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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Feb 04. 2016

아마존과 나

이제 너와 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살림을 장만한 다른 두 가족은 월마트와 아마존으로 집을 채웠다고 들었다. 아마존은 한국에서 직구족이 사랑하는 인터넷쇼핑 중 하나인 것도 알고 있었다. 연말에서 연초까지 아마존의 프라임 회원 무료 한 달 광고가 줄기차게 나왔다. 그런데도 나는 용기가 나지 않아 버티다가, 한국에서 가지고 온 아들의 백팩이 망가졌을 때 정말 힘들게 모험을 시작했다.  


아디다스 가방이 약 40달러, 이건 해볼 만해~ 하고 새 주소 입력과 카드 교체, 결제까지 힘들게 마쳤는데 아아... 이틀 만에 온다던 가방이 도무지 도착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흘을 기다린 후에 배송조회를 했더니 이런 써글, UPS 놈들이 나한테 이미 배달을 했다고 하네? 너 지금 나한테 사기치나요? 누가 내 소포 훔쳐갔나요? 엄청 떨면서 아마존 고객 상담센터에 글을 남겼더니 굉장히 빨리, 배달이 되지 않았는데 배달이 되었다고 잘못 입력되는 경우가 있으며, 사흘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으면 또 연락을 달라는 대답이 왔다. 그리고 자기들 잘못이 있으니 지금 무료로 체험하고 있는 프라임 회원 자격을 한 달 연장해주겠다고. 기다려보라는 기한이었던 13일에 아들의 가방은 우편함 안에 (힘들게) 들어가 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나는 돈을 날리지 않았음에 매우 감사하며 쇼핑을 마쳤다.


첫 아마존 경험이 미묘했던 관계로 다음 쇼핑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할 수가 있었다. 아이템은 한국에서 제일 싸게 사봐야 3만원 가까이 나갔던 CLA(natrol 제품)였는데, 아이허브에서 사게 되면 배송비 때문에 쓸데없이 물건을 많이 사게 될 것 같아서 아마존에서 최저가(라고 짐작되는)를 검색해서 한국과 비교하면 반값에 샀다. 그리고 남편이 쓰던 전기면도기님이 15년 정도 지나고 나니 예전같지 않다고 해서 교체해주기 위해 약 80달러를 주고 주문했다. 자, 이 정도면 잘했어! 이번엔 잘 올 거야! 하고 의기양양하고 있는데 주문한 날 오후에 코스트코에 갔다가 거의 유사한 모델이 교체 헤드와 함께 20달러 싸게 팔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에서도 궁상맞은 아줌마의 영혼을 버리지 못한 나는 그 자리에서 아마존에 접속해서 면도기에 대한 구매를 취소하겠다는 신청을 한 후에 그걸 샀다. (결혼기념일 때쯤에 남편에게 깜짝  선물을 해주려 했지만 이벤트는 돈보다 하찮다)


배송 전 취소 신청은 안타깝게도 허사로 돌아갔다. 저녁에 이메일을 보니 "네 물건 이미 떠났음"이라는 메일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바로 다음 날 소포가 도착했다. (예정보다 하루 빨리)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마존이 시키는 대로 반품 절차를 따랐다. 먼저 라벨을 프린트해서 양면 테이프로 상자에 잘 붙이고 나서 포장을 마쳤다. 내가 아는 영어로는 내가 직접 보내면 배송료가 무료라고 나와 있었다. 그 다음엔 UPS를 취급하는 점포에 가서 확인하며 송장을 받아가며 보내는 것이 순서일 텐데 여기서 갑자기 객기가 발동한 나는 drop off 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봤더니 drop box가 집에서 정말 가깝더란 말이지! 차를 운전할 필요도 없고, 미국 사람한테 또 익스큐즈미를 날려가며 물어볼 필요도 없단 말이지!


나는 무모하게 그곳으로 갔다. 미국 우체국 우편함과 페덱스함과 함께 서 있는 UPS함에 나는 말 그대로 덜덜 떨면서 85달러짜리 면도기를 투척해넣었다. 1월 31일 오후 4시쯤. 만약 소포 전달이 망하면 난 그 돈을 장렬하게 날린 거란 걸 알면서. 그리고 2월 1일 저녁 아마존에서 내 반품이 확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고 2월 2일 밤에 결제했던 돈 전액이 내 계좌로 다시 돌아왔다. 나흘 동안 이 모든 일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흠잡을 데 없는 고객 대응, 처리 속도다. 아마존은 확실하게 선진국의 인터넷 쇼핑이더라.


하지만 제발 택배를 문앞에 두고 가는 것 좀 그만하면 안 되겠니? 전화 한 통이나 문자 한 통 주면 안 되겠니? 귀도 안 좋은데 문에 초인종도 없어서 노크 소리 놓쳤을까 봐 심장이 벌렁거린다.


참, 프라임 서비스는 자동으로 유료전환되게 되어 있고 연회비는 무려 백불에 달하니 서비스로 받은 기간 안에 칼같이 중단 예정~ 더 이상의 호갱은 거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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