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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Apr 06. 2016

차가 많아 아틀란타

아, 복숭아의 고장이랍니다

시골 사람이라고 놀려도 할 수 없지만, 우리 가족은 미국에 온 후로 시내의 교통정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틀란타의 외곽에서부터 느껴지는 거대하고 느린 차량의 물결... 여행객인 우리는 일정이 바빴고, 그래서 좀 초조했다. 우리가 처음 가려고 한 목적지는 월드 오브 코카콜라였는데, 평생 탄산을 맘껏 마셔보지 못한 아들이 간절하게 원한 탄산의 성지라 하겠다. 미리 조사한 바에 따르면 5시까지 한다고 하는데, 3시에도 우린 아직 아틀란타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였다. 11시쯤 스모키마운틴에서 출발했는데 (중간에 점심이 있긴 했어도)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소요된 상황에 아들은 매우 심기가 불편해졌다.


4시에도 아직 우리는 길 위에 있었고, 결국 오늘 우리 가족이 신성하신 코카콜라의 정기를 받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온라인 예매 할인이 없어서 미리 표를 사지 않았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짧은 야외 생활에 지친 아빠는 특히 샤워를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우린 일단 방향을 틀어 아틀란타의 북서쪽 메리에타 지역에 있는 익스텐디드 스테이 아메리카 호텔로 향했다. 미국에 700개 정도, (정말 다니다 보면 발길에 채이게 많다) 엄청 크고 저렴한 이 호텔 체인 중에서도 이 지점은 꽤 오래 전에 지어진 듯, 전체적으로 낡은 분위기였다. 숙소를 이 체인으로 결정한 이유는 펫피(개 숙박료)가 쌌기 때문인데, 원래 1박에 20불인 개 숙박료가 딱 1박만 할 경우에는 할증이 된다고 해서 5불을 더 냈다. 방은 그렇게 좁지 않았는데 욕실이 좁았고, 무엇보다 개밥을 꺼내자마자 나타난 개미가... ㅠ_ㅠ 진짜 이곳은 pet friendly라기보다는 ant friendly였다. 주차장 화단에 있는 나무에도 정체 모를 연두색 애벌레들이 트리 장식물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서 소스라쳤는데, 따뜻한 남쪽 고장이니 방제에도 좀 신경 쓰셨으면!! 남편이 샤워를 하는 사이에 저녁에 움직일 곳들을 어떤 순서로 얼마 시간 예상을 잡고 움직일지 지도 검색을 했는데, 리스트는 다음과 같았다.


1. 한인타운의 경미반점(짜장면 덕후들의 한풀이 타임)

2. 한인타운의 한인마트(되게 크다고 소문 자자)

3. 시내의 바서티(핫도그와 복숭아파이가 시그니처)

   &시내의 레녹스 스퀘어몰(옛날에 담당했던 만화가와 약속- 날 내려주고 둘이 바서티로 고고하기로)


오면서 꽤나 아틀란타님의 교통상황에 시달린 터라, 이동 시간은 넉넉하게 잡기로 했다. 개를 숙소에 놓고 깨끗해진 몸으로 집을 나섰는데, 이번엔 각오를 하고 달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빨리 아틀란타 북동부 덜루스에 있는 경미반점에 도착했다. '뉴코아'라는 이름을 가진 상가 앞에 차를 대면서 우리는 촌스럽게 경탄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 상가 간판이 죄다 한국어였다. 한인타운이 없는 동네에서 살던 우리들한테는 일종의 문화충격! 그 많은 간판 속 1층에 우리의 목적지 경미반점이 있었다. 짜장면 맛이 그럭저럭 한국 같은 감칠맛이 난다는 인터넷 정보가 있었는데, 주인의 서비스는 엉망이라는 글도 같이 검색되었기 때문에 들어가기 전 남편에게 서비스에 대한 기대를 접자는 이야기를 하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세 분이세요?"라는 한국어에 남편은 또 감동하고... 자리 안내부터 메뉴 고를 때까지 주인(과 그 아들인 듯한 종업원)의 서비스는 매우 친절했다. 악평에 자극받아 개선을 한 것인지?? 음식은 한국보다는 약간 시간이 걸려 나왔는데 일단 비주얼은 완전히 같았다. 짜장면만 먹을 수는 없다며(그 후에도 이것저것 먹을 거니까 짜장면만 먹으라고 권했다겨 칼 맞을 뻔) 탕수육도 시켰는데, 이게 또 반전이었던 게 짜장면은 사실 약간 짜서(미국인가요 ㅠ-ㅠ) 완전히 기대 이상은 아니었는데 탕수육이 정말 맛있었다!! 작은 탕수육과 자장면 두 개는 세트로, 짜장면은 하나 추가로 주문해서 팁 포함 약 37불이 나왔으니 가실 분들은 참조.


우리 동네에서 아틀란타에 간다고 하면 (촌스럽게 들리겠지만) 한인마트에서 쌀이랑 이거저거 산다고 다들 들뜬다. 아틀란타 한인타운의 한인마트는 여기 한국 아줌마들에게는 꿈의 마켓 그 자체다. 가기 직전에 조금 더 일찍 그쪽에 다녀온 사람의 정보에 의하면 H마트라는 커다란, 아주 커다란 마트가 있다고 해서 가기 전부터 설렜는데... 그래서 밥 먹고 바로 갔는데... 실제 컸다! 마트 한켠에는 각종 튀김과 분식을 파는 푸드코트까지 있다. 우리가 간 곳은 덜루스에 있는 지점인데, 아틀란타 지역에 총 세 개의 H마트와, 미주 지역에 한국 음식을 제조해서 판매하는 아씨라는 브랜드에서 경영하는 아씨마트도 있다고 한다. 시간이 급해서 마트를 찬찬히 둘러보지는 못하고 세일 중인 햇반(브랜드는 처음 보는 것)과 라면, 여행 중에 쓸 컵라면과 호떡 믹스, 과자, 그리고.... 디저트로 푸드코트 투고로 하나 샀다. 허... 디저트로 순대... 사실은 디저트로 양념치킨을 먹으려다가 마침 경미반점 옆에 있는 치킨집이 내부수리 중이라서 못 샀으니까 이 정도면 양반일세.


배가 부르고 나자 굳이 칠리핫도그나 피치파이가 땡기지 않는지, 다행히 아들은 바서티는 안 가도 된다는 의견을 내놨고, 우리는 레녹스 스퀘어몰로 갔다. 다행히 약속시간 8시에 늦지 않게 도착하고(야외 주차장에 무료로 차를 댈 수 있다니 참 아름다웠다), 나는 약속장소인 치즈케이크팩토리로, 남편과 아들은 이곳저곳 느긋하게 둘러보러 헤어졌다.


10년 만에 만난 K씨는 늦게 낳은 아이의 육아에다가, 갑상선암 투병 때문에 많이 변해 있었다. 나를 보자 갑자기 눈물을 흘려서 깜짝 놀랐다. 서로 아주아주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타지에서 오랜만에 그것도 참 여러 가지 일을 겪고 나서 만나게 되니 감정이 고양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나 역시 눈에 눈물이 고여서 또 놀랐으니까. 지난 긴 시간을 1시간 동안 수다로 급하게 풀어보고 나서 다시 우리는 헤어졌다. 치즈케이크팩토리라는 체인은 엄청 많은 메뉴로 유명한 음식점이어서, 나는 자신들만의 잇 아이템이 없는 시시한 식당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내부 장식이나 가격, 웨이터와 웨이트리스의 행색이 예상 외로 고급져서 좀 놀랐다. 음식맛은 어떨지 알 수 없다. 우리 둘 다 밥 먹고 나온 터라 쉐이크만 한 잔씩 먹었기 때문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쉐이크는 스테이크앤쉐이크가 낫습디다. (가격이 두 배인데 말이죠)


K씨와 헤어질 무렵부터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레녹스 스퀘어는 우리 동네 몰보다 훨씬 멋지고 컸지만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아서 더 구경하기는 힘들었다. 다음 날 일정이 많기도 해서 우리는 또 서둘러서 숙소로 돌아왔다. 개미들 사이에 두고 온 우리 개도 걱정이 됐고.


호텔에 돌아와서 순대와 홈런볼을 부지런히 먹어치웠다. 개미의 습격을 방지하기 위해서! 밤새 복도가 시끄러웠고 개가 짖었는데 개 짖는 소리에 깬 사람은 나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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