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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an 23. 2016

부랴부랴 워싱턴

미션:시간에 쫓기면서 최선을 다하라

필라델피아에서 11시쯤 출발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S씨 집에서 싸준 간식으로 허기를 때우기로 결정하고,  예약해둔 워싱턴 시내의 주차장을 목적지로 설정했다. 워싱턴은 대도시 오브 대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주차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여행 전에 꼭 주차장을 예약하라는 선배들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Parkwiz라는 사이트를 이용해서 아들이 원하는 관광 포인트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을 하나 예약해두었다. 그 전날 600마일을 넘게 달렸더니 100마일이 좀 넘는 거리가 별거 아닌 걸로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가는 길의 날씨가 조금 오락가락했지만, 오후 2시 반쯤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에는 비나 눈이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으면 재미없을까 봐 주차장에 들어갈 때 문제가 발생했다. 남편이 예약 화면을 보여주자, 직원은 큐알 코드를 기기에 찍고 들어가야 한다며, 이미 돈을 내고 받은 번호는 개무시하고 우리 차를 돌려 나가도록 유도한 것이다. 우리가 화면을 보여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도와달라고 했지만 전혀 소용 없었다. 결국 차를 돌려 나온 다음 한참 낑낑거려 겨우겨우 큐알코드를 찾아냈다. 주차장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완전 미로;; 박물관과 식당, 이곳저곳을 가야 해서 개도 차에 두고 내려야 했다. 심란했다.ㅏ아이가 1순위로 원했던 곳은 바로 국제스파이 박물관이었다. 냉전시대부터의 실제 스파이에 관련된 내용과 공공칠 같은 영화에 나오는 내용을 모아 만든 테마 박물관인데, 주차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점은 참 좋았다. 다만 자비리스한 입장료는.... (인당 22달러 정도 들었던 걸로 기억).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장신분을 고르는 방으로 가면, 그곳에 자신이 선택할 위장 신분들이 쭉 나와 있다. 남편과 아이는 굉장히 어이없는 나이대의 멋지구리한 남자들을 골랐다. (20대라니요.... 스파이로서 발각에 대한 자각이 없든가 위장술에 매우 자신이 있든가?


나는 양심적인 신분을 선택했다. (40대에, 동양인 여성으로)


위장 신분을 선택하는 방에는 각국의 정보기관 마크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는 한국에서 대선에 간섭하는 댓글이나 다는 찌질한 기관 마크도 있어서, 반갑기보다는 경멸이 확 치솟았다.


그 후로 브리핑룸을 거쳐 이런저런 설정과 아이디어로 충실하게 꾸민 전시를 구경했다. 자신이 선택한 위장 신분을 얼마나 잘 숙지하고 있는지 테스트하는 기계도 있었고, 관찰력과 센스를 시험하는 시설도 있었다. 대부분은 고리짝에 스파이들이 사용한 골동품 첩보 도구들을 전시한 것이 많았다. 꽤 아기자기하고 알차게 노력한 박물관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입장료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입장료가 너무 비쌌어.. ) 게다가 차에 두고 온 개가 계속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남자들보다 조금 일찍 나와서 주차장에 개를 케어하러 돌아가보기로 했다.


남자들을 두고 나와서 황급히 주차빌딩으로 돌아가는데 이때부터 병신미가 만개했다. 길이 복잡하지도 않았고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하하!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군요. 두 블럭 정도를 걸은 후 남편에게 연락해서 주차빌딩 주소를 받았다. 그 후에는 더 심한 병신미가 폭발!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찾지 못한 것이다. 빌딩을 한 바퀴 완전하게 돈 후에 그 불친절한 직원을 찾아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길안내를 받아 다시 자력으로 주차장 안을 뒤지고 다니다가 결국 차를 찾는 데까지 거의 30분이 소요됐다. 제일 귀한 시간님이!! 개를 겨우 만났는데 남편과 아이는 박물관을 나온다고 연락을 해왔다. 젠장, 이놈의 시간! 시간!!


개는 용변도 보지 않은 채 다시 차에 갇혔고, 우리 가족은 오바마가 먹었다는 five guys 햄버거를 먹기 위해 구글에 의지하여 길을 떠났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점포가 있긴 했다. 관광객을 많이 취급했는지 직원이 오더를 받는 방식도 익숙해서 최근 연이어 패스트푸드점에서 실패해서 우울해하던 남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햄버거는 '토핑'을 선택해서 얹는 방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내가 바보짓을 시전했다. 올 토핑을 하고 나서 케찹 적게 넣어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머스타드와 케찹만 넣는 방식으로 주문을 한 것이었다. 내가 시킨 핫도그는 그리하여, 정말 지독하게 짰다. 케이준 스타일의 후라이를 'small'로 하나만 주문했는데 그 양이...


네?


배를 채우고 나서 다시 시간과 경주를 시작했다. 워싱턴 기념탑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하고 전철을 타러 갔는데, 여기서 또 촌놈 해프닝이 발생했다. metro center라는 역까지 찾아가는 것은 잘했는데, 전철표를 파는 판매기 앞에서 모두 망연자실. ㅋㅋ 정말 과장이 아니라 망연자실. 문맹이 따로 없네!  결국 역무원 아저씨에게서 일단은 충전할 수 있는 패스를 산 다음 거기에 충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2달러나 되는 카드를 모두 구입하고, 거기에 또 5달러씩 차비를 충전했다. 버스까지 탈 수 있다는 말에 남편은 크게 끄덕이며 순종했지만 나는 속으로 찝찝함을 삼켰다. 우리가 워싱턴에서 내일 아침에 떠나는데(정확히는 그날 밤에) 대중교통을 얼마나 타게 될까?

예감은 틀리지 않아 이 카드에는 1쩜 몇 달러가 남았다.  


겁나 한산한 지하철을 타고 단 두 정거장을 가서 스미소니언 역에서 내렸더니 워싱턴 기념탑은 저 멀리, 높아서 찾기는 쉬웠지만 정말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성조기가 휘날리는 거대한 모뉴먼트는 무척 압도적인 석조건물이었지만 구경할 때 상태가 무척 다운돼 있었고(개 걱정, 숙소 체크인 걱정)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애가 1분 정도 사라져서 혼비백산하면서 솔직히 아무 느낌이 없고 춥고 피곤했다. 빨리 호텔 가서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두 남자의 의욕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춥고 어두우니 차를 몰고 와서 주변 관광포인트를 쪼개자고?!


다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지하철을 타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일본이나 타이완에서 거기 사는 사람들을 가깝게 관찰하는 지하철을 타는 걸 매우 즐기는데, 미국 지하철은 진짜 별로였다. 그것도 워싱턴은 지하철이 활성화된 도시라는데. 지금까지 경험한 미국에서 사람들은 거의 차에 탄 채로 이동하고 부딪칠 일이 없었다. 뉴욕 구경을 가면 사람 구경 제대로 하게 되려나.


무작정 차를 끌고 링컨기념관 근처에 가서 주차를 못하고 뺑뺑 돌아왔다. 결국 상당히 떨어진 곳에다 겨우 세우고 지친 상태로 웅장한 기념관에 도착, 이곳은 CSI CYBER 시리즈에서 멋진 패트리샤 언니가 걸터앉은 오프닝의 배경이다.

이넘의 미드 중독...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이고, 영상 속에서 충분히 봤다고 생각했지만 여긴 멋졌다! 링컨의 전신상이 정말 아름다웠다. 위엄과 따뜻한 카리스마가 한꺼번에 느껴지는 정말 커다란! 조상이었다.

신전을 본따 만들었다는 건물도 군더더기가 없이 심플하고 아름다웠다. 밤이었기 때문에 더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링컨의 등 뒤에 새겨진 글귀도 멋졌다.

"In this temple, as in the hearts of the people for whom he saved the Union,
the memory of Abraham Lincoln is enshrined forever."


하지만 양 벽면의 연설은 너무 길어서 패스.


본당(?) 밑에 있는 전시실에서는 한국 국기를 반다나로 매고 있는 미남을 만났다. 오산에서 복무한 사람이었다. 너무 잘생겨서 말을 못 건넸...


아름다운 기념관이 마지막이었으면 했지만 남자들은 백악관도 꼭 구경하고 싶어했다. 불법유턴을 불사하며 달려갔지만 (내겐 다행하게도) 진입로가 차단되어 있었다. 만세!! 이제 가자!!


50마일 정도는 거리는 이제 거의 농담처럼 느껴졌다.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이라고 해서 취소하려고 했는데, 달려가보니 이젠 껌이랄까. 진입로를 한번 놓쳤는데 3마일을 돌아야 했던 것이 마지막 난관이었다.


깔끔한 외관과 로비가 맘에 쏙 들었는데.. 동물 숙박료도 확인해야 했군요.

개님(6일까지지만 우린 하룻밤인데) 숙박료가 우리 숙박료보다 10불 비쌌다. ㅋㅋㅋㅋ

개님 주무시는 호텔에 인간 세 명이 꼽사리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이 호텔 대만족. ㅠ hyatt place chantilly 꼭... 싼 가격이면 놓치지 마시라.


다음 날 아침 조식도 환상적.


개 숙박료를 냈더니 눈치가 보이지 않아 정말 좋더라!!!


그리고 돌아왔습니다.

하루 걸려서.

남자들은 워싱턴 다시 가서 마저 본다고 으쌰으쌰거리는데, 난 미국 여행에 벌써 질리고 있다.


찬성일세

링컨기념관, 버지니아주 샨틸리의 하얏트 플레이스.


반댈세

워싱턴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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