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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Dec 02. 2022

통제가 필요한 인간

모닝 일기를 쓴다. 오후 세 시가 넘었지만 나에게는 지금이 모닝이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생각했던 것을 적어보려 한다. 역시 이대로 괜찮은 가에 대한 것들이다. 마흔이 되어, 아니 서울에 올라온 이래로 다음 달 생활비 걱정을 하지 않은 적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여유 돈이 조금 생기고 있다. 나는 그 돈으로 주식에 넣었고 돈을 잃었다. 하루 종일 주식을 들여다보며 지내는 내가 싫다. 너무 오랫동안 돈을 잃은 상태가 되어 나는 이제 이 정도는 개의치 않아한다. 대신 실생활에서 돈을 잘 쓰지 않는다. 아니, 못 하고 있다. 카페에 가는 돈이 아까워지고 음식 재료비가 비싸다며 라면이나 레트로트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마찬가지 이유로 과일도 채소도 잘 사지 않는다. 물가가 올랐다. 라면 가격도 올랐지만, 다른 건 더 많이 올랐다. 이사를 해야 돼서 네이버 부동산을 보니 평균 월세도 올랐다.  


나는 우울하다. 우울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다음 목적지가 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게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나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우울할 수 밖에 없다. 애석하게도 이 상황은 내가 만들어 냈다. 보건소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그들이 아주 많이 부러웠다. 어릴 때, 엄마와 이모의 말을 듣고 간호 대학을 들어갔다면, 살면서 이래저래 갈팡질팡 했어도 다시 돌아갈 한 곳은 있지 않았을까. 나는 통제가 필요한 인간이었다. 간호대학이 아니더라도 특정 직업 인을 목표로 하는 과에 들어갔다면. 원하지 않든 원하는 일이든, 분위기와 무리에 흘러 설정된 과녁을 맞히려 노력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내가 다녔던 과는, 특히 나는 원자화된 기분으로 다녔던 것 같다. 불문학을 공부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적으로 질문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대학을 다니는 그 자체가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여겼을 뿐.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굳게 믿고 있었다. 어쩌면 생각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졸업장을 받고 집에 돌아가서, 엄마, 나 졸업했어. 라고 말하던 날,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 머리 뒤 꽉지를 끼고 침대에 누워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나 뭐하지..?

이제 나는 뭐 하면 되는 걸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낯선 감정, 이상하고 이상했다. 어떤 걸 끝을 맺었는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나는,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학교에서는 이제 사회로 나가라고 했는데, 내가 가야 할 사회는 어디인지. 다른 친구들은 어떤 걸 준비하는 걸까. 아아... 나는 왜 그런 것들에 무지했던 걸까.


나는 막연히, 내가 직장인 생활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걸 하면 돈이 따라오지 않을까,라는 정체 없는 허영이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고향을 떠나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채로, 꿈(?)을 찾아 서울로 터전을 이전하면서 돈의 존재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했고, 급발진 하듯 돈을 벌어야 하는 것으로 변경됐고 나는 한결같이 직장인 반 백수 반으로 엉금엉금 살아냈다. 나는 또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가끔 호주에 있었을 때 생각한다.그땐 언어도 비자 문제를 걱정할 필요 없는 한국에 돌아가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 자신 만만했던 나를 떠올리면 얼마나 우스운지. 문화, 언어에 대한 어려움이 없는데, 이곳에서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라는 생각을 하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일자리와 현실의 일자리의 미스매치였다. 내가 떠올리는 일자리란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이지 마트에서 계산을 하거나 화장실을 청소하거나 식당에서 식기를 닦거나, 그런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책상이 있는 사무실에서 깔끔한 옷을 입고, 출근하여 커피 한 잔을 하는 것이다.


내 경력은 일관 적이지 않다. 오래 하지 못하고 관두고 관뒀기 때문이다. (이건 복잡한 이유가 있었고, 꼭 힘들어서 많은 아니었다) 비극은 서른 네 살이 넘어 시작됐고 서른 다섯 때, 콜센터에 이력서를 냈다.업무에 겨우 적응을 했지만 하루하루 두려웠다. 특히 아침부터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아침부터 너무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일을 하는 내 자신이 싫었고 하루하루가 끔찍했다. 나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나, 나에게 월급을 주는 곳은 그런 회사 뿐이었고 그런 회사마저 관두면 신용불량자 신세가 될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주식이나 들여다볼 시간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신없이 먹고살 길을 찾는 것에 몰두해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어야 한다. 사업은 너무 아득하고, 직장을 가고 싶어도, 사실 내 나이에 직장에 들어가는 게 사업을 하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 흔한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직업 훈련 한 곳을 선택하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그나마 진입 장벽이 조금 낮아 보이는 건 회계 사무였고(쉽지 않다는 걸 안다) 배우는 기간이 다른 것에 비해 짧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을 몇 년 동안 했으며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왜 나는 하지 않는 걸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도서관에 간다.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내 인생을 인도해 주지 않을까, 라는 다시금 안일한 생각을 하며 에세이, 소설, 제테크 일관 되지 않은 독서를 한다. 내키는 대로 읽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나는 통제가 필요한 인간이다. 39년을 살고 서야, 내가 자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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