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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Feb 13. 2016

이제 나도 운전면허 소지자

안녕 널 정말 오래 기다렸단다

떠나기 전에 남편은 미국 면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었다. 여권은 신분증으로 쓰기엔 너무 크고 중요한 물건이니 가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게 어떻겠냐고. 자, 이쯤 되면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았을 텐데? 같이 15년을 살고도 날 몰라? 괜찮아, 국제면허증 시효는 1년이니까 쓰다가 돌아오면 돼. 당신은 따고 싶으면 따. 나는 패스.


하지만 도착하고 나서 알게 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

미국 면허 없으면 자동차 보험료가 두 배 비싸다. (이런 써글!!!)

보험의 나라답게 정말 많은 회사가 경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보험료가 싸지는 않다. 정말 싸다고 사람들이 매우 부러워한 계약은 1년에 1300불짜리(뉴욕 언저리에 사는 누군가의 계약이라고 들었다), 시골이라 싸야 할 것 같은데 최고 기록을 세운 우리 부부의 보험료는 매달 약 250불에 달한다. 최대한 빨리 미국 면허를 따서 인터넷이나 전화로 가입하면서 해약 수수료 50불 정도를 내버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돈을 아끼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아줌마는 곧바로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수순을 밟기 시작했는데 사무소에 시험을 보러 갔던 1월 초의 어느 날, 진짜 충격적인 실수가 발견되었다.


우리 둘은 국제면허증과 여권만 자랑스럽게 들고 비행기를 탄 것이다. 국제면허증은 실제 면허증의 번역 공증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마디로 우리는 무면허였던 것. 국제면허 소지자는 차를 운전할 자격도 유지하면서 빠른 시일(10일~15일) 안에 도로 주행까지 마칠 수 있지만 그것도 한국에서 발급한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카피 그런 거 안 된다. 실물! 실물!! 만약 그것 없이 제로에서 면허를 취득한다면 시일이 오래 걸릴 뿐더러 시험을 봐서 미국 면허를 취득하기 전까지 무면허;; 으앙.... 그 날 오후 한국 시간으로 이른 아침에 친정에 전화를 걸어 우리집에서 면허증을 찾아서 국제특급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지금 당장! 그날 한국 시간으로 낮에 면허증은 우체국에서 미국으로 떠났다.


떠났다.

떠났다고.

그런데 안 온다고!!!


바로 그 다음날 시카고에 도착한 후로 운전면허증은 국제미아가 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왔다. 기다린 지 보름이 지나고 나서, 얘네에게 큰 문제가 생겼음을 서로 인정한 후 힘든 결단을 내렸다. 바로 한국에서 다시 재발급을 받은 후에 그걸 다시 받기로 한 것이다. 사실 시카고 영사관에서 재발급을 받는 방법도 있었지만 직접 가지 않으면 우편처리라는 점에서 미심쩍기는 마찬가지였고, 한국에서는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면 당일에 바로 재발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1월 13일에 떠나 14일에 미아가 되어 어디에 갔는지 알 수 없는 운전면허증을 잊고 새출발을 하기로  마음먹은 지 사흘 후, 1월 31일에 새로 만든 면허증은 EMS 프리미엄 대봉투에 담겨 미국에 도착했다. 어이없다 싶을 정도로 싱겁게 빨리. 그리고 더 어이없는 일은 이틀 후에 일어났다. 1호 EMS가(원래 면허증이) 순박한 미국 할야아버지 배달원의 손을 거쳐 내게 온 것이다. 14일에 시카고에 도착한 후 너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너는 1월 31일에 다시 한국을 떠나야 했던 거니...??


우린 의도하지 않은 면허증 부자가 되었고, 남편이 수업이 없는 날에 필기시험을 보러 갔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고 2월 4일 정말 야릇한 한국어(한양타자체 폰트) 시험지로 시험을 마치고(정보망에서 돌던 시험 문항이랑 90프로 넘게 일치) 2월 12일 주행시험이 잡혔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는 켄터키주가 발급한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떳떳한 운전자다.


사실 어제 저녁에 남편이 면허시험장 근처에서 연습하자고 날 데리고 나갔는데, 내가 그레이 아나토미가 휴방을 마치고 복귀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절박하게 집에 돌아오고 싶어했기 때문에 연습은 유야무야되었다. 만약 오늘 개친절한 흑인 시험관(아내가 주한미군 출신, 불고기와 찌개 사랑함. 목소리 개감미롭고 영어도 천천히 해주고 완전 짱)이 당첨되지 않았고, 내가 더 실수를 해서 면허 취득에 실패했더라면 남편이 얼마나 날 속으로 욕했을 것인가. "너 합격" 들었을 때 진심 기뻤다.


혹시 정보를 찾아 들어오신 분을 위한 특기사항(켄터키주)

1. 필기시험은 한국어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쩔죠. 한국인들을 누구라도 아실 테니 찾아보면 시험문제가 돌아다닙니다.

2. 외국인, 사정상 면허가 말소된 사람들은 시험 응시 전에 페이퍼워크를 좀 해야 합니다. (안내해줄 거예요~)

3. 필기시험 전에 눈이 정상인지 테스트하는 기계가 있습니다. 안과 시력검사 기계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됨다. 숫자 읽기 시키고, 앞으로 튀어나와 보이는 신호표시 물어보고, 점이 네모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물어보고, 마지막으로 빨간 점멸등이 양눈의 어느 쪽에서 깜빡이는지 물어보는데 안경 착용자인 경우 마지막 점멸등이 너무 고개를 많이 들이댄 상태에서는 안 보일 수 있으니 요령껏. 그렇다고 이마를 너무 떼면 문제가 아예 안 보입니다~

4.주행시험 시간을 조금 앞당겨 갔더니 시험도 빨리 보게 해주더라고요? 지정된 주차장에 자기 차를 대고 시험관이 동승해서 시작합니다. 주행 전에 깜빡이, 브레이크등, 창문 조작 등 기본 사항을 체크하고 나서 옆자리에 타실 겁니다. 시키는 대로 다니면 되는데 주의할 점은 지정된 곳에 후진 주차로 차를 넣을 때에도 깜빡이 쓸 것(비상등 아님), 스톱 사인에서 완전히 멈추고 기다릴 것, 턴어바웃(앞으로 가다 멈추고 지나친 오른쪽 길로 차를 후진시켰다가 다시 좌회전해서 반대 방향 주행)할 때도 깜빡이! 풀오버(세우기) 할 때 핸들 잘 꺾어두기 정도만 주의하면 나 같은 운전무능자도 합격합니다.

5. 운전면허증은 합격 후 20달러 수수료를 내면 곧바로 사진촬영하고 내줍니다. 수수료는 현금으로 내야 카드 수수료(2불) 절약. 아파트 호수를 주소에 안 새겨주는 경우가 있으니 주소 잘 살펴보세요. (나 다시 만들었음)


플러스 미국으로 보내는 EMS는 프리미엄으로 보내세요. 핸들러가 UPS라 추적이 확실합니다. EMS는 미국 도착 후엔 추적 불가.


자!! 이제 보험 갈아탈 수 있다!! 행복...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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