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목초 한우 2

제 1장 화산섬 제주와 목초의 조건

제1부 섬과 소 ― 제주라는 목축 환경

제 1 장 화산섬 제주와 목초의 조건

화산섬의 지형과 얕은 토양이 농경보다 목축에 유리한 이유

제주도는 전형적인 화산섬으로, 온 섬이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지형을 지닌다. 이로 인해 토양에는 부서진 화산재와 자갈이 많고 흙의 층이 얕아 농작물을 키우기 어려운 땅이 되었다. 빗물이 땅에 스며들면 저장되지 않고 금세 지하로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에, 논농사에 필수적인 물을 가둘 수 없는 환경이다. 실제로 제주 사람들은 이런 돌많고 푸석한 토양을 ‘뜬땅’ 혹은 ‘식은땅’이라 불렀는데,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버리는 척박한 땅이라는 의미였다. 이러한 자연조건에서는 밭농사조차 힘겨워 씨앗을 뿌려도 흙이 가벼워 바람에 날려가고 말았다. 제주 화산회토(土)는 워낙 입자가 가벼워 바람이 불면 기름진 흙가루와 애써 뿌린 씨앗마저 모두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이처럼 얕은 토심(塗深)과 빠른 배수성은 논농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지만, 대신 목초 자라기에 적합한 조건을 제공했다. 땅 위에 흙은 얇아도 들풀이 뿌리를 내릴 최소한의 조건은 되었고, 돌투성이 땅은 경작보다는 가축을 풀어 놓기에 오히려 수월하였다. 돌밭을 일구는 일은 매우 힘들었으나, 그런 땅에서도 자라는 거친 풀과 관목들은 소와 말의 먹이가 되었다. 결국 제주 중산간 초원 지대의 토양은 산성도가 높고 유효인산 함량이 낮은 데다 표토가 얕아 농작물 재배에는 크게 불리하였지만, 이러한 토양 조건은 농경보다 목축에 유리하였던 것이다. 또한 제주에는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가 예로부터 서식하지 않아 가축이 쉬이 습격당하지 않았고, 온난한 기후 덕분에 겨울에도 방목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이렇듯 제주섬의 자연환경은 농경에는 척박했으나 오히려 목축에는 알맞아, 제주인들이 일찍이 소와 말을 기르는 생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바람과 비와 풀: 방목에 알맞은 제주 자연조건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로 비는 자주 내린다. 그러나 화산암 지대라 빗물이 지하로 빠르게 흡수되어 지상에 강이나 저수지가 발달하지 못했다. 논농사에 필수적인 물의 지속적 공급이 어려웠기에, 사람들은 애초에 논 대신 자연초지에 주목하였다. 다행히도 섬 전체적으로 비가 고루 내려 중산간(해발 200~600m) 지역에는 풀들이 자라기 충분한 습기가 공급되었다.

온난한 해양성 기후 역시 목초 생육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제주는 최남단 아열대 기후로 겨울에도 기온이 온화하고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풀들이 연중 비교적 푸르게 유지된다. 이러한 기후 조건은 가축을 겨울철에도 바깥에서 기를 수 있게 해주어 사철 방목을 가능하게 했다.

게다가 제주도는 ‘삼다도(三多島)’, 즉 바람·돌·여자가 많다는 속담으로도 유명할 만큼 바람이 잦고 강하다. 이 강한 해풍은 농작물 재배에는 해로운 요소였지만, 들풀과 목초에는 비교적 덜 위협적이었다. 오히려 바람은 키 큰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여 숲 대신 초원이 발달하는 데 일조하였다.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는 곡식들은 제주 바람에 쓰러지거나 이삭이 떨어지기 일쑤였지만, 키 작은 들풀은 바람을 견디며 퍼져나갈 수 있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제주 화산토양은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흙먼지가 날리고 씨앗이 유실되는 문제가 있었다. 제주 농민들은 지혜를 짜내어 밭볼리기라는 독특한 방법까지 고안했다. 씨앗을 뿌린 후 소나 말을 밭에 들여 보내 풀을 뜯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발굽으로 씨앗을 흙 속에 밟아넣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농경과 목축의 결합 방식은 거센 바람 속에서도 곡식을 키우려는 제주인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제주에는 방목에 적합한 넓은 자연초지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는 곶자왈 숲과 더불어 “뱅듸”라고 불리는 광활하고 평평한 들판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뱅듸는 제주 방언으로 주변보다 넓고 평탄한 벌판을 뜻하는데, 울창한 숲이 자라기 어려운 용암지대에 형성된 천연 초지였다.

이런 초지는 비옥한 농경지는 아니었지만 가축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먹이터였다. 실제로 제주도는 국토 면적의 2%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이면서도, 전국 초지 면적의 거의 절반(약 48%)에 달하는 광대한 목초지를 가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제주 자연경관에서 풀밭과 목장은 큰 비중을 차지해왔고, 이는 곧 제주가 방목 천국임을 의미한다. 제주 사람들은 이 넓은 들판에 소와 말을 풀어 기르며 자연의 초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왔다.

정리하면, 제주의 자연조건은 농사에는 가혹했지만 방목에는 최적이었다. 흙은 얕고 메말랐으나 풀 한 포기라도 자라면 가축의 사료가 되었고, 비와 바람은 농민을 울렸지만 가축에게는 시원한 물과 쾌적한 바람을 선사했다. 거칠고 척박한 화산섬의 환경은 오히려 소와 말 같은 가축을 통해 인간이 생존할 활로를 찾도록 만들었다. 이는 제주 고유의 목축 문화가 꽃필 수 있었던 자연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 목축으로 삶을 개척하다

제주에서 벼농사가 중심이 되지 못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지형과 기후의 제약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논농사의 필수 요건인 ‘물을 가두는 토양’이 제주에는 부족했다. 현무암으로 된 땅은 배수가 잘 되어 물을 붙잡아 두지 못하므로, 논을 만들어도 금세 물이 빠져나갔다. 흙이 깊게 쌓인 평지도 드물고, 하천은 지하로 숨어 흐르기 때문에 관개 시설을 갖추기도 어려웠다. 실제로 제주에는 전통적으로 논이 거의 없고 밭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제주도민에게 쌀은 예부터 귀한 식량이었다. “제주는 쌀보다 보리가 흔하다”는 옛말처럼, 제주 사람들의 주식은 주로 보리와 조, 콩, 고구마 등 잡곡과 구황작물에 의존해왔다.

제주에서 쌀은 제사나 큰 명절에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고, 평소에는 혼식을 하거나 아예 쌀 없이 지내는 일이 많았다. 제주민속촌의 기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도 제주도에서 논농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다만 일부 지역에서 ‘산듸’라는 품종의 밭벼를 시험재배하여 제사에 쓰는 정도였다고 전한다. 이렇듯 벼농사가 자리잡지 못한 현실은 제주인들에게 큰 숙명이었다.

농사를 지어 식량을 자급하기 어려웠던 탓에, 제주 사람들은 대안적인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그 대안이 바로 방목을 중심으로 한 목축이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는 들풀을 먹여 사람 대신 가축을 키우고, 그 가축으로부터 다양한 산물을 얻는 방식이다. 소와 말은 풀만 먹고 사람에게 고기, 가죽, 노동력 등을 제공하니 제주 같은 환경에서는 더없이 귀중한 자산이었다. 논 대신 선택한 목축은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 제주 사회의 기반 산업으로 부상하였다.

가령, 제주에서 생산한 말을 육지로 보내 군마(軍馬)와 교역품으로 활용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탐라국 왕세기》의 기록을 보면 서기 145년경 탐라국(제주의 옛 왕국) 때부터 이미 말과 소가 교역품으로 바쳐졌다는 언급이 있고,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에도 제주마(濟州馬)는 우수한 품종으로 진상되어 국가의 군사·교통 수요를 충당하였다. 이처럼 쌀 한 톨 나기 힘든 제주 땅에서 말과 소는 중요한 교환가치를 지녔다. 말은 중앙정부나 외국에 진상하여 그 대가로 곡물이나 물자를 확보할 수 있었고, 소는 농경 사회에서 밭을 가는 일이나 운송, 그리고 가축세 납부를 위한 공물로 이용되었다.

더불어, 목축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제주민에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농사만 지었다가는 가뭄이나 태풍이 오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지만, 가축을 키우면 최악의 경우 잡아먹거나 팔아 식량을 살 수 있었다. 실제 제주 역사에서 흉년이나 기근 시에 가축을 팔아 양곡을 들여온 사례도 적지 않았다. 소 한 마리는 한 가족의 비상粮 창고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또한 소를 이용해 밭을 갈고 거름을 얻는 등 농사와 목축을 결합하면 비록 작황이 좋지 않아도 토지를 개량하고 식량을 조금이라도 수확할 수 있었다. 이렇듯 제주 사회에서 목축은 농경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생존 전략으로 선택되었다. 땅이 주지 못하는 것을 가축이 채워주었고, 제주인들은 논 대신 풀밭에서 삶의 활로를 찾았다.

자연이 빚은 목축 문화와 섬의 생존 전략

험난한 환경 속에서 선택한 목축은 단순히 가축을 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제주의 독특한 문화와 관습을 만들어냈다. 즉, 목축은 제주인의 생활양식이자 생존 철학이 되었다. 농경 위주의 본토와 달리, 제주에선 목축이 생활의 중심축이 되면서 섬 특유의 민속과 전통이 형성되었다. 예컨대, 제주는 오래전부터 “말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말을 신성시하고 중요하게 여겨왔다. 몽골 지배 시기였던 고려 말에는 제주에 대규모 목마장(목장)이 설치되어 전국의 말 생산 거점이 되었고, 이후 조선 시대에는 국가 경영의 3대 목장(조천, 함덕, 금령)이 제주에 세워져 수천 필의 말과 소를 방목하였다. 이러한 역사 덕분에 제주 사람들의 정신문화에는 가축에 대한 감사와 경외가 스며들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제주만의 목축 의례와 신앙이다. 매년 음력 7월 보름(백중)이 되면 제주 목동들은 “테우리 코사” 혹은 “쉐멩질”이라 불리는 의례를 지냈다. 테우리란 제주 방언으로 목동 또는 목자(牧者)를 가리키는데, 이들은 백중 날에 한데 모여 자신들이 기르는 소와 말의 번성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제사에서는 마소의 수호신께 가축의 귀에서 조금 떼어낸 피나 털을 바치며 한 해의 무사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이러한 귀표고사 관습은 가축에게 표식을 남기고 동시에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독특한 제주 목축문화였다.

또한 조선 시대 지방관아 차원에서도 매년 마조제(馬祖祭)를 지냈는데, 이는 국영 목장의 말신에게 풍요를 비는 제사였다. 이처럼 사람들은 하늘에 가축을 부탁하고, 가축에게는 사람의 정성을 들였다. 가축은 그저 재산이 아니라 함께 사는 생명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목축의례는 곧 공동체 축제이기도 했다.

또 다른 문화적 산물은 제주 말과 소를 돌보던 테우리들의 삶과 기술이다. 테우리들은 거친 들판에서 가축과 동고동락하며 자신들만의 전문지식과 생활방식을 발전시켰다. 풀을 찾아 산천을 누비는 법, 가축을 부르는 소리와 노래, 질병을 예방하는 민간요법 등 목축노동 속에서 축적된 지혜가 많았다.

이를테면, 제주 목자들은 목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가축들을 윤환방목(윤번제로 옮겨가며 방목)하는 기술을 터득했고, 비바람이 몰아치면 돌담 안으로 가축을 몰아넣어 보호하는 요령도 알고 있었다. 오늘날 제주 방언과 민요, 설화 속에는 가축과 관련된 내용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데, 이는 목축이 제주 문화에 뿌리깊게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제주인의 인내심과 공동체 의식 역시 이러한 목축 생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거센 자연을 이겨내고자 서로 힘을 모아 가축을 돌본 경험들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공동체 정신으로 승화되었다. 목축은 제주에게 한갓 생업이 아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공동체와 생태가 어우러진 제주 전통 목축 사례

제주의 목축 문화는 늘 공동체와 생태환경의 결합 속에서 유지되고 발전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을 단위로 운영되던 공동목장이다. 제주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한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마을공동목장을 일구고 가축을 함께 돌보았다. 마을마다 중산간 풀 좋은 땅을 확보해 두었다가 농번기가 끝나면 각 집에서 기르던 소와 말을 한데 모아 그 초지에 풀어놓았다. 가구별로 돌아가며 윤번제로 방목지에 나온 가축을 보살폈는데, 이를 두고 수눌음 문화의 원형이라고들 한다. 수눌음이란 제주도 특유의 상부상조 농촌 계로, 이웃끼리 품앗이하는 전통이다. 목축 분야에서 이미 서로의 소를 함께 돌보고 얻어진 풀과 땔감을 나누는 호혜 규약이 있었고, 이것이 공동체 협력의 기반이 되었다. 결국 목축의 공동 관리 경험이 제주 사회의 끈끈한 협동 문화를 키워낸 것이다.

공동목장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려면 자연환경을 관리하는 지혜도 필요했다. 제주 선인들은 해마다 늦겨울에서 이른 봄 사이에 중산간 목야지에 들불을 놓는 행사를 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지난 해 쌓였던 마른 풀과 해충을 불태워 없애면, 이듬해 새싹이 돋아나 양질의 목초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불놓기를 제주어로 “방애”라 불렀는데, 불태운 풀은 재가 되어 토양에 거름이 되고 새 풀은 연하고 부드러워져 소와 말이 잘 먹고 살이 찌게 되었다고 전한다. 동시에 불을 지피는 행위는 진드기 등의 해충을 제거하여 가축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었다. 오늘날 매년 제주에서 열리는 들불축제는 바로 이 옛 방애 풍습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행사로,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드넓은 들판에 불을 놓는 장관을 연출한다. 들불축제는 관광자원으로 각색되었지만 그 뿌리에는 제주 목축농경민의 지혜와 생태 순응 정신이 담겨 있다.

한편, 제주 전통 농업유산 중에는 밭담(石垣)이라고 불리는 돌담도 빼놓을 수 없다. 밭담은 화산석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낮은 담으로, 밭을 둘러싸서 바람을 막아주고 가축이 논밭에 들어와 작물을 해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돌 많은 제주 환경이 낳은 이 밭담 문화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그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밭담이 없다면 방목하던 말과 소들이 밭으로 들어와 농작물을 밟아버리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돌담을 쌓는 일 역시 온 마을이 협력하여 이루어졌고, 담 하나에도 공동체의 땀과 노력이 배어 있다. 밭담은 농경과 목축이 공존하던 제주 마을 풍경의 상징으로, 인간과 자연과 가축의 경계를 지혜롭게 조율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제주 목축문화의 백미는 조선 시대에 구축된 방대한 잣성(柵城)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잣성은 한라산 중턱에 길게 쌓은 돌담으로, 국가에서 경계를 표시한 거대한 목장 담장이다. 15세기 초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여 18세기까지 완성된 잣성은 해발 150~600m 고도별로 하잣성, 중잣성, 상잣성으로 구분되었다고 한다. 하잣성은 말들이 해안 마을 농경지로 내려와 농작물을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잣성은 말들이 한라산 깊숙이 들어가 동사(凍死)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설치된 일종의 울타리였다. 수십 리에 걸쳐 돌담을 두른 이 잣성은 국가 주도 하에 제주 전역을 거대한 방목지로 활용했다는 증거이며, 지금도 그 유적 일부가 남아 제주 전통 목축문화의 규모와 역사를 말해준다. 잣성 안에서 말과 소떼가 뛰놀던 옛 모습을 상상해보면, 척박한 섬을 길들여 가축의 천국으로 만든 제주 조상들의 지혜와 노고가 절로 느껴진다.

이처럼 제주 사람들은 생태와 공동체가 어우러진 목축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집단의 힘으로 자연을 다스리며 살아온 사례들이 제주 목축문화 곳곳에 스며 있다. 한 마리 소를 키워도 이웃과 힘을 합쳐 키웠고, 한 평의 풀밭을 써도 모두의 약속으로 보존해가며 썼다. 가축은 공동의 재산이자 공동의 책임이었고, 풀 한 포기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섬세한 관리가 이어졌다. 이러한 전통 목축 사례들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과 자연과 가축이 균형을 이룬 제주만의 방식은 지속가능한 농업과 지역공동체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제주 초지와 공동목장의 생태적 가치—탄소 흡수, 지하수 함양, 토양침식 방지 등—가 재조명되면서, 사라져가는 공동목장을 지키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화산섬의 자연이 빚어낸 방목 문화

요컨대, 화산섬 제주도의 자연환경은 방목 중심의 목축문화를 탄생시킨 모태였다. 돌투성이 얕은 흙, 많은 비와 바람, 광활한 들판과 온난한 기후는 농경에는 장애가 되었지만, 이를 딛고 제주인들은 가축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개척하였다. 목축은 제주 사람들에게 생존의 방편이자 공동체를 결속하는 힘이 되었고, 제주만의 고유한 생활문화를 꽃피웠다. 섬이라는 지리적 고립과 거친 환경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창의적으로 이용한 제주 목축의 역사는 매우 독특하고도 존귀하다.

이제 제주 한우를 비롯한 방목한우 브랜드를 이야기함에 있어, 단순히 상품의 우수성만이 아니라 그 배경에 깔린 자연과 역사, 문화의 맥락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주의 한우는 비옥한 논에서 난 곡식으로 비대한 소와는 다르다. 대신 거친 들풀을 뜯고 자란 튼튼한 소, 바람을 이겨낸 소, 공동체의 보살핌 속에 성장한 소다. 그 고기는 제주 자연의 맛과도 같고, 제주 사람들의 땀과 지혜가 밴 결과물이다. 화산섬 제주가 길러낸 방목 한우에는 천년을 이어온 섬의 목축문화와 자연순응 철학이 응축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제주 한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며, 섬과 소가 빚어낸 살아있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제주 자연환경이 왜 방목 중심의 목축 문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로부터 어떤 가치가 움텄는지를 살핀 지금, 우리는 한우 한 점을 맛보더라도 그 속에 담긴 제주만의 시간과 풍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화산섬과 한우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다. 제주 섬의 바람과 돌과 풀이 키워낸 한우야말로 자연이 선사한 선물이며, 제주인의 지혜로운 선택의 결실이다. 이 책의 서두를 통해 살펴본 대로, 제주라는 목축환경은 섬 고유의 방목 문화를 꽃피우며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서는 이러한 제주 목축문화가 어떻게 현대의 한우 산업과 미식 문화로 이어지는지, 그 가치와 비전을 더욱 풍부한 사례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제주 땅과 소의 특별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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