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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un 29. 2016

원주민의 한서린 요세미티

라고는 해도 그저 아름답습니다

다음 날은 본질적으로 말해서 샌 프란시스코와는 그다지 연이 없는 날이었다. 요세미티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는 남편의 말 때문에 셋이서 버스투어로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투어도 검색하면 나오긴 하지만 미국 쪽이 싸서 계약했다. 그래도 한 사람이 150불씩 합니다요. 허허. 렌터카를 가지고 갈 수도 있지만, 지나친 운전 부담 때문에 이곳을 가장 보고 싶은 드라이버가 녹초가 될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짧은 하루라는 시간 안에 포인트 포인트를 슬기롭게 정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 전날 알아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리가 타기로 한 힐튼 호텔로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크기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에 무슨 차가 올까, 전형적인 미국 장거리버스(좌석이 굉장히 높고 화장실이 딸린)가 오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을 깨고 마을버스와 시내버스 중간 사이즈쯤 되는 차가 다가왔다. 시내 여러 픽업 포인트에서 삼삼오오 모여 탄 관광객들로 좌석은 거의 다 찼다. 우리 가이드 겸 드라이버의 이름은.... 음... 까먹었다. 자기 소개를 한 번밖에 안 한 다음에 계속 '우리 친구 아이가' 드립을 쳐대서 그를 우리 가족은 마이 프렌드라고 불렀다. 시내를 빠져나갈 때 그는 샌 프란시스코의 살인적인 물가와 주거비 때문에 시민들이 교외로 이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길게 했다. 아무래도 그 자신이 샌 프란시스코에서 견디지 못해 교외로 나간 케이스이기도 한 듯. 특히 자녀가 있는 가족들은 학군을 뒤섞어서 불량 학생들을 갱생시키려고 한 당국의 의도가 완전 빗나가는 바람에 엉망진창이 된 시내 공교육 기관을 떠나기 위해(사는 지역으로 다녀야 하니까) 이사를 많이 한다고.


차는 계속해서 달려갔다. 상당히 광대한 농업지대를 지났는데 캘리포니아의 그 지역에서 캘리포니아 산 와인의 90프로 이상이 생산된다고 했다. 보통 나파를 떠올리지만 나파 와인은 그렇게 양적으로는 많지 않다고. 이 지역에서 세계 아몬드 생산량도 거의 커버한다고 한다. 중간에 마켓에 내려서 필요한 음료수나 간식도 사고 화장실도 갔는데, 꼭~ 그 마트를 고집하는 걸 보니 일종의 협약이 맺어진 듯도 했다.


버스가 요세미티에 들어설 때쯤 우리들의 '친구'는 요세미티에 얽힌 여러 가지를 얘기했다. 요세미티에 홀딱 빠져 루즈벨트의 뒷배를 믿고 이 지역을 보호하는 데에 평생을 바쳤던 존 뮤어의 이야기와 그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이 사막지대를 지나 샌 프란시스코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었다는 얘기, 그리고 대륙횡단철도를 짓기 위해 건너온 중국인 노동자들이 샌 프란시스코 인구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이민자 구성원이 되었다는 얘기.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나) 금에 눈이 벌개서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요세미티를 침탈한 서양인들과 원주민의 분쟁 이야기였다. 요세미티라는 지역명에는 '죽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원주민의 리더였던 테나야는 매우 교육을 잘 받은 지적인 지도자였는데, 금을 찾아 온 왈패들은 그를 납치해서 금을 내놓으면 살려주겠다... 뭐 그런 협박을 했다고 한다. 테나야는 어차피 결말이 같을 것을 알고 거절했고, 서양미개인들은 그를 살해했고, 지도자를 잃은 원주민들은 그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부르르 떨었다는 그런 얘기. 근처의 지명이 모두 스페인식이나 하여간 유럽 냄새가 물씬 나는 것에 비하면 정말 이 태고의 자연이 살아 있는 국립공원은 매우 개성이 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투어에서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니 내용이 살짝 다른데,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겠거니.


어쨌든 친구 가이드는 참 바빴다. 운전하랴 얘기하랴... 첫 정차지는 공원 안으로 들어와서 요세미티에서 매우 유명하신 자이언트 세콰이어로 가는 트레일 시작점이었는데, 차에서 우릴 석방하기 전에 여유 부리지 말고 빨리 가라, 내려갔다가 올라올 건데 올라올 때 시간이 두 배 걸린다, 엉뚱한 길로 가면 길 잃고 네바다주로 간다, 신신당부를 해댔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짧은 것 같진 않았지만 난 매우 걱정이 많아서 나름대로 시킨 대로 부지런히 내려갔다. 가서 저건가 보다... 싶은 커다란 나무 구경도 하고, 터널처럼 신기하게 생긴 나무(이름 까먹었는데 그것도 명물이라고) 밑둥을 통과도 하고, 자자~ 늦으면 안 돼 하며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놈의 오르막길이 샌 프란시스코 추억을 되살리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내 체력을 바닥까지 긁어서 끌어올려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정신이 혼미해지게 힘들었다. 버스에 타니 우리보다도 나이가 많았던 어르신들은 아니나다를까 시간에 맞추지 못하셨다. 어르신들은 약 20분쯤 지각하셨는데, 마치 놔두고 가버릴 것처럼 시끄럽던 가이드는 아무 타박 하지 않고 인원을 챙긴 후에 버스를 출발시켰다.


다음 코스는 여행객들이 묵는 캐빈과 편의시설이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 근처에서 바로 폭포를 볼 수도 있는 곳이었다. 많이 지치고 배고픈 상태에서 카페테리아에 앉아 밥을 먹었는데, 산속이라 바가지를 씌워도 할 말 없는 곳일 텐데 음식값은 나름 양심적이어서 살짝 위로를 받았다. 이곳에서 지난 총선에서 ㅅㄴㄹ당 공천위원장이었다는 모 할아버지를 봤다. 팔자 늘어졌던데.


그 외에는 엘 캐피탄이라는, 세계 등반인의 에베레스트 버금가는 위시리스트라는 바위 봉우리와 브라이덜 베일(신부의 면사포라니 약간 내 취향 작명) 폭포, 하프돔이 한꺼번에 보이는 장소라고 쓰고 '기념 사진 촬영 포인트'라고 읽는 곳에 차를 정차했다. 가이드는 '이것이야말로 영감을 주는 위대한 경관'이라고 격찬을 했지만 엘에이와 샌 프란시스코에서 초대형 버스를 타고 도착한 등산복 한국 어르신들의 물결에 휘말리느라고 영감을 받기는 좀 힘들었다.


엘 캐피탄을 조금 단독적으로 볼 수 있는 곳에도 차를 세워줬는데, 마침 그 암벽을 오르는 사람이 자그마하게 보여서 매우 충격과 감탄을 먹었다. 암벽을 손상시킬 수 있는 못을 박을 수 없어, 줄 하나에 의지해서 휴식도 줄에 매달려 취하며 꼬박 이틀을 걸려야 정복할 수 있는 산이라고 한다. 진짜 내 아들이 산사나이만은 안 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그 외에도 가이드가 요세미티의 원래 이름(원주민들은 벌어진 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에 맞게 곰이 입을 벌린 것 같은 지형이 있다며 차를 세워줬는데 임금님의 의상이 올해 꾸뛰르로 보이는 신비로운 눈이 아니면 못 알아볼 것 같았다. 하긴 나는 '뭐뭐처럼 생긴 뭐뭐바위' 이런 거 볼 때마다 도저히 해독을 못해냈던 눈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곳에서 흐르는 맑은 강물은 정말 아름답고 청량했다.


샌 프란시스코로 복귀하는 도중에 버스는 트레저아일랜드(진짜 소설 속 보물섬과는 무관하게 해군 기지용으로 만들었던 인공섬임)에서 베이브릿지와 그 너머의 아름다운 도시 해변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정말 아름다웠는데 샌 프란시스코 돌아오자마자 그놈의 추위와 바람이 웰컴을 외치고 있어서 빛의 속도로 다시 차에 올랐다.


오밤중에야 돌아올 줄 알았는데 딱 저녁 먹을 때쯤 버스가 출발점으로 돌아왔고, 가이드는 버스 앞뒤에도 붙어 있는 안내문을 다시 우리에게 주지시켰다. 한 시간 동안 밥 먹을 때도 팁 주는데 자기는 하루 종일 같이 있었다는 점을 어필하며. 솔직히 셋이서 450불이나 썼기 때문에 되게 아까웠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프렌드에게 10불을 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전날 먹었던 태즈 스테이크가 한 번 더 먹고 싶다고 했고, 나는 사실 미국 사람들이 흔히 주문해 먹는 네모 상자의 볶음면을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샌 프란시스코의 마지막 밤이니 즐겁게 해줘야지 마음으로 다시 태즈에 가서 다른 메뉴를 시켜 먹었다.


요세미티... 아름다운 숲과 폭포와 바위와 물, 모든 것이 있는 곳이었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나는 10년 전에 가보았던 금강산에서 더 생생한 감동을 느꼈다. 내가 더 늙어서 감수성이 무뎌진 까닭일까.트윈픽스에서 내려다본 야경도 요세미티도 내게는 조금씩 부족한 느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베이브릿지의 야경을 보기 위하여 그쪽으로 차를 몇 번 왕복했다. 또 주차료를 고민하는 게 싫어서 그냥 차에서 보고 가자고 했더니 두 아들의 입이 댓발은 나오셨다.

광안대교 생각하며 또 무덤덤해진 것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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