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화 과정에 있어서의 조선우 ― 제국 일본의 축산자원 확보와 이용 ―
植民地化過程における朝鮮牛 ―帝国日本の畜産資源確保と利用―
1. 논문의 구성
제1장 개항기에 있어서의 조선우 유통
제2장 메이지기 일본의 우역 문제와 조선우
제3장 조선 남부에서의 일본의 조선우 정책과 실태
제4장 조선 북부에 있어서의 무역 환경 변화
제5장 메이지기 일본의 피혁업과 조선우의 이용
제6장 보호국기에 있어서의 조선우 통제의 심화
제7장 식민지 군수공업으로의 변용
2. 문제의식
본 논문의 목적은, 근대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팽창이라는 역사적 전개 속에서 조선의 축산물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지탱하는 자원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규명하는 데 있다. 분석의 대상 시기는 주로 1890년대에서 1910년대까지이며, ‘조선우’를 목적으로 한 제국 일본의 시도가 대외정책 하에서 관철되고, 궁극적으로 군수 자원으로 이용되는 측면에 주목하였다.
식민지기 조선에 있어서 축산정책의 전체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19세기 말 조선 개항 이래의 연속적인 측면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일본 제국의 조선 진출 과정에서 전개된 축산자원의 무역 활동을 비롯하여, 그 군사적 이용에 주목한 일본 정부의 정책, 그리고 이를 정부의 비호 아래 수행한 인물들의 존재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근대화와 대륙 팽창을 내세운 메이지 정부 하에서는, 종래의 재래 상인 및 민간 자본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으며, 대신 중앙정부와 결합한 ‘정상(政商)’ 자본이 부상한 점이 주목된다.
일본에서는, 농업을 위한 조선우의 수입이라는 종래의 양상에 더하여, 그 군사적 필요성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정책적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개항기부터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전개를 분석하는 작업은 식민지 지배를 이해하는 데에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우는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될 수 있다. 첫째, 조선우는 개항기에 있어서의 일·조 무역의 한 단면을 파악하기 위한 매개가 된다. 둘째, 식민지 조선에서 총독부가 시행한 농업정책과 공업정책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셋째, 조선우를 통하여 개항기에서 식민지기에 이르는 일본 제국의 팽창정책과 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3. 연구의 과제
본 논문은 기본적인 시각을 일본 측에 두고, 조선우에 대한 일본의 정책적 움직임이 조선반도 및 일본의 지역사회에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일본 정부와 군, 지역 상인, 재외 공관 등의 상호 얽힘을 통해 조선우의 위상이 변모하는 측면에 주목하였다. 그 위에서 다음 세 가지 과제를 설정하여 분석을 진행하였다.
첫째, 메이지기 일본과 조선우의 관계를 규정한 여러 조건을 검토하고 정책적 흐름을 파악하였다. 일본이 조선우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해 갔는지, 그 변용 과정을 고찰하였다.
둘째, 메이지기 일본의 축산자원 확보 형태와 그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정부와 민간기업의 결합에 초점을 두고, 식민지 이전 단계에서 사람과 자본의 동원 및 정부의 구체적 조치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셋째, 개항기 및 보호국기에 있어서 제국 일본과 조선우의 관계를 식민지기와의 연속성 속에서 거시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일본과 한국의 기존 사료를 활용하여 전술한 과제들을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다만, 조선 민중과 지역의 미시적 실태를 보여주는 사료는 극히 제한적이며, 이에 대해서는 조선 관헌 자료나 일본 측 기록을 통해서만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기본적으로 일본 측의 정책적 측면에 중점을 두었으며, 방위성 방위연구소, 국립공문서관, 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자료를 중심으로 하였다.
4. 각 장의 내용
제1장에서는 개항기 조선우의 유통과 수출의 전체 구조를 검토하였다. 생우의 집산은 전국 각지의 우시장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주요 가도 주변에 위치한 대규모 시장이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함경도의 경우 독자적 발전 양상을 보였다. 농민으로부터 생우를 매집한 객주들은 수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수출 거점은 부산·인천·원산과 같은 개항장이었다. 조선우의 일본 수출량은 전반적으로 증가하였으나, 시기별로 증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존재하였다. 특히 우역의 유행에 따른 일본 검역제도의 강화와 군사적 수요의 증대는 조선우 무역의 성격을 규정짓는 주요 요인이었다.
제2장에서는 조선우 정책 전개의 기초로서 일본 국내의 우역 문제 대응을 분석하였다. 메이지기 일본에서 조선우 수입은 우역의 유입을 수반하였고, 전국적 유행은 농촌사회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하였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예방·검역에 힘쓰는 한편, 법률 정비에도 착수하였다. 1886년 제정된 「수류전염병예방규칙」은 피해 조사, 살처분, 배상금 지급 등을 포함한 종합 규칙이었다. 서일본에서 조선우 수입의 중심지였던 야마구치현은 피해 규모가 컸으며, 현 차원의 방역은 사후적 조치에 그쳤다. 1890년대 유행을 계기로 1895년 「수역예방법」이 제정되었으나, 조선우 수입에 대한 직접 통제나 검역에는 이르지 못해 근본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3장에서는 우역 문제와 연계된 일본의 조선우 정책이 조선 남부에서 실행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은 개항기 이후 일본 진출의 거점이 되었으며, 1890년대 부산영사관은 일본 정부의 우역 대책과 법률을 현지에 적용하고 정책 제언을 담당하였다. 일청전쟁 전후, 영사관은 군사적 활용을 전제로 한 목장 운영 구상을 제시하였으나, 일본 정부는 국내 문제 해소를 위해 생우 계류소 폐쇄와 검역항 제한에 주력하였다. 이로 인해 서일본의 일본인 우상들은 타격을 입었고, 영사관과 연계하여 청원했으나 실현은 일러전쟁기에 군사 수요 증대에 따라 이루어졌다.
제4장에서는 남부와 달리 러시아 영향이 강했던 함경북도의 상황을 분석하였다. 해당 지역은 대규모 산지였으나,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로 일본 정책 적용에 제약이 있었다. 陸路 수출이 성행했으나 비공식 밀무역이 주류였으며, 1888년 체결된 「조로륙로통상장정」은 공식화의 의미가 있었으나 실질은 변함없었다. 일본은 원산을 거점으로 세력 확대를 시도했고, 미개항지를 통한 러시아 선박 출입을 견제하고자 성진 개항을 추진하였다. 1899년 성진항 개항으로 해로 공식 무역로가 추가되어 일본의 주도권 확보가 가능해졌다.
제5장에서는 메이지기 일본 피혁업과 조선우의 관계를 다루었다. 일본은 군대 서구화를 위해 소수의 정상을 집중 육성하였고, 사쿠라구미·후지타구미·오쿠라구미 등이 대표적이었다. 군수품 제조에 필요한 우피 확보는 전시의 핵심 과제였으며, 일러전쟁기에는 국내 부족분을 보완하기 위해 조선우 수입이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우는 군수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재조명되었고, 전후 일본피혁의 설립과 함께 조선 투자 모색으로 이어졌다.
제6장에서는 일러전쟁 후부터 병합까지의 보호국기 조선우 통제·지배 심화를 고찰하였다. 조선우는 농업자원이자 군수자원으로 이중 인식되었으며, 특히 군수적 가치가 부각되었다. 군과 연계한 목장 건설, 군수용 통조림 생산, 이중 검역제도의 실시 등은 일본이 무역 구조를 완전 통제하게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부산 수출우 검역소는 일본 민간자본인 한국흥업이 운영하며 제도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제7장에서는 군수자원 확보·이용의 귀결로서, 식민지 조선의 군수 피혁회사 설립과 가다 긴사부로의 경력을 분석하였다. 그의 배경에는 후지타구미·오쿠라구미의 군납 경험, 대만에서의 성공, 야마구치현 인맥이 있었다. 조선피혁은 총독부와 군 지원 아래 군수 피혁을 납품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기에는 일본군뿐 아니라 러시아군에도 납품하며 실적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군축기에 경영난을 겪었고, 1930년대 이후 대륙 팽창과 함께 군수 피혁회사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5. 결론
근대 일본의 조선우 정책에 있어서는 민간 수요와 군사 수요에 대응하려는 두 가지 정책적 방향성이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하나는 일본 국내의 민간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대외 팽창을 위한 군사적 수요의 확대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 개항 이후 일청전쟁과 일러전쟁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추진되었고, 보호국기를 거쳐 식민지 지배에 이르기까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는 정책상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확인되며, 이를 식민지화 과정에서의 축산자원 지배·통제 강화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군수 수요의 확대와 관련하여, 정부와 군의 집중적인 보호·육성 아래 성장한 소수 자본가, 즉 정상(政商)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였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저렴한 조선인 노동력과 토지를 활용하여 조선은 물론 장차 만주로 진출하기 위한 식민지 산업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요컨대,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축산자원은 지역 상인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정부와 군의 정책을 소수 자본가가 관철시키는 ‘국가 주도’적 과정이었다.
식민지 통치를 떠받치는 제국의 ‘자원’으로 변모한 식민지 조선의 축산자원은 일본 제국의 팽창에서 붕괴에 이르는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를 고찰함에 있어, 조선의 축산자원을 둘러싼 인적·물적 기반의 형성은 개항기 이래 일본에 의해 축적된 정책적 변용의 결과였다.
조선우는 단순히 농가의 재산이나 무역품에서, 식민지 통치를 지탱하는 제국의 ‘자원’으로 변모하였다. 농공업을 담당함과 동시에, 본국 산업의 생산력 유지를 위한 원료로서 기능함으로써 그 ‘자원’으로서의 유용성이 확인된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통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식민지 산업의 발전을 극력 억제하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혁공업만은 계획대로 추진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축산자원이 애초부터 제국의 농업과 군수생산을 동시에 뒷받침한다는 목적에 부합하고 있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