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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여자 Jun 29. 2016

길 위의 미국

이것을 즐길 수 있으면 이게 또 재미겠지만

샌 프란시스코를 떠나는 아침이 오자, 솔직히 기뻤다. 적어도 천사의 도시 로스 앤젤레스에 가면 이렇게 춥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미 나성(이 이름을 알면 늙은 거임 ㅋ)은 내게 있어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침 식사를 뱃속에 밀어넣는데, (호텔 조식은 솔직히 좀 후진 수준) 그곳에서 (어느 나라에나 흔한) 외로운 노인을 만났다. 공항 바로 옆 숙소라 그런지 비행기를 타기 위해 묵었다고 한다. 그 노인은 물어보지 않았는데 자기 아들 이야기를 시작했고, 우연히도 거기서 south korea가 언급되었다. 당연히 우리 가족은 리액션 나갔고... 아들은 의정부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서 한국 처녀와 만나서 결혼해서 의사 도움을 받아 쌍둥이를 두었다고. (구체적이시군요...) 노인은 신이 나서 자기 아들이 매우 착하고 우수한 아이였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중국계 여자친구와 깨지고 나서(여친의 중국계 부모님이 중국계 사위를 원해서 직접 조달해왔다고 함) 충격을 받아 입대해서 아시아에 갔다는 스토리를 풀어주셨다. 매사에 삐딱한 나는 '음, 그 청년 참 취향이 한결같이 아시아 여자군.' 생각했을 뿐이다. 노인은 한국으로 가서 아들 가족과 함께 지낼 생각에 아주 신이 나 있었다. 나는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서 안다고 하면 오히려 살짝 불안감을 느낀다. '김치'와 '강남스타일' 얘기를 할까 봐서. -_- 하지 마요.


샌 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날 빌렸지만 거의 쓸 데가 없었던 멋지기만 한 SUV는 드디어 장거리를 뛰며 자기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맞았다. 남편은 SUV가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도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계약상 운전자가 남편이기도 하고 나는 SUV를 몰아본 적이 없어서 겁이 났음). 끝없는 서부의 사막 지역을 지루하게 달리면서도 남편은 연신 풍경이 장엄하고 신기하다며 행복해했다. 때때로 드는 생각인데 얘는 미국에서 트러커가 되어 새 미국 마누라를 맞이하여 뿌리 내리고 사는 게 행복일 것 같다.


남쪽으로 달리면서 점점 기온이 올라갔다 - 라고 쓰고 나는 행복해졌다라고 읽자. 처음에 미국 전체 지도를 봤을 때는 샌 프란시스코와 LA는 그렇게 멀지 않군 생각했는데 길 위로 달려가니까 꽤 멀었다. 8시 좀 넘어 출발했는데 한인민박에 체크인한 것은 오후 4시. 다행히 길에 주차를 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 생전 처음 이용해본 한인민박에서는 기묘한 냄새가 났다. 부엌에서 뭘 해먹은 결과일까;; 환기 장치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것 같고 욕실은 지독하게 낡았고. 시설은 정말정말 마음에 안 들었지만 가격이 매우 착했기 때문에 착하게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체크인을 할 때 난닝구를 입은 한국인 아저씨와 만났는데, 그 아저씨가 이 집 주인인가에 대해 남편과 살짝 토론을 벌였다. 그래도 LA에 이 정도 사이즈의 집을 가진 사람이면 자산가일 텐데 저렇게 살겠느냐... 고용인이다가 내 의견이었고 남편은 아닌 것 같다...였고. 어쨌든 그분이 사장님이시라면 꼭! 집 고치시고 민박비를 10불 정도씩 올려 받으시는 걸 추천한다.


저녁에는 아들과 내가 먹고 싶다고 계속 노래했던 한국식 양념치킨을 시켜 먹었다. 주소를 말해주는데 내가 "엔(N) 세라노 스트리트요..."라고 말하자 주인 아줌마가 "그거 엔이 아니고 노쓰(North)예요."라고 선생질을 해서 기분 팍 상해서 그런가 맛이 별로네. 나도 알거든요! 한국어로 얘기하는 거라 그렇게 말한 거거든요!! 그리고 미국 생활 하면서 배달 처음으로 해봤는데 배달할 때에도 팁 줘야 함. ㅋ 으음.... 아, 진짜 반년이 지났어도 팁 문화는 적응 안 되고 짜증난다. 물가를 15% 이상 올려버리는 문화라고.


저녁식사 후에 남편과 아들은 천문대를 본다며 나갔다. 힘도 좋지.... 나는 매우 수신상태가 안 좋은 텔레비전 채널을 연구하며 침대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쉬었다. 진짜 LA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 다음 날부터 볼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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