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쇠고기 산업의 역사적 개관


미국 쇠고기 산업의 역사적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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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역사


미국에는 다양한 소 품종이 있지만, 이들 중 어느 것도 원래 미국 토종은 아니다. 최초의 소들은 수세기 전 스페인과 영국의 탐험가 및 정착민들에 의해 도입됐다.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국의 소 개체군은 롱혼(Longhorn)을 기반으로 유지됐다. 넓은 방목지와 스페인 롱혼 후손들의 야생 환경 적응력, 고기의 경제적 가치 덕분에 목축업이 형성됐다. 남북전쟁이 끝날 무렵, 롱혼 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해 미국 전역의 방목지를 가득 메우게 됐다.


1783년 영국에서 버지니아로 쇼트혼(Shorthorn) 소가 처음 도입됐다. 쇼트혼 혈통 등록부는 1822년 조지 코츠(George Coates)에 의해 설립됐고, 미국 쇼트혼 협회는 1882년에 설립됐다. 1817년 헨리 클레이(Henry Clay)가 영국에서 켄터키로 헤리퍼드(Hereford) 소를 도입했고, 미국 헤리퍼드 협회는 1881년 설립됐다. 1900년에는 미국 폴드 헤리퍼드 협회가 설립됐다. 조지 그랜트(George Grant)는 1873년 스코틀랜드에서 캔자스로 앵거스(Angus) 소를 들여왔으며, 미국 앵거스 협회는 1883년 설립됐다. 제임스 데이비스(James Davis)는 1849년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최초의 지부(Zebu) 소를 들여왔고, 1896년에는 시멘탈(Simmental) 소가 미국에 소개됐지만, 당시에는 산업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소몰이와 치솜 트레일


남북전쟁 이후 본격적인 소몰이 시대가 시작됐고,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시대 중 하나가 됐다. 이 시기에 미국인들은 쇠고기에 대한 식성을 갖게 되었고, 치솜 트레일(Chisholm Trail)은 서부 세계의 경이로 여겨졌다. 텍사스에서 시작해 캔자스로 향하는 소몰이 행렬은 최대 1만 마리의 소를 포함했다. 트레일 이름은 남북전쟁 직전 오클라호마시티 서쪽에 교역소를 세운 제시 치솜(Jesse Chisholm)에서 유래했다. 남북전쟁 동안 텍사스 남성들이 남부 연합군으로 참전하는 사이, 스페인 롱혼의 후손들은 무성하게 번식했다. 1866년 당시 텍사스에서 소 한 마리는 4달러였지만, 북부와 동부에서는 40~80달러에 거래됐다. 1866년 일부 소 떼는 오클라호마 동부의 숲길인 쇼니 트레일(Shawnee Trail)을 이용했으나, 험준한 지형 때문에 곧 중단됐다.


1867년 조셉 맥코이(Joseph McCoy)는 캔자스 애빌린(Abilene)에 캔자스-퍼시픽 철도와 연결되는 가축 시장을 건설하고, 텍사스 목장주들에게 소를 보낼 것을 권유했다. 그는 구매자들도 애빌린으로 오게 만들어, 현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소몰이꾼들은 텍사스 남부와 중부의 다양한 소로길을 따라 북쪽의 레드 리버를 건너 유명한 치솜 트레일에 합류했다. 소 떼는 치솜 트레일을 따라 애빌린까지 몰려 갔고, 이후 쇠고기 가공업체와 인구 밀집 지역으로 운송됐다.


소 떼의 크기는 500마리에서 1만 마리까지 다양했지만, 평균적으로 2,5003,000마리가 일반적이었다. 목장주는 소 떼를 트레일 보스(trail boss)에게 맡겼고, 트레일 보스는 1015명의 카우보이, 요리사, 마차, 100~150마리의 말을 돌볼 마필 담당자(wrangler)를 고용했다. 트레일 보스는 식량을 준비하고 경로를 계획했다. 소몰이 동안 소 떼는 하루 약 10마일을 이동했으며,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고, 밤에는 물가에서 멈춰 야영했다. 보통 소 떼 간 간격은 10마일 이내였으며, 물가에서 교대로 야영했다. 애빌린 도착 후 트레일 보스는 소와 말을 판매하고, 카우보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한 뒤, 주인에게 돈을 전달하기 위해 텍사스로 돌아갔다.


치솜 트레일은 남텍사스에서 포트워스를 거쳐 오클라호마와 캔자스를 잇는 약 800마일 구간으로 발전했다. 18671871년까지 애빌린을 향해 소가 몰렸으며, 이후 뉴턴, 위치타(캔자스)가 종착지가 됐다. 시마론 강 북쪽의 시마론 지선(Cimarron cutoff)을 이용해 닷지시티(Dodge City)까지 가기도 했다. 18831887년에는 캔자스 콜드웰(Caldwell)로 향하는 마지막 대규모 소몰이가 있었다.


최대 소몰이 시기는 1871년과 1873년이었다. 1881년 이후 소몰이는 급격히 줄었다. 1884년 체로키 스트립(Cherokee Strip)에 울타리가 설치되고, 1886년 캔자스주에서 텍사스열병 예방을 위한 검역법이 제정됐으며, 1887년 폭설로 많은 소가 폐사했다. 1889년 오클라호마 랜드 런(Land Run)으로 평원이 농민들에게 분배되면서 울타리와 마을이 생겨나 소몰이 시대는 끝났다. 치솜 트레일을 통해 약 600만 마리의 소가 이동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카우보이 전설을 남겼다. 19세기 말에는 영국계 품종이 평원으로 다시 들어왔고, 근육량이 많은 소가 선호되기 시작했다.


20세기의 품종과 유전 개선


20세기 전반에는 성장이 빠르고 체구가 작은 소가 선호됐다. 1950년대에는 잉여 곡물과 소비자의 곡물 비육 쇠고기 수요로 상업용 비육장(feedlot)이 등장했다. 1951년에는 소형 프레임 선호로 인한 'Snorter Dwarfism(왜소증)' 현상이 보고됐다.


1960년대 미국은 작은 체형의 앵거스, 헤리퍼드, 쇼트혼 소가 주류였다. 교잡은 많은 목장주들에게 금기시됐다. 그러나 값싼 사료와 비육 쇠고기 수요로 현대 비육 산업이 확장됐다. Charolais(샤롤레) 소는 1936년 멕시코에서 처음 들여왔고, 1960년대 Charolais 교잡우의 비육 성과가 컨티넨탈 유럽 품종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이후 Simmental(시멘탈), Limousin(리무진) 등 다양한 품종이 도입됐고, 이후 15년 동안 ‘품종 혁명’이 일어났다. 1960년대 말부터 모든 품종에서 더 크고, 근육량이 풍부하며, 성장 속도가 빠른 소로의 선발 경향이 나타났다. 1970년대에는 상업용 암소-송아지 산업에서도 교잡이 일반화됐고, 1980년대 후반까지 대형 체형 선호가 계속됐다.


유전적 개선


1968년 설립된 Beef Improvement Federation은 표준화된 성과 측정, 동시 집단 정의, 기록 관리, 유전적 가치 예측을 가능하게 했다. 1970년대에는 모든 품종 협회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순종 개량 분야에서 인공수정이 보편화됐다. 미국 시멘탈 협회는 최초로 National Sire Summary를 발간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주요 품종은 매년 sire summary를 발간했으며, 기본 EPD(예측 번식값)는 출생 체중, 이유 체중, 1세 체중, 모유량이었다.


20세기 말, 품종 혁명은 마무리됐다. 많은 품종이 정체성을 잃거나 인기가 감소했으며, 소들의 외형은 점점 더 균일해졌다. 체형은 중간 크기, 더 많은 근육과 체적을 갖춘 형태로 변화했다. 성공적인 품종 및 종축 농장은 성과, 혈통, 외형 세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받았다. 최근 20년간 sire summary는 연간 발간에서 주간 업데이트까지 발전했고, 현재는 약 20개의 세부 EPD와 다양한 선택 지수를 제공하고 있다.


대부분의 품종에서 유전 경향 분석 결과, 출생 체중은 유지하면서 이유 및 1세 체중은 증가시켰고, 마블링과 등심 크기와 같은 고유전율 육질 특성도 크게 향상됐다. 지난 20년간 쇠고기 품질, 특히 마블링 향상을 통해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결론


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쇠고기 산업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새로운 트렌드를 예측하고, 소비자 요구를 이해하며,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지속적으로 유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미래 성공의 핵심이다.




Historical Review of the U.S. Beef Cattle Industry - Southwest New York Dairy, Livestock & Field Crops Program - Cornell University - Cornell Cooperative Ext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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