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종교와 돼지 금기
제4장 종교와 돼지 금기: 유대교·이슬람교의 금기 뒤에 숨겨진 문화 구획의 논리
인류가 돼지를 가축화한 이래, 이 동물은 가장 풍요로운 단백질원인 동시에 가장 격렬한 혐오와 금기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누려왔다. 특히 서아시아에서 발원한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돼지는 '부정한 짐승'의 대명사로 낙인찍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식탁 밖으로 추방되었다. 흔히 이 금기를 단순한 '위생상의 이유' 혹은 '기생충 때문'이라고 설명하곤 하지만,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정교한 생태적 생존 전략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문화 구획의 논리가 숨어 있다.
1. 텍스트에 새겨진 혐오의 근거: 분류학적 변종
유대교의 『레위기』와 『신명기』, 그리고 이슬람교의 『쿠란』은 돼지를 먹지 말아야 할 부정한 것으로 명시한다. 레위기 11장의 규정에 따르면, 먹을 수 있는 짐승의 조건은 '굽이 갈라지고 쪽발이 되어 있으며, 새김질(반추)을 하는 것'이다.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하지 않기에 분류학적 기준에서 탈락했다.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와 같은 상징 인류학자들은 이를 '범주화의 오류'로 설명한다. 고대 근동 사람들의 세계관에서 소나 양처럼 굽이 갈라진 동물은 마땅히 되새김질을 해야 했다. 하지만 돼지는 이 두 가지 특징 중 하나만 가짐으로써 기존의 질서와 체계를 교란하는 '비정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더러움이란 질서에 어긋나는 것(Matter out of place)"이라는 말처럼, 체계에 들어맞지 않는 돼지는 영적으로 불결한 존재로 규정되어 공동체의 성결함을 지키기 위해 배제되었다.
2. 생태적 필연성: 사막에서 돼지를 키운다는 것의 비용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로 대표되는 문화생태학자들은 이 금기의 근원을 철저하게 경제적·생태적 이익에서 찾는다. 멧돼지에서 기원한 돼지는 본래 숲의 동물이다. 그늘이 있고 물이 풍부한 곳에서 살아야 하며, 체온 조절 능력이 낮아 진흙탕에 몸을 굴려야 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점차 건조해지고 숲이 사라지면서, 사막화된 서아시아 환경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은 재앙에 가까운 비용을 초래했다. 소나 양은 인간이 먹을 수 없는 풀을 소화시켜 단백질로 바꾸지만, 잡식성인 돼지는 인간의 주식인 곡물을 두고 인간과 직접 경쟁하는 존재였다. 물이 귀한 곳에서 돼지에게 물을 대주고 그늘을 만들어주는 비용은 돼지가 제공하는 고기의 가치를 넘어섰다. 결국 '돼지 금기'는 공동체가 생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사육 방식에 빠지지 않도록 종교라는 강력한 권위로 내린 '사회적 금지령'이었던 셈이다.
3. 문화적 구획: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식탁의 담장
식습관은 한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무엇을 먹지 않느냐'가 한 공동체의 결속력을 더 강하게 만든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돼지 금기는 주변의 다신교 민족들, 특히 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즐겨 먹던 가나안 인들이나 필리스티아 인들과 자신들을 구별 짓는 선명한 경계선이었다.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선언은 식탁 위에서 완성되었다. 돼지고기를 거부함으로써 유대인들은 이방 문화의 침투를 막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율법 체계를 수호했다. 이슬람교 역시 발원 초기, 유대교의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돼지 금기를 유지함으로써 광범위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의 문화를 하나로 묶는 문화적 통합 장치로 활용했다. 금기는 물리적 담장이 없어도 공동체의 순수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성벽'이었다.
4. 현대적 전환: 금기에서 미식의 다양성으로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환경적·종교적 이유로 돼지를 배척했던 지역의 유전자가 현대 미식 시장에 뜻밖의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18~19세기 유럽의 양돈업자들은 자신들의 돼지보다 번식력이 뛰어나고 지방질이 풍부한 중국산 돼지를 들여와 교잡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 서아시아와 유럽의 유전적 다양성이 결합되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버크셔'와 같은 명품 품종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2026년 현재 한국의 프리미엄 육류 시장에서 강조하는 '건강한 지방산'이나 '심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는 불포화지방산(MUFA)' 담론은 과거 '부정한 지방'이라 치부되던 돼지 지방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있다. 제주의 초지 48%라는 천혜의 환경에서 자란 목초 한우나 제주의 흑돼지가 세계적인 프리미엄 브랜드 '목초(MOCK CHO)'로 거듭나는 과정은, 금기와 억압의 역사를 딛고 '지속 가능한 미식'이라는 새로운 문명을 쓰는 과정이기도 하다.
욕망을 통제하여 문명을 지키다
종교가 돼지를 금기시한 것은 돼지라는 생명체 자체에 대한 증오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공동체의 생존을 보장하며,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고도의 지적 설계였다.
돼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문화와 종교라는 필터를 거쳐 어떻게 문명으로 정착되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식탁에서 사라진 돼지의 빈자리는 역설적으로 그들의 문명이 얼마나 치열하게 생존과 정체성을 고민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증거다. 이제 우리는 금기의 시대를 지나, 과학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돼지가 전해주는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를 다시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