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년여자 Feb 07. 2016

나는 아직도 찾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찾고 있겠지

내가 마치 여기서 계속 산 사람처럼 시치미를 떼고 이 아파트에 도사리고 있기 전에, 나는 (그리운) 나의 집에서 짐을 쌌다. 모든 물질이 풍족한 미국으로 떠나면서도 어쩐지 불안했던 것은, 미국에 분명히 없는 무엇인가가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로 내 예상은 식료품 쪽에 있었다. 음... 간장도 없을 거야, 맛술도 구하기 힘들댔어. (결국 국간장과 맛술은 이민가방에 들어갔고, 그것은 이민가방 안에서 소소한 사고를 불렀다)

내가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나와 비슷하게 유학생 처지로 미국에 자리잡은 선배 지인에게 체크했을 때 그녀가 내게 추천한 물품은 '초대형 지퍼백(이불 보관을 하며 방충할 수 있는)', '예쁜 앞치마', '라이터', '내가 사용할 예쁜 다이어리' 같은 것이었다. 이 중에서 내가 새로 사서 준비한 것은 없었다. 벌레가 생길 정도로 침구가 없을 예정이었고(생긴다면 물려받은 침구에 생긴 것이니 버리고 새로 사면 그만), 그리고 앞치마는 버터에서 사서 마련한 싸구려(6천원짜리)가 있었고, 라이터는 쓰던 거 가져가면 되고 다이어리는... 원래 쓰지 않는데 미국에서 쓸 리가 없었다.


이제 정착이 다 되었다고 할 만한 지금 시기에, 내가 간절히 원하면서 못 구하고 있는 것은 한국식품이 아니다. (진짜 웬만한 거 다 있음) 이 두 가지는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내가 가는 삼종 마트에는(아니, 한국마트와 창고형 마트 하나를 더하면 5종 마트) 없다.


하나는 버터나이프. 이건 내가 뭔가 바보 같아서 못 찾고 있는 것 같지만 스푼과 포크 쪽에도 없고 칼 쪽에도 없고 서빙을 위한 온갖 듣보 기구가 있는 곳에도 없다. 정말로.


또 하나는 욕조 배수구 거름망. 9일 머물렀던 그 '저택'에 있던 물건이다. 미국의 욕조 배수구는 시원하게 망가진 칫솔로 쑤셔서 머리카락을 빼낼 수가 없다. (안 열림) 머리카락이 덜 들어가게 하기 위해 말랑한 플라스틱 재질로 된 거름망 같은 게 있었다. 물이 흐르면 여기 저기 떠돌아다녀서 그렇게 효과가 크진 않았지만 얘라도 놔두면 머리카락 덜 들어갈 수 있겠는데.


그리고 한국하고 비교했을 때 겁나 비싸서 정말 사가지고 올 걸 후회하는 물품은 바로 점화기.


가져오라고 했던 라이터가 아니라 점화기!!!


겨울이고 환기가 열악한 아파트에 살다 보니 향초를 필수로 피우는데 향초가 점점 줄어들면서 나는 애간장이 타고 있다. 슈퍼마켓에서 점화기 하나에 5천원 넘게 받는 건 너무하지 않음?? 다이소에서 2천원이면 산다는 걸 알고 있다 보니 도저히 손이 안 감... 라이터로는 낮아진 병 안에 손이 들어가는 데에 한계가 있어서 아무래도 조금 있다가 살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정말 힘들게 산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바로 바가지(와 대야의 중간 정도 물건)!


가벼운 손빨래를 위해 찾던 건데, 배수구가 욕실 바닥에 없는 미국 특징 상 이런 거 없음. 결국 월마트에서 적당한 크기의 플라스틱 (요리용) 보울을 발견하고 그걸 쓰고 있다.


어차피 일상 물건 사는 얘기를 시작한 김에 내가 이용하는 마트 5종에 대한 잡담이나 더 해보겠다. (주부력이 별로라 좋은 데이터는 없습니다)


1. 크로거
체인점이다. 주로 미국 중부와 남부 쪽이 본거지라고 한다. 식료품 쪽에 특화된 슈퍼마켓인데, 그럭저럭 좋은 상품 구색에 미친 듯이 싸지는 않은 가격대를 갖추고 있다. 큰 점포에는 운수 좋은 날 애호박 비슷한 것까지 있다고 들었지만 아직 영접하지는 못했다. 아시안 식품 쪽에서 한국 농심 라면을 취급한다.


2. 월마트
우리 동네에도 있었는데 망해 나간 월마트, 미국에서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웬만한 물품을 가장 폭넓게 취급하며 의류 비중이 크다. 하지만 식품 쪽은 크로거에 비해 약간 싼티가 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자제품이나 서적, 디비디까지도 급한 물건은 다 있다. 이곳에서 1갤론짜리 생수를 사다가 식수로 쓰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반드시 가야 한다. "네이버"가 붙은 곳은 축소형이라 식료품 위주.


3. 샘즈클럽
월마트 회사에서 운영하는 회원제 창고형 매장으로 연회원비가 45불이다. 거의 코스트코와 비슷한 스타일인데, 아이템이 미묘하게 안 겹치는 부분이 있다. 가장 특징적으로 이곳에서 구입하는 아이템은 깐마늘 큰 포장. 정말 크고 아름답다. 미국 마늘은 더럽게 까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 마늘을 위해 샘즈클럽 회원비를 곧 투척할 예정이다.


4. 코스트코
한국인이 사랑하는 코스트코, 연회비는 한국보다 훨! 씬 비싼 55불이다. (한국에서 회원이었을 경우 한국에 연락해서 한국 가격으로 연장할 수 있다고 함) 우리 동네와는 좀 떨어져 있지만 샘즈에 없는 물건을 싸게 사고 싶을 때 간다. 샘즈나 코스트코나 엄청 물건이 싸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포장 단위가 큼) 같은 가격이라 해도 보통 마트보다 질 좋은 과일과 야채를 살 수 있다. 최근엔 체중계를 이곳에서 샀다. 샘즈에는 취급하지 않더라능. 월마트에도 동일 가격의 제품이 있긴 했지만 코스트코 쪽이 훨씬 고급스러웠다.


5. 한인마트
우리 시에는 두 군데, 서울마트와 동양마트가 있는데, 정말 웬만한 식품류는 다 구할 수 있고 한국인에게 소중한 라면이 크로거에서보다 더 싸다. 농심 것 말고도 메이저 메이커의 라면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한국 식품을 주로 팔고 일본이나 기타 아시아 지역 식품들을 곁들여 파는 방식이라 이곳에서 일본 카레루도 구입할 수 있다. 서울마트보다 동양마트가 점포 내 정리 상태가 깔끔하다고 하는데 안 가봐서 모르겠다. 다만 두 점포 모두 유통기한에 조금 철저하지 않다고 하니 조심해서 사야 한다고.

먹고 살려면 이 모든 마트를 번갈아 돌아가며 다녀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들지. 허허.
내일 우리는 미루고 미뤘던 서울마트에 간다. 샘즈도 가야 할 것 같고. 돈 깨지겠군.


작가의 이전글 아마존과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