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과 저장(Ageing and Storage)
도체 해체(‘Taking Down’ the Carcass)
정육은 해부학적 지식과 파워툴, 그리고 사업적 판단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인 공정이다. 국가에 따라 정육 전통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영국에서는 정육사가 ‘관절(joints)’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는 여러 근육이 결합된 부위를 의미한다. 도체는 이러한 관절을 기준으로 절단되며, 이 과정에서 여러 근육뿐 아니라 뼈, 지방, 결합조직이 함께 포함된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보다 ‘절단 정육(cut butchery)’에 가까운 방식을 선호하여, 개별 근육을 분리해 도체에서 제거한 뒤 소분한다.
예컨대 영국 정육점에서는 소의 옆구리 부위 전체를 하나의 큰 립 로스트로 남겨 두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뼈와 지방이 함께 남아 로스팅 과정에서 풍미를 더하고 열전도를 돕는다. 다만, 이런 방식은 삼단 로스트와 같은 대형 구이를 판매하지 않는 한, 정육점 입장에서는 판매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포터하우스나 티본과 같은 스테이크도, 손님이 그 부위를 원하지 않으면 판매가 어렵다. 반면 등심을 필레로 분리해 놓으면, 손님에게 보다 쉽게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부위를 남기고 어떤 부위를 분리할지는 고객 구성과 판매 전략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에는 지방이 많은 부위를 선호하는 손님이 늘어난 반면, 여전히 눈에 띄는 지방을 꺼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저장, 건식 숙성, 습식 숙성(Storing, Dry-ageing and Wet-ageing)
소가 도축된 뒤에는, 정육사가 냉장을 통해 고기를 신선한 상태로 유지하거나, 풍미를 개선하기 위해 숙성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숙성 과정은 ‘행잉(hanging)’이라고도 불린다.
청결한 환경에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고 신선한 공기의 흐름이 확보된 상태로 저장되면, 고기의 조성과 풍미는 점차 변화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기 표면의 수분이 증발하고, 그 결과 박테리아에게는 보다 불리한 환경이 형성되며 풍미 성분은 농축된다. 고기는 점점 더 강한 풍미를 지니게 되고, 여운도 길어진다. 많은 숙성 전문가들은 이 과정이 특히 테르펜에 의해 형성되는 풀 향을 더욱 집중시킨다고 말한다(45쪽 참조).
숙성 과정 중 근육에 남아 있는 젖산은 동물의 도축 직후 발생하는 과정과 달리, 더 느린 속도로 작용하며 근섬유를 분해해 연도를 높인다. 이로 인해 고기는 특유의 약간 산미를 띠는 풍미를 갖게 된다.
또한 건식 숙성 과정에서는, 고기 표면에 곰팡이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이 곰팡이에는 Lactobacillus acidophilus와 같은 균주가 포함될 수 있으며, 이는 일부 사람들이 블루치즈에서 연상하는 약간의 이취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건식 숙성은 정육점 입장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공정이다. 적절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며, 무엇보다도 상당한 중량 손실이 발생한다. 예컨대 정육점에서 12kg(22lb)의 고기를 구입하더라도, 소매 판매 시점에는 8.5kg(18¾lb)만 남는 경우가 흔하다. 이때 고기의 표면 일부는 완전히 제거되어 폐기된다. 즉, 숙성을 거쳐 판매되는 좋은 고기는, 처음 구매한 고기 중 약 4분의 1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최근 들어 일부 정육점에서는 소금을 암염 덩어리 형태로 쌓아 만든 숙성실을 도입하고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방식의 과학적 근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소금은 시간이 지나면서 고기의 풍미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공기를 통해 이동하거나 수분을 증발시키는 기능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반면 습식 숙성은 도축 직후 고기를 플라스틱 파우치에 밀봉해 보관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산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산패가 일어나지 않으며, 수분 증발로 인한 중량 손실도 없다. 젖산과 기타 효소들은 고기 내부에서 계속 작용하여 단백질을 분해하고, 그 결과 철분 향을 연상시키는 풍미를 형성한다.
냉동(Freezing)
정육점에서는 고기를 냉동 보관하기도 하며, 이 과정의 장단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이 얼면 결정이 형성된다. 빠르게 얼리면 결정은 작게 형성되지만, 천천히 얼리면 결정이 커지며, 그 부피가 팽창한다. 이 큰 결정은 세포막을 파괴해 해동 시 육즙이 빠져나오게 만든다. 냉동 상태가 좋지 않은 스테이크는 해동 과정에서 많은 양의 육즙을 잃게 된다.
도축장이나 대형 가공 시설에서는 매우 강력한 급속 냉동 장비를 사용한다. 대개 고기는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급속 냉동되며, 이후 완전한 콜드 체인(cold chain)을 유지한 채 배송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냉동된 고기는 매우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영국에서는 냉동 고기를 톱으로 절단해 스테이크나 관절 부위를 만드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미국에서는 개별 스테이크를 랩으로 감싸 냉동하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이는 냉기가 고기 주변을 충분히 순환할 수 있도록 해 더 빠르고 균일한 냉동을 가능하게 한다. 냉동 과정에서 고기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품질 차이가 발생한다.
스테이크를 해동할 때에는 포장 상태 그대로 냉장고에서 천천히 해동하는 것이 가장 좋다. 급하게 해동해야 한다면, 방수 포장 상태로 찬물에 담글 수 있으나, 이 경우에도 육즙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연육(Tenderizing)
고기가 질기다고 말할 때, 우리는 씹기 어렵다는 의미를 사용한다. 연육이란, 근섬유를 분해하거나 방해함으로써 고기를 씹기 쉽게 만드는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
고기는 자연적으로도 연육된다. 숙성 과정에서 살아 있는 동안 존재하던 효소가 근섬유를 천천히 분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축 이후에는 새로운 효소 생성이 없고, 기존 효소의 작용도 점차 느려진다. 이 때문에 다양한 인위적 연육 방법이 사용된다. 이러한 방법들은 고기의 구조를 물리적으로 혹은 화학적으로 변화시킨다.
두드리기(Beating Thin)
스테이크를 얇게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은, 정육용 망치나 무거운 냄비 바닥으로 두드리는 것이다. 이는 근섬유를 납작하게 만들고 부분적으로 분리시킨다. 일부 연육 망치는 표면에 돌기가 있어, 섬유를 더욱 강하게 분리한다. 과도할 경우 고기가 파괴될 위험이 있으나, 적절히 사용하면 치아로 씹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연도가 된다.
절단 방향(Cutting Direction)
근섬유는 길이 방향으로 배열되어 있다. 따라서 고기를 섬유 방향과 직각으로 썰면, 섬유 길이가 짧아져 씹기 쉬워진다. 대부분의 스테이크가 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결 반대’ 절단 때문이다.
얇게 썰기(Cutting Thin)
얇은 고기는 두꺼운 고기보다 씹기 쉽다. 고급 스테이크는 두껍게, 저렴한 부위는 얇게 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스트로나 미닛 스테이크의 경우, 고기는 갈비나 척아이 등 다양한 부위에서 나오지만, 얇게 썰어 빠르게 익히기 때문에 충분히 연하게 느껴진다.
칼날 연육(Blade Tenderization)
가정용이나 업소용으로 판매되는 칼날 연육기는, 작은 칼날로 근섬유를 물리적으로 절단한다. 대형 상업용 장비는 한 번에 수백 개의 칼날을 내려 근육을 관통시킨다. 필자는 1950년대 디자인으로 보이는 소형 가정용 연육기를 중고로 구입한 적이 있는데, 매우 단순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효과를 보였다. 이는 구두 밑창도 연육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강력했다. 조악하지만 효과적이었다.
전기 충격 연육(Electroshock)
일부 대형 육가공 시설에서는 도체 전체에 강력한 전류를 통과시켜 근육을 수축·이완시키는 방식으로 연육을 수행한다. 이 전류는 매우 강해, 근섬유가 부분적으로 분리되거나 손상된다.
화학적 연육(Chemical Tenderizing)
자연적으로 연육 작용을 하는 효소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파인애플에는 브로멜라인(bromelain)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매우 강력해 고기를 스펀지처럼 만들어 버릴 수 있다. 파파야의 파파인(papain) 역시 유사한 작용을 하며, 양파에도 약한 연육 효소가 존재한다.
식초나 감귤류 과일에 포함된 산 역시 연육에 도움을 주며, 버터밀크와 요거트도 젖산을 함유하고 있어 연육 효과를 지닌다.
중국 요리에서는 중탄산나트륨(베이킹 소다)을 사용해 고기를 연화시키기도 한다. 이는 고기를 알칼리성으로 만들어 단백질 변성을 유도한다. 다만 이 방법은 사용 후 반드시 헹궈내야 하며, 산성 연육제와 함께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서로 중화되기 때문이다.
¹ 냉동 체인이란, 냉동 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일정한 저온을 유지하며 이동하는 물류 과정을 의미한다.
² 냉동 스테이크는 한 번이라도 해동되었다가 다시 냉동되면 품질이 크게 저하된다.
³ 건식 숙성실의 소금 벽은 박테리아 성장을 일부 억제할 수 있으나, 고기의 풍미를 더하는 데 필수적이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