그들과 미국 생활 초짜인 우리들은 즐겁게, 가격에 비해서는 역시 짜고 맛이 없는 디너를 즐겼다. 입에서 모터가 달린 듯이 수다가 터졌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오빠와 깔깔 웃고 있다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오빠랑 이렇게 오래 얘기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빠는 모든 친척이 모일 때에만 만나는 사람이었고 말수가 적고 개그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만난 오빠는 아주 적당하게 자상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계산은 당연히 우리가 할 생각으로 동네에서 꽤 비싼 레스토랑으로 모셨는데, 계산까지 오빠가 해주셨다. ㅠ 그리고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프리페이드 카드까지 주셨다. 결혼선물 못해서 미안하다고. (15년 됐는데!)



알칸사에 원수를 갚으러 가고 싶어졌다.


세상에, 내가 친척을 이렇게 반가워하다니 외롭긴 외로운가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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