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동안 중국인과 함께해온 돼지, 그 삶과 문화의 기록
— “살아 있는 역사”로서의 돼지 이야기
돼지는 단순한 가축을 넘어, 중국인의 삶과 문화 전반을 꿰뚫는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농경 문명이 싹튼 이래 수천 년 동안 돼지는 음식 문화, 의식(儀式), 언어와 풍습, 심지어 정치·경제 구조까지 깊숙이 관여해 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대 신석기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 축산업과 돼지 사육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돼지가 어떤 의미를 지녀왔는지를 되짚어 보겠습니다.
최초의 가축화: 약 7,500~9,000년 전 허난성 자후(仓侯) 유적지에서 발견된 돼지 화석은 이미 야생 멧돼지와 다른 ‘가축 돼지’였음을 보여 줍니다. 신석기 시대 말기에는 중원 지역 일대에서 조직적인 돼지 사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의식용 동물로서의 돼지: 홍산문화의 옥돼지(玉猪) 용 조각, 시(西)나라 관직 명칭 ‘무정(牧丁)’ 등은 돼지가 제사와 국가 의식에서 중요한 희생 제물로 쓰였음을 증명합니다. 고대 왕조의 신탁 뼈 비문에는 ‘猪(멧돼지)’를 나타내는 상형문자가 최초로 등장했고, 귀족들은 돼지를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거세술의 발견: 상·주대(商周代)의 문헌에서 ‘豕科(거세 돼지)의 이빨이 길다’는 기록은 이미 거세 기술이 발전했음을 알려 줍니다. 돼지가 공격성을 잃고 살이 잘 오르자 ‘돌고래(豚)’라는 이름도 얻었습니다.
품종 구분: 고문헌은 멧돼지(野猪), 모돈(母猪), 세 살배기(豯) 등 세대별·성별별 돼지 분류를 남겼습니다. 농가 관리자는 ‘경수(更守)’가 사육장 관리를, ‘목우(牧牛)’가 사료 급이를 담당했습니다.
돼지우리 설계: 한대(漢代)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축 우리(家厩)가 발달하였습니다. 일부 돼지우리는 화장실 아래층에 설치해 분뇨를 즉시 비료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사료 보급: 당대 문헌 ‘농서(農書)’는 호수·강가 식물, 도토리, 감자·잔류 곡물 등 지역별 사료 자원을 체계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는 사료 공급원의 다양화와 돼지 사육의 대규모화를 가능케 한 토대였습니다.
소동파와 동파육(東坡肉): 송대(宋代)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는 값싼 돼지고기를 ‘흙처럼 낮은 가격에 최고의 맛을 낸다’고 찬양하며, 물을 적게 넣고 약불에 장시간 끓이는 ‘동파육’ 조리법을 창안했습니다. 그의 시와 기록은 돼지고기를 고급 요리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도시 소비 시장의 성장: 수도 개봉(開封)에서는 매일 만여 마리 돼지가 팔려 나갔고, 시장 주변에는 돼지고기 전문 도살장과 즉석 판매점이 형성되었습니다.
명나라의 돼지 금지령(1519년): ‘주(朱)’ 황제의 성이 돼지 ‘주(猪)’와 동음이기에, 정덕(正德) 14년 검소를 이유로 전국 돼지 사육을 금지하는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위반자는 군에 입대시킨다는 엄격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는 돼지 종자를 지키기 위해 매장·지하 사육 등 우회로를 모색하며 전통이 지속되었습니다.
외국 품종 도입: 18세기 이후 중국산 돼지가 영국·미국으로 건너가 요크셔·버크셔 품종 개량에 기여했으며, 이는 다시 중국으로 수입되어 현지 품종에 혼합되었습니다.
20세기 축산학의 발달: 학과 신설과 함께 인공수정·유전자 개량 기술이 도입되었지만, 전란·질병·자연재해로 19세기 말부터 급격히 쇠퇴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대규모 현대식 양돈 단지가 등장하며 부흥을 맞이했습니다.
사회 지표로서의 돼지: “돼지를 키우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는다”, “돼지는 보물 그릇” 등 속담은 돼지가 농업·경제의 상징임을 보여 줍니다.
문학 속 주인공: 삼국지연의·홍루몽·서유기 등 고전소설엔 돼지가 줄곧 등장해 영웅의 용맹·가정의 부(富)를 상징합니다.
현대 축제: 일부 지방에선 돼지 머리 제사, 돼지 민속 공연·경연이 열리며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돼지 문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돼지는 중국인 일상과 문화에 깊은 자취를 남겨 왔습니다. 단순한 축산 자원을 넘어 의식, 문학, 요리, 속담과 제도의 중심에 서 있었기에 ‘살아 있는 역사’라 부를 만합니다. 오늘날에도 지방 품종 보호와 과학적 개량을 통해 돼지가 품은 수천 년 지혜를 계승·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식탁 위에 오르는 돼지고기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중국 농경 문명의 찬란한 기록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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