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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Jul 06. 2023

손끝으로 쓰는 일기

2023- 07-06/ 손끝으로 쓰는 일기


저녁 7시 반, 도서관에 왔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정리하고 나간다. 내키는 대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 한 자리에 앉겠지만, 한적한 공간은 정신이 자유롭게 해 준다. 오전 9시에 오거나 늦게 오거나, 그때만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작은 기쁨이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무력하다. 집에서는 앉아 있을 힘도 없었다. 의자에 앉아 일기를 쓸 에너지도 없었다.


오후 세시에 요가를 하고 왔지만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주에 처음으로 요가를 시작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이었다. 첫날보다 요가실의 구조가 눈에 익어 낯선 감이 덜했다. 그러나 동작이 어려워 따라 할 수 없는 자세 때문에 힘이 들었다. 옅게 땀이 났다. 조금 숨통이 튄다.


오후 5시, 해가 지면 도서관에 가기로 하고 조금 잤다. 어제는 커피를 건너뛰었다. 두통이 없어서 중독까지는 아닌가 했는데 머리가 지끈대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챙겨 7시에 집에서 나왔다. 해가 지지 않았다. 오후 5시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한 낮이 아니어서 걸을 만했다. 발바닥이 여전히 아프지만.


커피를 마시면 졸음이 좀 깰까.. 도파민, 아드레날린은 언제쯤 다시 나와 줄까…


머리가 멍하다. 기운이 없고 졸리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잠깐이지만 정신이 든다. 커피콩의 숙주가 된 듯하다.


오늘 도서관에 왜 왔지? 일을 알아보려고 왔다. 일은 언제쯤이면 하고 싶어 질까.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일이 나타날까.. 기운이 없다. 이런 기분으로는 공공기관 아르바이트조차도(채용은 없지만) 지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커피를 사러 가야겠다. 일단 한 모금하고.. 생각해 보자.


친절한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1리터 커피는 휴가로 문이 닫았다. 가끔 가는 남매 커피도 닫았다. 그래서 쥬시까지 갔다. 돌아갔더니 발바닥이 얼얼하다. 코코넛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이곳은 빨대를 꽂아준다. 음료를 받고 쭉 쭉 빨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입술에 봉긋한 음료 뚜껑에 닿았다. 새로운 아르바이트분이 작은 사이즈용 빨대를 꽂아줬다. 빨대 때문에 다시 돌아가 가기에는 발바닥이 그만 걸으라고 아우성을 친다. 앞에 젊은 여자 두 명이 통이 큰 바지에 크롭 티를 입고 걸어오고 있었다. 굽이 낮은 샌들을 신고 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25년이 지났는데 내가 중학교 때 유행하던 스타일이 돌아오다니.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기장을 억지로 길게 입어 길바닥을 바지로 쓸고 다녔다는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소풍 때였다. 유행에 따라 소풍 가기 전날, 동네 보세 옷 가게에서 톰보이 짭인 통바지를 샀다. 그 바지에 벨트를 무릎 밑까지 늘어 내려 입고 친구들과 토끼 산에 있는 언덕을 달리면서 놀았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는 바지든 벨트든 길게 느려 입어야 패션이 살았다. 옛날 옛적 얘기가 갑자기 흘러나왔는데, 커피를 사 오면서 봤던 그 젊은 여성들이 신고 있던 샌들을 보면서였다. 아, 내가 여름에 맨 발을 내놓고 다녔던 적이 언제였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 얘기를 쓰게 된 것이었는데, 중학교 소풍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손끝으로 쓰는 일기는 종잡을 수가 없다.


요즘 나는 어떤 의욕도 없는 상태다. 의욕만큼 신체가 따라주지 않아서도 그렇고, 통증 컨트롤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Mri 찍어봐도 디스크 소견은 없었다. 유튜브로 통증을 검색하고 온갖 자세를 따라 해 봤다. 아이고... 그것도 지쳐서 보지 않는다. 현대 병의 모든 근원은 스트레스다. 거기에 소화기까지 맛이 가 죽을 맛이다.


나는 소화장애를 고등학교 때부터 앓았는데, 실질적으로 염증이 있지는 않았다. 가끔 작은 용종이 나오 적은 있다.  매 년 몇 달은 소화기 문제로 병원 문턱을 닳도록 다닌다. 이번에는 4주째 약을 먹고 있는데 듣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몸이 나에게 화를 내는 것 같다. 어제는 최대한 적게 먹기로 했다. 아침으로(시간은 오후 1시다…) 베지밀에 불린 오트밀에 블루베리를 넣어먹었다. 새 모이만큼 먹었다. 맛은 없지만 한 입, 한 입 감질나게 음미했다.


그 전날 밤, 소화가 전혀 되지 않았고, 1년 내내 나를 괴롭히는 견갑골이 유난히 더 아팠다. 확실히 소화가 안 될 때는 견갑골 통증은 미친놈처럼 아프다. 밤새 신트림과 쑤셔대는 듯한 견갑골 통증으로 일어나서 벽과 등 사이에 작은 공을 넣어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앉아서 요가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설치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백수라는 게 너무 싫지만, 다음 날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나 그 몸으로 하루 아홉 시간 회사에 있을 생각을 하면…두 볼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끔찍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쉴 수많은 없다.


상담해 주는 인터넷 카페에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짤막한 글을, 부아에 차서 남긴 적이 있다.  어떤 분이 댓 글을 달아 주셨는데, 그분도 일을 구하기가 마땅치 않아 편의점 창업을 했다고 한다. 그 밑에 어떤 분이 또 댓 글을 달았다. 자기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며 편의 점 창업 비용에 대해 묻는 답 글이었다. 나는  댓 글을 달지는 않았다. 생각 없이 남겼는데 내가 던진 글이 화두가 되어 사람들이 묻고 답하고 있었다. 뭐지? 응?? 우리나라는 직장인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고 한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이렇게 친절하게 간단한 설명을 내놓았다.


◇경직된 노동시장과 미흡한 사회안전망이 생계형 자영업 낳아

높은 자영업자 비율은 경제 정체나 쇠락의 상징이다. 산업화가 미흡하거나 경쟁력 있는 기업이 별로 없는 국가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대체로 높다. 취업 희망자는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나선다.


(조선일보-2018.10.11 ’ 대기업 그만둔 아빠들이 닭을 튀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자영업을 하는 게 사업을 하고 싶어서, 사업에 어떤 이상을 품고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사업을 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최근 들어 슬슬 이해하게 됐다. 문제는 나는 자본금은커녕, 기껏 모은 돈도 박박 긁어 놀고 있는 백수가 쓸만한 소재는 아니겠지만. 이런 얘길 쓰고 있으나 내 머릿속은 회사에 들어가 꼬박꼬박 월급이 받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회사에서 말고 나의 노력만으로 천 원 한 장 벌어본 일이 없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요즘 시대에 가난한 건 병이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나에게 그런 영상이 추천된 건지 모르겠으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하며 지나쳤던 영상이다. 다는 아니지만, 구독자가 이천 명 정도 일때부터 봐왔던 구독해 왔던 유투버가 지금 20만이 넘는 성공 가도를 달리는 걸 보면 가난이 병이라고 주장한 그 사짜(라고 생각한) 유트버 주장이 영 실없는 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 등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돈을 번다. 꼭 많은 금액이 아니더라도. ‘나‘를 브랜딩하여 돈을 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상상도 되지 않는다.


오늘 도서관에 온 건,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왔다. 오늘도 실패다. 언제쯤 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그런 마음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여전히 구직사이트를 못 들어가고 있다. 자소서 쓰기가 어마어마하게 두려운 일이 됐다. 일관되지 않는 경력, 경력이라기보다는 일을 해봤다는 경험에 그치는, 이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을 이리저리 꺼내본다. 어디에서라도 힘을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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