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세계의 가축화 경로
제2장 세계의 가축화 경로: 중국과 서아시아, 농경과 함께 시작된 정주 생활
인류가 수렵과 채집의 방랑을 멈추고 땅에 뿌리를 내리는 ‘정주(Sedentism)’라는 거대한 문명적 전환점에 들어섰을 때, 돼지는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돼지의 가축화는 인류사의 특정 시점에 단 한 번 발생하여 전 세계로 퍼져나간 사건이 아니다. 유전학적 고증과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따르면, 돼지는 약 1만 년 전 서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동아시아의 '중국 대륙'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인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 이는 돼지가 인류 문명의 정착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전략적 동반자’였음을 시사한다.
1. 가축화, 문명의 궤적을 바꾼 이중주
돼지는 식성이 까다롭지 않고 번식력이 좋으며 발육이 빨라 가축으로 기르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돼지의 습성은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따라서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시기부터 돼지 사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전 세계적으로 돼지의 품종은 대분류로 100여 종에 달하지만, 사육 가치가 있어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품종은 약 30여 종으로 알려져 있다. 소와 달리 돼지는 모두가 식육용이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3종 또는 4종의 잡종 교배 방식을 주로 취한다. 이러한 개량의 역사는 야생 멧돼지를 순화시켜 가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문명적 선택의 결과였다.
2. 서아시아의 경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유랑의 종말
서아시아의 돼지 가축화는 기원전 9,000년경, 오늘날의 터키 동남부와 이라크 북부를 잇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에서 태동했다.
마을의 청소부에서 식량 자원으로: 초기 농경 사회가 형성되면서 축적된 음식물 쓰레기와 곡물 부산물은 야생 멧돼지들을 유인했다. 인간은 이들을 사냥하는 것보다 가두어 기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단백질 확보 수단임을 깨달았다.
생태적 변화와 금기의 형성: 신석기 시대 서아시아에서 돼지는 중요한 자원이었으나, 기후 변화로 지역이 건조해지면서 물과 그늘을 필요로 하는 돼지 사육은 환경적 부담이 되었다. 이러한 생태적 변화는 훗날 이 지역에서 돼지고기가 문화적 금기의 대상으로 변모하는 배경이 되었다.
3. 중국의 경로: 황하와 양쯔강, 농경의 완성자
동아시아에서의 가축화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황하 및 양쯔강 유역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되었다. 중국의 돼지 문명은 쌀 농사라는 집약적 농업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독특한 양상으로 발전했다.
저량안천하(猪粮安天下): "돼지고기와 식량이 천하를 편안하게 한다"는 이 말은 중국 문명에서 돼지가 차지하는 압도적인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현대에도 세계 돼지고기 소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돼지고기 제국'이다.
집(家)의 중심이 된 돼지: 집을 뜻하는 한자 '가(家)'는 지붕(宀) 아래 돼지(豕)가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 이는 돼지가 정주 생활의 핵심적인 징표이자 가족의 일원이었음을 상징한다.
농경과의 상생: 중국인들에게 돼지는 농사 부산물을 먹고 농사에 필수적인 강력한 비료(분뇨)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이 순환 구조는 중국이 조밀한 인구를 부양하며 문명을 꽃피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4. 한반도로 이어진 돼지의 길과 시련의 역사
한반도에서의 돼지 사육은 고구려 시대 한민족이 만주 지방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며..."라는 기록이 있어, 적어도 2,000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돼지를 사육했음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전래와 육식의 금기: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동물을 제물로 바치거나 고기를 먹는 행위는 나쁜 일로 여겨졌다 .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정신은 모든 불교 국가의 근본 계율을 이루었으며, 이는 고려 시대 몽골과의 형제 맹약을 맺기 전까지 한반도 육식 문화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
몽골의 영향과 육식의 부활: 13세기 몽골의 지배 하에 들어가면서 한반도는 다시 육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도축 기술이 서툴러 고기에서 냄새가 나던 초기 단계를 지나, 고구려의 맥적(貊炙) 같은 양념 구이 문화가 설야멱적(雪夜覓炙) 등으로 이어지며 다시 발달하게 되었다.
제주의 돗통시: 섬이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제주는 인간의 배설물을 돼지가 처리하고 그 분뇨를 다시 밭에 뿌리는 완벽한 생태 순환 시스템인 '돗통시'를 발전시켰다. 이는 척박한 화산섬에서 생존하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었으며, 제주 흑돼지의 고유한 육질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5. 정주 생활의 매커니즘: 돼지가 만든 도시
돼지는 이동성이 낮은 동물이므로 일정한 장소에 머물며 인간이 제공하는 먹이에 의존한다. 이러한 특성은 인류의 정주를 강제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잉여의 저장고: 돼지는 풍년기에 남는 곡물을 지방과 근육으로 전환해 저장했다가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살아있는 저축'이었다.
도시화의 촉매: 정착지에 고정된 단백질 공급원이 존재한다는 것은 대규모 인구의 밀집을 가능케 했고, 이는 곧 마을이 도시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다.
6. 근대화와 서구 개량종의 도입
대한제국 시기, 자주적인 근대화를 위해 서구의 개량종 돼지들이 도입되었다 .
농무목축시험장의 역할: 1884년 미국 보빙사 일행의 제안으로 설치된 농무목축시험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농사 시험장이다 . 이곳에서는 1885년 캘리포니아산 돼지 8두를 포함한 각종 외국 가축들이 도입되어 개량이 시도되었다.
식민 사관의 극복: 기존 기록들은 일본에 의해 1903년 요크셔종, 1905년 버크셔종이 처음 도입되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대한제국의 자주적인 노력을 말살하려는 식민 사관의 영향이 크다. 이미 그 이전부터 자주적인 가축 개량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7. 현대적 의의: 글로컬 프리미엄과 지속 가능한 미래
오늘날 돼지 산업은 과거의 대량 생산 논리를 넘어 지역의 특성을 살린 '글로컬(Glocal) 프리미엄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로컬 브랜드의 가치: 제주 목초 한우가 제주의 초지 48%라는 환경적 자산을 브랜드화했듯, 돼지 역시 지역의 사육 철학과 가공 기술이 결합될 때 진정한 문명적 가치를 회복한다.
기술의 진보: 현대 식품공학은 미생물 가공을 통해 감칠맛을 증폭시키고, 특허받은 냉동 기술(특허등록번호 제10-2841401호)로 육즙 손실을 최소화하여 소비자에게 깨끗한 맛과 정식한 스토리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황토 지대와 서아시아의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돼지 가축화의 경로는 인류가 어떻게 지구 환경에 적응하며 '집(家)'이라는 문명을 건설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돼지는 인류에게 유랑을 끝낼 용기를 주었으며, 그 정착지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돼지를 이해하는 것은 곧 인간의 욕망과 문명의 지도를 이해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