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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an 20. 2016

치즈의... 필라델피아

안 먹었습니다

남편은 중학교 때부터 절친 네 명이 있다. 그들의 끈끈한 우정은 지금까지 아주 잘 이어지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고등학교가 끝날 무렵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 S씨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그와 사귀고 나서 처음 맞은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였는데, 그때 남편은 내가 보는 앞에서 "야, 네 그 옷 마음에 든다." 하면서 그 친구의 조끼를 그냥 가져다 바로 입었다. 이런 방식의 '우정'은 내게는 매우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속으로 '저 친구... 호구...아닐까...'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S씨는 사업 때문에 자주 한국에 왔다. 거의 1년~2년에 한 번씩은 왔던 것 같다. 그는 우리집에 방문할 때마다 양손 무겁게 왔고 매우 예의 바른 데다가 다른 친구 K와는 딴판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미국에 오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S씨는 남편과 미국에서 상봉하기를 매우 고대했고, 드디어 때가 왔다. 도착해서 자리를 잡자마자 처음 다가온 이번 연휴에 우리는 그가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로 첫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첫 번째 난관은 호텔 예약에서 부딪쳤다. 이 동네에서 매우 흔한 한국인 유학생을 통해서 priceline이라는 앱을 소개받았고 그 앱을 연 순간부터 매우 아름다운 가격대에 흥분한 것까진 좋았는데! 개를 동행하기 위해 검색조건도 잘 넣었고 리뷰도 꼼꼼하게 읽은 것까진  좋았는데!! 결제를 모두 끝내고 나서야 내가 예약한 호텔이 관광 스팟에서 한 시간은 떨어진, 워싱턴의 한참 교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화들짝 놀라 호텔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놈의 음성 ARS와 대기를 한참 견디고 나서 프라이스라인 앱에서 예약을 했다면 그쪽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서 - 가끔 미드나 코미디에서 음성 ARS에 대한 빡침이 묘사되는데 사실에 가까움.. - 겨우 직원과 연결됐는데, 그는 아주 담담하게 캔슬할 수는 있지만 이미 컨펌까지 된 예약이라 환불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 딜은 환불 불가라는 점을 체크하지 못한 것이다! 별 세 개짜리 더블침대 두 개짜리 방이 이상하게도 싸더라니...(세금 포함 74불 정도) 나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들고 남편과 자식놈에게 나의 멍청함에 대해 사과를 했다.


두 번째 난관은 더했다. 남편의 학교 스케줄이 갑자기 변경이 되더니, 우리가 여행하기로 한 주말 이틀 동안 예비수업 일정이 생긴 것이다. 한 마디로 아주 중요한 수업이니까 학교 나오라고 일방적인 이메일이 왔다. 학교 다니기 위해 온 곳인데 학교를 째고 갈 수도 없고... 숙소 취소도 안 되니 애를 데리고 단둘이 일박이일이라도 가야 하나 멍~해졌다.


여행을 앞둔 주초에 남편은 학교에 나가서 교수에게 정식으로 어필을 했다. 사실 그 전 주말에 왔던 사촌오빠가 이 얘기를 듣고는 "미국인들은 가족과의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 점을 강조하면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신반의했는데 사실이었다. 수업 일정은 주중으로 옮겨졌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래서계획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금요일까지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금요일은 내가 만 마흔X살을 맞이한 생일이었는데, 다음 날 새벽에 떠나기 위해 저녁 외식만 후딱 마치고 서둘러 집에 왔다. 떠나기로 한 새벽, 나는 미친 속도로 차에서 해결할 아침 토스트를 구웠고 커피를 내려 텀블러에 담았다. 목적지까지는 650마일 정도가 남았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었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지독하게 어두웠다. 첫 장거리 여행이라 한껏 긴장한 남편은 느린 속도로 달렸다. 미국 고속도로에서 규정속도로 달리는 사람들은 노인밖에 없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도로 위의 모든 차가 우릴 추월했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누렸던 '휴게소'도 미국 고속도로에는 없었다. REST AREA에서 안전하게 휴식하며 개 용변도 사람 용변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좋은데, 레스트 에어리어가 그렇게 성실하게 따박따박 간격을 맞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레스트 에어리어에는 밴딩머신만 있을 뿐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점포가 없었다. 주유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EXIT마다 세워진 '숙박' '식사' '주유' 알림판을 보고 도로에서 빠져나갔다가 다시 도로를 타야 했다.


나는 단 한 번 운전 교대를 해줄 수 있었다. (이런 심장으로 애랑 둘이 워싱턴에 가려고 했다니 빵터진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도 필라델피아는 멀었다. 웨스트버지니아를 지나 가메릴랜드와 펜실베니아를  넘나들며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새벽 4시 35분에 출발한 차는 저녁 5시 30분에 S씨의 집현금앞에 도착했다. 너무 지쳐서 선물을 사러 들르지도 못했다. 우린 미리 동네에서 준비한 이 동네 팀 점퍼 말고는 선물할 것도 없이(지갑에 현금도 없이) 그 집에 들어갔다. 아기 때 한국에 방문했던 그 집의 큰아들은 일곱살 어린이가 되어 있었고, 처음 직접 만난 S씨의 아내는 상냥한  사람 같았다. 역시 처음 본 딸은 인형처럼 귀여웠다. 하지만 우리 개는 변함없이 낯을 가려댔고, 애들은 딱 유아답게 꽥꽥거리고 찡찡거렸다. S씨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실력으로 그릴에 고기를 구웠고 아주 근사한 로스트 비프와 샐러드, 케밥으로 디너가 준비될 때까지 2시간이 걸렸다.


S씨는 저녁만 함께 지내고 다음 날 워싱턴으로 떠난다는 우리 계획을 변경해서 그 집에서 이틀 묵으며 필라델피아를 뽀개게 만들기 위해 설득에 최선을 다했고, (그는 정말로 내 남편을 좋아한다...) 나는 귀를 팔랑거리며 주저앉으려는 남편을 너무 티나지 않게 뜯어 말리느라 신경이 다 닳았다. S씨는 저녁식사 후 8시 반 무렵 필라델피아의 야경을 보러 나가자며 투어 가이드에 나섰다. S씨와 아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아주 멋진 SUV에 올라타고 다운타운으로 나갔다. S씨의 아들은 신이 나서 연신 소리를 질러대며 차에서 스누피 만화를 시청했다. 나는 야경이고 뭐고 쉬고 싶다, 그 집에 두고 온 개가 걱정이다, 하는 온갖 상념에 잠겨 고통받았다.


우리는 먼저 록키가 뛰어올랐던 필라델피아 박물관에 갔다. 오밤중 남자들은 록키 흉내를 내며 즐거워했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시내의 야경은 꽤 근사했다. (하지만 난 피곤했다...)

우리는 그 다음에 펜스랜딩으로 갔다. 미시시피와 더불어 이름난 노예 하역장이었던 항구라고 한다. 강 건너에는 뉴저지의 야경이 보였다. 뉴저지로 건너가는 웅장한 다리 이름은 벤 프랭클린 다리라고 했다. 항구 바로 옆에는 시에서 개설한 아이스링크가 있었는데, 짐보니가 링크 정돈을 하는 동안 '강남스타일' 노래가 흘러나왔다. (제발! 2016년이야!! 남편아 제발 그만 좀 감격해줘 ㅠ_ㅠ) 그 후로 가기로 한 곳은 정말로 시내에 있는 GENO's STEAK라 는 '치즈스테이크'가 명물로 알려진 가게였다.


저녁식사를 그렇게 거하게 먹여놓고 '스테이크'라니!! 그야말로 등골이 오싹했지만 그 가게는 정말 특별하긴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여서 비즈니스를 하는 골목길에 있는 그 가게는 100% 테이크아웃에 현금밖에 받지 않는데, 온갖 명사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고 그 깊은 밤중에도 장사 중인 데다가 우리 말고도 꽤 손님이 많았다. 상상과는 달리 빵 사이에 고기와 치즈를 끼워서 파는, 소시지 대신 소고기를 넣은 핫도그 같은 거였다. 세금 포함 하나에 10달러씩이나 하는;; 진짜 이걸 먹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 밤중에 이걸 먹어야... 먹어... 먹으라니까 먹긴 하겠지만....?

뭐가 그렇게 호들갑이냐 하며 먹는데


맛있다;;


진짜 맛있었다. 미국에서 먹은 수많은 짠 음식들과는 달리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착착 감겼다. 그렇게까지 추운 날씨만 아니었으면 먹다가 매우 흥분해서 명랑해질 것 같은 맛이었다. 양식을 즐기지 않는 한국 노인들까지 좋아했다며 자신만만해하는 S씨의 장담이 이번에는 맞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바로 잤다. 9시부터 관람할 수 있다는 관광명소에 가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자야 했다. 그리고 매사 우리를 배려해주는 S씨 가족의 품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침도 나가서 해결하자고 남편을 볶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갈 준비를 거의 마친 8시 15분에ㄴ은 S씨의 부인은 떡국을 끓일 테니 꼭 먹고 가라고 우릴 붙잡았다. 나는 단 10분이라도 시간을 아끼고 싶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늦어진 아침식사에다가 그걸 느긋~하게 먹으며 친구와 계속 떠들어대는 남편에게 눈총을 쏴댔다.


떠나는 우리에게 간식과 선물을 한아름 안겨주는 S씨  부부는 끝까지 날 미안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홀 앞에서 유료주차를 하고 검색대를 거쳐 인디펜던스 홀 안을 관람했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은 자꾸 세금이나 먹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로 마음먹고 이곳에서 13개  주정부가 갑론을박을 펼쳤고 결국 독립을 선언했다는 얘기, 그리고 그 후로 독립전쟁이 이어졌다는 얘기였다. 그때 벤자민 프랭클린이 블라블라~ 워싱턴이 블라블라~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수도가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옮겨질 때 중간다리가 되었던, 10년간 미국의 수도 경력을 가진 도시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5%84%EB%9D%BC%EB%8D%B8%ED%94%BC%EC%95%84_%EC%A0%9C%ED%97%8C%ED%9A%8C%EC%9D%98

하지만 내게는 재미도 감흥도 없었다. 제국주의 국가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이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게 아직도 식민지인 조국을 가진 유색인종인 내게 특별한 감흥을 주기는 무리...?


바로 옆에 있는 자유의 종(Liberty bell)이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독립을 선언한 것만이 아니라 온갖 이슈와 사건에서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종인데, 만들고 바로 불량품 이라 금이 쫙쫙 갔고 지금은 더 칠 수 없게 되었다. 이 종은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진 것과 대조적으로 사이즈가 매우 작은 데다가 깨져 있어서 정말 재미있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한 미드 How I met your mother에서 테드와 바니가 핥았던(!) 종이 아닌가. (핥는 장면까지는 안 나왔던 걸로 기억하지만)


남편은 친구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민폐가 돼."라는 나의 말에 그는 항상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건 아니야.(너처럼 쪼잔하지 않아)"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세상에 나 같은 사람과 나 같지 않은 사람들이 다 있다면 나 같은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야 실패하지 않아. 더 조심하는 게 더 옳아."라고 대답했다. 우린 서로를 역시나 이해 못하면서 이번에도 그냥 넘어간다.


찬성일세

이탈리아인 가족경영 대박집 제노스 스테이크 - 치즈스테이크


반댈세

무념무상 인디펜던스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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