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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an 24. 2016

눈보라가 올 때

원치 않은 수감생활

월요일에 여행에서 돌아와 화요일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솔직히 굉장히 마음이 편했다. 내가 가장 안심할 수 있는 '혼자의 시간'이 보장되는 생활이 좋았기 때문이다. 대인기피증을 극복하며 남편 동료 부인들 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수요일에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고 약속까지 정했다. 아침에 혼자 시간을 갖게 되면 클럽하우스에서 러닝머신을 한 시간씩 탈 계획도 짜고.


그런데 저녁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별것도 아닌 눈이 살짝 깔리고 수요일에 덜컥 공립 초중고 휴교가 결정되었다. 자연스럽게 브런치 약속도 무기한 미뤄지고, 집에서 애와 복닥복닥하기 시작했다. 아... 진짜 얼마나 꼴보기 싫은지! 근성 없는 미국놈들이 역시 마음에 안 들어 그러고 있는데 목요일에는 그 전날 쌓였던 눈 때문에 다시 휴교, 이쯤 되면 어이없다 싶어지는데 작년 겨울에는 눈이 자주 와서 거의 한 달 가까이 휴교가 되었다고 한다.



목요일에 학교에서 돌아온 남편이 밤부터 몰아칠 예정인 snow storm이 화제였다고 다급하게 소식을 전한다. 하루 종일 밥 해먹고 아이와 영어 과외를 하러 다녀온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텔레비전으로 드라마만 봤더니 전혀 몰랐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이 쌓여 장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집에서 굶어죽을 수 있다!! 벌떡 일어나 샘즈 카드를 챙겼다. 폐점 시간까지 딱 50분이 남은 시간, 우린 급하게 식량을 챙기러 차를 몰고 나갔다. 가서 평소에 사는 양보다 하나씩 더 샀다. 딱 하나씩 더. 그랬더니 냉장고에 쟁일 수 없는 정도의 식료품이 생겼다.


밤부터 정말로 눈보라가 몰아쳤고, 그 후 24시간 정도 계속되었다. '그 정도 눈에?' 하고 코웃음쳤던 나를 꾸짖듯이... 그나마 이쪽은 이 정도지, 워싱턴 쪽은 아주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뉴스 채널에서는 온통 눈 얘기였다. 개의 용변 때문에 하루 네 번 밖에 나갈 때마다 몸집이 작아 눈에 파묻힌 개는 매우 괴로워했다. (오죽하면 나가기 싫다고 주저앉아버리더라고)


가족이 모두 눈보라 치는 바깥을 바라보며 밀착한 하루를 보내는데 이건 고문이 따로 없었다. 오죽하면 눈이 그치고 햇빛이 나자마자 1.5일 만에 옆동네 동료 가족한테 놀러가겠다는 남자들을 흔쾌히 풀어줬다니까.


사촌오빠는 전기 끊기면 난리난다며 걱정하는 문자를 보내줬다. 따뜻하게.


아들하고 하루 종일 보내는 것보다 남편하고 하루 종일 보내는 게 더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 게으른 꼬라지에 울화가 울컥 난다. 내일 골프 연습장 나간다고 해서 지금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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