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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Feb 12. 2016

한국에서 안 해본 영어 과외

아직은 판단 보류

미국에 오기 전에 아들의 영어 '준비' 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었다. 특히 남편은 내 한 달 월급 실수령액을 뛰어넘는 돈을 쏟아부어서라도 필리핀 영어 캠프에 아들을 보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참 끈질기게도 영어 방과후 수업(힙하지 못해 엄청 인기 없음. 6학년 학생은 우리 아들밖에 없다고 들었음)만 듣게 했다. 공부도 싫어하는 애한테 투자해봤자 본전 생각만 한다는 게 내 신조라서. 아들에게 캠프 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대답은 역시 예상대로 '방학에 놀아야 돼'로 돌아왔기도 하고.


어쨌든 아들은 그냥 무작정 왔다. 영어를 싫어하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엄마의 배짱을 따라 그냥 왔지만, ESL 테스트를 받을 때 놈은 엄청나게 떨며 원래 없는 실력을 그나마도 발휘 못했고 정말 영어 한 글자도 모르는 애들이랑 ESL 클래스를 함께 시작했다. 그래도 '난 영어를 못해'조차 못하는 동급생들보다는 영어를 배운 적이 있는지라, 한 달이 지나자 클래스 등급이 올라갔다. 지금은 미국에서의 '국어' 수업에 해당하는 language art와 수학 수업을 자기 학년으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우 친절해서 무엇이든 해줄 것 같던 ESL 교사에게 아들이 자기가 집에서 쓴 영어 일기를 가져가서 조언을 받으려고 했다가 "그건 내 일 아님. 네 개인적인 일임"이라는 차가운 답변을 듣고 오는 일이 발생했다. 자기 업무에 대한 금 긋기가 매우 확실한 모양이다. 그 일 플러스 초반의 '못 알아듣겠어' 공포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개인 교습을 받겠다고 놈답지 않게 동의를 한 김에 남편은 곧바로 어디서 얻어온 명함을 주며 내게 연락을 하라고 했다. 동네의 작은 사무실에서 우리 같은 외국인 호구들(한국인이 특히 많았다고 함)한테 개인교습을 하는 콜린은 50이 가까운 나이에 남편과 초혼을 해서 지금 신혼이다. 처음 만났을 때 원래 자기가 영어 과목과 ESL 교습 자격을 갖춘 정교사 출신이라는 점을 어필하는 건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가 좀 미묘했다. (항상 보는 한국인이나 일본인 등과 다른) 유럽 사람을 가르쳐보고 싶었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영어를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교사직을 관두고 그곳에 갔다가 1년 만에 다시 그만두고 돌아왔단다.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의지가 전혀 없어서 자신의 일이 모욕당하는 기분까지 들었다나. (눈물까지 글썽임) 지금은 정교사 일을 그만둔 것을 매우매우매우 후회하고 있다고까지. 영업 정신은 일단 확실했다. 다른 학생을 소개시켜주면 한 시간 무료로 강의한다면서 묻지도 않고 내게 명함을 한 줌 쥐어주었다.  내가 (당시 기준) 여기 온 지 한 달도 안 된 외국인이라는 점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는 듯??


아니, 근데 무엇보다 스미스 부인(최근에 남편 성을 가지게 되어 이렇게 불리는 걸 좋아하는 눈치), 아시아인 말고 유럽인을 가르쳐보려고 했다는 얘기나, 정교사를 그만두고 뜨내기 프리랜서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얘기를 초면의 아시안 고객한테 할 이유가 있을까요;;


하지만 이 교습을 하지 않으면 나는 다시 검색을 해야 하고(검색 정말 못합니다;;) 그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며, 일단 경험 하나만은 풍부해 보이길래 교습을 결정했다. 가장 궁금했던 강습료도 일주일에 몇 번인가, 수업을 몇 명이 함께 하는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가장 비싼 시간당 수업료(우리 아들처럼 단독, 일주일에 한 번)가 35불이다. 이곳의 인건비를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었다. 마침 사무실이 집에서 별로 멀지도 않고.


내가 원했던 것은 그 문제의 영어 일기를 첨삭해주는 수업이었는데, 첫 수업에서 아들이 가져간 글을 고쳐주고 나서 콜린은 문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작문을 해봐야 발전이 없다고 주장하며 일단 문법 수업을 하고 싶다고 어필했다. 한 시간이 훨씬 넘은 상황에서도 일기를 끝까지 봐주는 오기는 좋았는데, (초과 수업이 무려 45분) 간단한 문장을 하나 고치는 데에 걸리는 심사숙고 시간이 너무 길고(문학을 만들어달라는 건 아닌데) 세계적인 히트를 친 '쥬라기 공원'조차 몰라서 문맥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뭔가 건방지게 교사로서의 평가를 좋게 할 수가 없더라고. 어쨌든 교사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서 한 달 동안은 콜린이 원하는 대로 '단어 블럭'을 가지고(유, 유치하지 않나요) 문법 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교습이 한 달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 4주째인 오늘까지 콜린은 항상 초과 수업을 해주고 있다. 나는 솔직히 작문으로 수업 포커스를 빨리 옮기고 싶다. 작문 첨삭을 메인으로 다른 교사를 찾아야 하나 고민도 되고. 보통 엄마들은 시간 초과를 좋아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수업 진행에 요령이 없는 것 으로 보이니 역시 내가 콜린을 안 좋아하는 게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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