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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un 25. 2016

샌 프란시스코는 아직 계속된다

지금까지 추웠던 건 애교다, 애교

새 날이 밝았다. 다음 날은 그렇게 서두를 것 없으니 천천히 나가자는 분위기였다. (그 전날의 강행군 덕분에) 느즈막히 호텔을 나가서 피어39를 어슬렁거리며 구경했다. 바다사자가 모여들어서 (부킹을 하는지 어쩌는지 엄청 모여든다) 하여간 그것 때문에 다른 번호의 부두보다 훨씬 유명해진 곳인데, 에이 설마 뭐 애들이 항상 그렇게 많겠어? 싶었지만 정말 많이 계셨다. 그 중 좀 자그마한 한 마리는 고독을 짓씹고 있는 모습이 항상 낯가리는 우리 개 같아서 굉장히 눈길이 가더라. 아예 피어39 시설 안에 수많은 가게와 음식점이 있어서, 거기서도 맘만 먹으면 상당히 오래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약간 일찍 아들의 위시리스트에 있던 보딘으로 갔다. 베이커리를 겸하는 가게인데, 호불호가 갈리는 클램차우더가 명물이라고.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에 브래드보울 클램차우더는 두 개 시키고 피자를 작은 걸로 하나 시켰다. 셀프서비스라 팁이 들지 않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맛을 보니 음... 역시, 짜다. 미국적이군.... 그리고 브래드보울이 된 빵(이름 까먹었네)은 사워도우로 만든 것이라 엄청 셨다. 한 마디로 짜고 셨다. 피자 시키길 잘했다고 생각했으니 피자 역시 맛있지만 짰다. 내가 입맛이 저렴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미국에 와서 먹은 클램차우더 중 가장 맛있던 것은 레드랍스터(체인점)에서 먹은 것이었다. 고소하면서 안 짰거든!!! 어쨌든 샌 프란시스코의 명물이니까, 위시리스트니까 너무 초치지 않고 얌전히 먹고 나왔다.


약간 이른 점심 식사 후 주차를 다시 하고(이 스토리는 따로 있음) 그 다음엔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한 유람선을 타러 갔다. 생각보다 승객 수가 많지 않았다. 미국인 가족 4명과 중국인 커플 앤 친구들 6명쯤,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온 아줌마 일행 4명, 커플 두 쌍 정도? 멋지구리한 요트는 한 시간 반이 예정되어 있었다. 어디 가서든 배나 케이블카, 리프트 타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짧지 않은 시간이라 마음에 들었지만.... 후후, 이것도 역시 타보기 전엔 장담할 수 없는 거였지...


배가 정말 개빨리 달렸다.

거의 모터보트 탄 줄 알았다.

안 그래도 바람이 센데, 배 위에서 맞는 바닷바람은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알카트라즈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다. 배는 너무 빠르고, 금문교는 어제 본 거고, 배 떠난 지 30분이 지났을 때엔 여자애에게 푹 빠진 그 중국 남자애가 연신 볼뽀뽀를 하고 좋아 죽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졌다. 그냥 춥다는 생각밖에. 결국은 갑판을 포기하고 아담한 선실에 들어가서 매우 흐린 창을 통해 바깥을 쳐다보며 배를 탔다. 갑판 앞에서 난간을 잡고 신나게 배를 타던 아들은 특등석의 특권(물 뒤집어쓰기)을 지나치게 누린 다음에 덜덜 떨며 선실로 들어왔는데, 의외로 남편은 계속 갑판에 있었다. 샌 프란시스코를 끝없이 바라보면서. 나중에 물었더니 그는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가 부럽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미래는 나보다는 훨씬 밝을걸.


배에서 내릴 때 내 기분은 솔직히 말해서 "아! 해방이다!"였다. 얼마나 추웠냐면 차는 햇빛을 받아 따뜻할 테니까 셋이 가서 차에서 몸을 녹인 다음 다음 일정으로 가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예상한 대로 바람을 맞지 않은 차 안은 따뜻했다. 떠나기 싫을 정도로....


아들은 샌 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전차(여기서는 '케이블카'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용례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전차라고 부르련다)를 타고 싶어했는데 그 요금이 일인당 무려 7불이었다. 하루 무제한으로 전차를 포함한 모든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뮤니 이용권이 20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히 비싸긴 하다. 솔직히 보통 버스 타는 돈보다 살짝 비싸서 3불 정도겠지 생각한 나는 샌 프란시스코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몰랐다. 미국에서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도시 상위권에 드는 도시였는 걸용. 다음 행선지인 롬바르드 길을 갈 때, 혹은 올 때 한번 타기로 결정했다. 딱 하나 장점이 있다면 여긴 별로 넓은 곳이 아니어서 롬바르드까지 걸을 수 있는, 1마일 이내였기 때문이다. 결국은 갈 때 걷고 올 때 타기로 결정한 후에 느긋하게 걸었다.



롬바르드는 샌 프란시스코의 급경사 언덕길에 만든 독특한 꼬불길로, 세계에서 가장 꼬부랑길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꼬부랑길을 만든 이유는 급격한 경사 때문이었다는데, 아름답게 꽃을 심어놓은 S자 사이사이의 조경 때문에 참 아름답다. 그리고 길 양쪽에는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다;; 관광객이 우글우글한 그 길에서 사는 기분이 절대 좋지는 않겠구나, 북촌 주민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경사로는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S자를 타고 내려오거나, 양쪽에 있는 계단을 타고 걸어 오르내릴 수 있는데 사실 걸어서 올라갈 때에는 그 재미를 느끼기 좀 힘들었다. 걸어서 내려갈 때도 비슷했을 것 같고, 가능하다면 자전거나 차량으로 S자를 실제 탈 것을 권한다. (내리막으로)


그 길을 통과한 후 대망의 전차를 타기 위해 기다렸는데, 처음엔 반대방향으로 달릴 뻔해서 매우 식겁했으나 바른 방향의 정류장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장실의 법칙과 마찬가지로 내가 기다리는 전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정말 한참만에 온 전차가 이유 불명하게(승객이 정말 꽉 들어찬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가버린 후 언덕 바람을 맞아 반 미친 나는 또 그 후 정말 한참만에 온 전차가 다시 그냥 가버릴까 봐 "오래 기다렸어욧!"하고 앞질러 소리를 질러서 셀프수치를 느껴야 했다. 전차는 힘들게 올라온 비탈길만큼을 신나게 무동력으로 내리달렸다. 와! 재밌어! 하며 신난 다음 순간(한 정거장 뒤)에 종점에 도착해서 내려야 했지만 즐겁긴 했다.


저녁식사로는 아들이 얘기한 다운타운의 셀프 스테이크집에 갔다. 셀프 스테이크라는 게 전혀 짐작도 되지 않았지만 정말 셀프 스테이크였다. Tad's steak라는 가게였는데, 가성비가 훌륭하다는 후기를 몇 개 봤다고 했다. 다운타운에서 발견한 많은 점포 중에서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사실 미국 시골에선 못 보는 유니클로였는데

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우린 바빴다고. 일단 태드한테 가서 스테이크를 얻어먹어야 해서. ㅎ

샌 프란시스코의 거지 같은 물가에 이미 익숙해졌는지, 셀프서비스로 먹는 스테이크 값이 18불인데 그게 어찌나 싸게 느껴지는지. ㅎㅎ 셋이서 그 집의 대표 스테이크를 시켜서 신나게 먹었다. 크기가 큰데, 아쉬운 점은 뼈가 붙은 고기라서 약간 불편하다. 육질은 괜찮고 메뉴에 이미 그린 샐러드가 포함되어 있어서 밸런스도 괜찮다.


맛있게 먹고 배를 채우고 나자 샌 프란시스코의 두 번째 밤이 다가왔다. 다음 날 예정이 빡세니까 어서어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따뜻한 호텔방을 생각만 해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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