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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un 23. 2016

바람과 언덕의 도시

라고 쓰면 되게 낭만적이다

브런치 구독자가 100명이 넘었다. 사실 구독을 충동적으로 눌렀다가 다시는 안 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실제 보는 사람은 몇 명쯤 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사실 글을 쓴다는 사람들은 모두 일정 정도 '관종'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라,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고 그 숫자는 때로 (착각적) 권력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혼자서 끄적끄적 뭔가 정리를 해둔다는 느낌으로 하고 있는 소일거리이긴 해도 백 명은 예상 밖의 관심이고 참 고맙다.


과연 어떤 걸 보고 싶어서 오셨는지 모르지만 일단 오늘은 한 재산을 들여서 갔던 여행에 대한 정리를 계속 하기로 합니다요. (넉 달 퓨어 생활비에 육박하는 비용이었으니까 한 재산 맞겠지)


샌 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날은 그야말로 호텔에서 잠만 잤고,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관광이 시작됐다. 주차 이야기는 따로 뺐을 정도로 대단했는데 하여간 관광의 시작부터 가장 긴장되는 점은 바로 그거였으니까. 아침에 골든게이트브릿지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아름다운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또 자전거를 빌리기 전에 차를 대야 했다. 일단 떨리는 마음으로 금문교(이게 짧아서 마음에 드니 앞으로 이렇게 부르기로) 근처 탐색을 해봤는데, 남편은 블로거 중에서 그쪽에 있는 큰 스포츠용품 주차장을 똑똑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있다며 그 가게 이름을 내비에 찍었다. sportsbasement 뭐 이런 이름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착실하게 내비를 찍고 따라갔는데 읭? 가야 할 길이 임시로 세운 콘으로 막혀 있네? 경찰들이 막 나와서 정리하네? 어어어? 저기 저 달리는 사람들이랑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뭐지? exite..  어쩌구?


알고 보니 그날 그곳에서는 마침 시민 운동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관광객이 한가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먼저 차를 돌려 피셔맨스와프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일정을 대폭 수선해야 하나 좀 머리가 아픈 와중에, 일단은 자전거를 빌리기로 결정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능하다면 금문교를 포함, 샌 프란시스코를 모두 돌아보자는 생각이었다. (주차료와 렌트비가상당한데 교통수단에 돈 좀 그만 들이고 싶었다, 솔직히) 자전거 대여비용도 저렴하진 않다. 하루 32불, 만약 좀 근심이 많은 사람이라 보험료를 더하면 더 비싸다. 관광객을 위한 지도나 팜플렛을 보면 5불 정도 할인받는 쿠폰이 붙어 있어서 우린 27불로 하루 빌렸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나의 이 날을 지옥으로 만들고 말았다.


먼저, 목표로 했던 금문교로 방향을 잡았다. 자전거 대여점 아저씨는 멋진 지도를 주며, 그대로 가면 금문교를 건너 소살리토라는 동네까지 가서 근사한 레스토랑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우리와 거의 동시에 자전거를 빌리고 있던 커플이 골든게이트공원도 가보고 싶다고 하자, 그러면 갔다 오라고 가능하다고 흔쾌히 대답도 하고. 지도로 보는 샌 프란시스코는 생각보다 아담하달까. 그랬는데...


사실 금문교에 갈 때까지, 딱 그때까지 탈 만했던 것 같다. 평지였고, 자전거끼리 달리는 도로도 쾌적하고 바닷가도 그림 같았고... 아까 아침에 봤던 행사가 마무리 단계여서 '파이팅'하는 운동인들을 보는 것도 재밌었고. 하지만 금문교에 들어서기 위한 오르막길부터 이제 진짜 뭔가가 시작됐다! 무엇보다 바람이 엄청났다. 이미 호텔을 나올 때 긴 바지와 등산점퍼(한국인! ...내 유일한 캐주얼;; 재킷이다. 회사 행사 때문에 사둔)를 챙겨입기는 했지만 바람이 정말 살벌했다. 그리고 그 바람은 그 유명한 다리 위에 오르자 더 극성스럽게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지친 상태에서 다리 위를 달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게, 다리는 평평하지 않았다... ㅠ_ㅠ 맞바람이 거세게 불어올 때에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까지 했다. (지금도 무릎팍에 까진 자리) 중간에 자전거를 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이 다리 길이가 편도 2킬로미터가 훨씬 넘는다. 다리를 건너자, 그 뭐시기 동네로 가는 길이 장대한 내리막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걸 보자 소름이 끼쳤다. 지금은 행복해 보이는 저 내리막은 나중에 내가 울면서 올라야 할 오르막이라는 것이 자전거의 위대한 진실 아닌가. 나는 거의 울먹이며 남편과 아들에게 못 가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다행히 지금까지의 여정이 두 남자에게도 그리 쉽지는 않았는지, 둘 다 바로 돌아가서 골든게이트공원으로 가자는 의견을 모았다. 다시 그 바람을 맞으며 녹초가 되어 금문교를 다시 건너와 핫도그로 점심 요기를 때우고, 골든게이트파크로 향했다. 그런데 지도 바보인 세 사람은 아무리 지도를 봐도 간단해 보이는 '금문공원(역시 이쪽이 글자수가 적어)' 가기가 왜 이렇게 어렵지? 가던 길에 팰리스오브파인아츠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유럽을 잘 흉내낸 미국의 염원이 담긴 공원에서 한숨을 돌릴 때까진 또 좋았는데, 그 후 금문공원으로 가는 길은 길도 모르고 무엇보다...

언덕이.. ㅠ_ㅠ

언덕이 정말.... ㅠ_ㅠ


왜 내가 자전거로 샌 프란시스코를 돌아다니고 싶다고 했을까. 옛날에 난징에서 자전거로 생활할 때에도 이렇게 대대적인 언덕은 안 올라본 것 같은데... 다리힘이 모자라서 계속 끌고 올랐다. 골고다를 오르시던 J님 심정이 막 와닿는 느낌이었다. 길은 한 네 번쯤 물어보고, 언덕에서 죽고 싶은 건 한 다섯 번쯤? 결국 구글맵을 켜고 힘겹게 공원에 도착하자 벌써 시간은 4시가 거의 다 되었다. 공원 안에 있는 유료 박물관인 캘리포니아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에 들어가고 싶었던 아들은 울상을 지었다. 약속한 것이라 들어가서 보라고 하긴 했는데(5시 폐장) 솔직히 엄마아빠 표값 65불 정도는 너무 아깝다고 혼자 보냈다. 남편은 짠돌이 아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살짝 불퉁했지만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공원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름대로 대화 비슷한 것을 나누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춥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지치지만 않았어도 산책을 했을 텐데.... 금문공원이고자시고 힘들어서 둘러보기도 싫었음)


아들이 폐장 시간을 꽉 채우고 박물관에서 나온 다음, 우리는 갈 때보다는 훨씬 덜 헤매면서 자전거 반납소까지 왔다. 이렇게 얘기하면 굉장히 간단하지만 그 중간에 또 우린 많은 언덕길을 지나야 했다. 자전거를 업자에게 돌려줄 때에는 이 웬수 같은 것을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된다니 너무 기쁨... 뭐 이런 심정이었다. 저녁식사는 인앤아웃버거에서 먹었는데, 그야말로 샌 프란시스코의 관광객이 거기 다 모인 듯한 난장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부 지역의 대표적인 햄버거 브랜드인 데다가 가격이 착하더라고. 파이브가이즈보다 훨씬 싸서 보통 평범한 체인과 비슷했다. 하지만 먹을 자리를 찾는 일이 대단히 힘들었다. 결국 다 먹고 20분은 수다를 떠는 홍콩인 (추정) 가족들 옆에 정말이지 바로 옆에서 가드를 쳐서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인앤아웃 버거에 남편과 아들은 매우 만족했지만, 생야채 맛이 강하게 나는 인앤아웃 버거보다는 지진 재료로 기름지게 만드는 파이브가이즈가 내 취향에 맞는다. (인앤아웃은 버거킹하고 가까운 느낌. 생양파 맛이...)

인앤아웃 버거를 다 먹고 나서 피셔맨스와프 구경을 조금 더 한 후에, 우리는 타겟에 가서 물과 필요한 간식 같은 것을 사고(샌 프란시스코 안에서는 월마트 같은 흔한 마트도 발견하기 힘들었다) 어두워진 것을 확인하고 트윈픽스(유명한 90년대 미드와는 무관)로 향했다. 하지만 정작 올라가서는 너무나 깜깜하고 안내판도 부족해서 완전히 헤맸다. 높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보이는 샌 프란시스코의 야경이 아름답긴 했지만, 나는 20년 전에 빅토리아피크에서 본 홍콩 야경을 더 쳐주고 싶다.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샌 프란시스코의 살인적인 바람은 더 강해졌다. 솔직히 트윈픽스에서는 몸이 덜덜 떨려서 뭔가 생각을 깊게 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그 살인적인 자전거 강행군(탄 시간을 다 합쳐 생각하면 약 8시간을 탔다...) 덕분에 넓지 않은 샌 프란시스코 구석구석을 다 돌아본 느낌이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까 우리가 헤매고 다닌 데 이름이라 다 낯익고! 살짝 스페인 분위기가 나는 다양한 모양의 집과 파란 하늘과 바다는 참 아름다웠고 샌 프란시스코 인구의 40%를 차지한다는 중국계 사람들이 사는 차이나타운 지역은 약간 지저분하고 독특한 느낌이었다. 샌 프란시스코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초콜릿 기라델리는 내 입맛에 지나치게 달아서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첫날의 일정은 끝났다. 호텔에서 욕조에 들어가 다리 마사지를 30분은 넘게 했다. 잘 마사지해두지 않으면 다음 날은 걸어다닐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천: Palace of fine arts 국제 박람회 땜에 급조했다가 다시 지어서 남겼다는데 그만큼 사람들이 예뻐라 한 장소.

비추: 자전거 8시간, 강풍 덕분에 체감온도 5도는 내려가는 추운 날씨. 자전거는 타려면 돈 생각 말고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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