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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Apr 04. 2016

두 번째 여행 시작일

바람과 함께 달리다

일단 이 시기에 아틀란타로 가자는 것은 확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재외국민 선거를 할 수 있는 곳 중 이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아틀란타였기 때문이다. 진짜 헬조선만 생각하면 욕이 더럭더럭 나오지만 선거는 해야 하니까, 2월에 일찌감치 등록도 마쳐놓은 상태였다.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여기서 6시간 정도면 간다니까 그 정도면 동부 갔을 때보다는 껌 같겠군. 가서 투표하는 김에 1박 정도의 여행을 하고 오면 좋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 시기가 아들 학생들의 봄방학과 맞물리면서, 아빠 학생들은 작당해서 '캠핑' 계획을 추가했다. 죽고 못 사는 그 네 가족의 연합 캠핑을. 아틀란타로 가는 노선 근처에 테네시의 스모키마운틴에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캠핑장이 있다나?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는 여름 장기 여행을 모두 캠핑 형식으로 떠나기로 했기 때문에 다들 장비도 있으니 으쌰으쌰 신나서 2박 캠핑을 결정해버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것 보세요? 세상에는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죠? 


바로 내가 아주아주 캠핑을 안 좋아합니다만??

(미국 여행 자체를 좋아하지 않지만 캠핑이라면... 더 싫음;;)


게다가 그 연합에는 내가 이미 포기한 주당 부부가 속해 있다. 별이 보이는 아름다운 산 속에서 얼마나 술을 (처)마시고 싶을까 생각을 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서 처음부터 나는 내 남편에게 "곰에게 우리 개가 얼마나 맛있어 보이겠는가. 게다가 우리 개는 사교성도 없는데 다른 집 애들은 얘를 보면 괴성을 질러서 서로 흥분과 공포 상태가 된다. 무엇보다 나는 캠핑과 술을 모두 싫어한다. 니가 가라 캠핑." 이런 식으로 어필해서 캠핑에선 빠지고, 여기서 4시간 정도 떨어진 캠핑장까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내가 차를 몰고 간 다음 합류해서 아틀란타... 이런 계획을 짰다.


그런데 계획을 짜고 나서 또 하나 깨달았는데


내가 아주아주 운전을 잘 못하는 데다가 무서워합니다만??


개와 함께 미국 고속도로를 4시간 달린다는 생각을 하니 땀이 조르륵 났다. 게다가 캠핑장 근처로 가면 휴대폰은 먹통 상태가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나는 크리미널 마인드를 한 회도 빼놓지 않고 열혈 시청한 사람이다. 나는 혼자 고민 끝에 (남편이 기분 좋아 보일 때를 신중하게 골라서) 내가 투표를 포기할 테니 여행은 너네끼리 가라고 말을 꺼냈다. 가족이 함께 가야 의미가 있지 않냐며(아니, 난 괜찮아;;) 남편이 매우 속상해했지만 또 마누라가 그렇게 홀로 운전이 무섭다는데 강요할 수도 없어서 그렇게 결론이 나는 분위기가 되었다. 혼자 보낼 휴가에 들떠 있는데 그때 S씨가 갑자기 자기도 남편과 아이들만 캠핑장에 보낼 테니 둘이서 캠핑장 합류를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여자 둘이(개까지 하면 셋이지만..) 함께 짧은 여행 좋지 않냐면서. 그 연락을 받았을 때의 솔직한 심정은 학교 땡땡이를 치려다가 걸린 것 같았다.


다른 가족들이 계획한 40일 넘는 여름 캠핑 여행이 본격적이다 보니 S씨네 가족이 물려받은 텐트는 좀 좁고 부족하다며 새로 텐트를 샀다. 따라서 낡은 텐트를 우리 남편과 아들이 다시 물려받게 되었고, 침낭도 두 개 예전 거주자 가족이 남겨두고 갔다. 따라서 월마트에서 산 17불짜리 에어매트 하나만 가지고 그들은 예정대로 스모키마운틴으로 떠났다. 남자들을 보낸 후 S씨와 나는 이틀 동안 느긋하게 쇼핑도 즐기고 같이 간식도 먹고 밥도 먹고 즐겁게 놀다가 만우절 새벽에 함께 출발했다.


그저 우직하게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달렸다. 날이 밝은 후에는 나름 제한속도까지 밟으면서 왔는데도 예정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간에서 버거킹 모닝 메뉴로 아침 먹은 것과 주유 한 것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운전은 S씨가 한 번 교대해줘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스모키마운틴 주차장까지 들어오기 30분 전부터 전화는 먹통이 되었다. 들어가는 길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옆에는 계곡이 있어서 느낌이 마치, 한국의 한 국립공원 느낌이었다. 평지가 많은 넓은 나라라서 이런 걸 보면 사람들이 색다르다고 좋아하나 보다... 생각했다. 한국엔 산이 참 흔해서 말이죠. 그래도 맑은 공기와 숲은 그럭저럭 기분이 좋았다. (딱 그 정도 구경을 하는 정도가 좋다!)


주차장에는 산 속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 조금 지친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가족의 차로 옮겨타고 그곳에서 헤어졌다. 다음 행선지가 같기는 한데, 처음부터 아틀란타부터는 각 가족 단위로 움직이자고 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참 피곤한 여편네라고 남편은 생각했겠지만, 내가 그 말 안 했으면 호텔도 같은 곳으로 잡고 식사도 같이 했을 거다. 제발 좀!!!)


내가 가기 싫어서 핑계를 댄 거긴 한데, 스모키마운틴은 실제 곰이 많기로도 손꼽히는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곰을 만났을 때 절대 죽은 척하지 말라는 지침을 읽었다고 남편이 얘기해줬다. 도망도 치지 말란다. (곰이 빨라서 소용없음...) 최대한 몸집을 크게 보이게 하고, 돌 던지고, 사투를 벌여서 살아남으라는 지침은... 음.... 너무 답이 없어 보이지만요. 내 소중한 새끼가 곰에 물리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서 참 기뻐요.


운전대를 남편이 잡고, 우리는 아틀란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테네시까지는 내려온 상태니까 아틀란타 그까이거, 한 4시간이면 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내려올 때에도 4시간일 줄 알았던 여정이 4시간 반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어쨌든, 오는 길 중간에 점심을 피자헛에서 먹었는데 모든 음식이 다 짠 미국에서도 특히 짠 피자를 먹고 싶다면 피자헛! 강추합니다. (다신 안 갈 생각임)


그래서 아틀란타 얘기는 이 뒤로 이어짐이어짐열매... (중딩 원피스 덕후 아들 말투를 따라해봤는데 무리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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