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육마케터다.
식육마케터 고기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이다.
이제 어언 30년을 고기를 배우고 고기 마케팅을 해왔다.
여기서 고기란 삼겹살로 대표가 된다. 누구보다 삼겹살을 잘 알고 삼겹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을 하고 심지어 삼겹살을 브랜딩 하는 것을 주제로 박사학위 받았다
난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텔레비전에 맛칼럼니스트가 나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겹살을 먹기 시작한 것이 일본에 등심, 안심을 수출하고 남은 잔여육이다.” 라는 말을 한다.
그 방송을 보면서 삼겹살 공화국이니 삼겹살의 블랙홀이니 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겹살을 미치게 좋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아니 지난 30년동안 한번도 삼겹살에 대한 지나친 선호도에 대해서 왜? 라는 의문을 가져 보지 않았다. 그냥 아주 옛날부터 삼겹살을 좋아 했겠지 아니 그냥 태어날 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겹살을 좋아했겠지 하는 생각 아니 정말 삼겹살의 발생과 소비의 시작에 대해서 고민해 보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먹고 살기 바빠서 잊고 살았던 한번도 고민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해 준 것에 대해서는
식육 유통을 전공한 사람입장에서 삼겹살만 식당에 유통되었다는 것은 돼지고기가 부분육 (박스육)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육의 유통은 현대적 의미의 식육산업 발전을 의미하게 된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식육산업의 근현대사 아니 역사 자체를 고민하고 공부하고 정리한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여기 저기 찾아 다니면서 취재를 하고 각종 자료와 책들을 보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 결과물의 시작이 삼겹살의 시작이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박사 논문을 쓸 때보다 더 방대한 자료를 찾고 읽고 취재를 했다.
삼겹살의 시작은 압축성장의 산업화속의 식문화 변화의 역사를 알아 보는 책이다.
아니 1885년 이땅에 최초의 서양종 돼지 8마리가 도입된 이후 쌀을 넘어 농업 생산 1위가 된 양.한돈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우와 쌀의 수탈을 위해 쇠고기 대체육으로 생산성 증대를 위한 비료 생산의 목적으로 양돈이 장려되었다.
해방이후 계획 경제하의 압축성장기에 역시 한우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잠재우기 위한 대체품으로 또 외화 벌이를 위한 수출상품으로 양돈이 장려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초반까지 별다른 변화와 큰 성장을 보이지 못했던 양돈업은 1970년대 중반 압축성장의 성과가 차차 나타나면서 육류 소비가 급증하게 되는데 한우는 생산주기가 길어 그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가격이 인상되었다. 그 즈음 비교적 생산주기가 짧은 양돈업은 서서히 규모가 확대되는 산업화가 된다. 산업화된 양돈산업은 배합 사료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거세등 과학적 관리 기술이 도입 돼지고기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돼지고기의 이취가 극감하게 된다. 또한 1970년대 풀세트 부분육 대일 수출의 경험으로 부분육 가공장들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롯데햄과 백설햄등 본격적인 축육햄 소시지 공장들의 건설로 육류 소비가 확대된다.
해방이후 미국이나 서양으로부터 여러종의 서양종 돼지들이 품종이 들어와 사육된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일제강점기의 버크셔와 재래돼지 누진 교배종의 사육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1973년 삼성의 용인 자연농장을 시작으로 그 당시 세계적인 추세인 삼원교잡종의 사육이 수출 규격돈 생산이라는 이유로 확산되면서 양돈은 산업화가 되고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발전은 맛있는 돼지고기로의 발전이 아니라 생산성이 좋은 먹을 만한 돼지산업으로의 발전이었고 이러한 패러다임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삼겹살의 시작에서 우리가 삼겹살을 미치게 좋아하는 건 역사속에서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던 식생활 경험이 별로 없었고 과거의 돼지고기와 오늘의 돼지고기는 확연한 맛의 차이가 있는 돼지였다는 것이다.
과거의 돼지고기는 잔반 사육과 비거세등으로 이취가 심해 지금처럼 로스구이 스타일로 소금만 쳐서 먹기 거북한 고기였다. 그런 돼지고기가 1970년대 중후반 양돈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인프라의 확충으로 맛있는 서민의 고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양돈 농민들 노력의 결과다.
사회적 현상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발생하는 건 현대 사회에서는 쉽게 찾아 보기 어려운 일이다.
삼겹살의 시작을 다시 정리해 보면 1920년대 이전 재래종 돼지에서 삼겹살의 형성이 어려웠을거다. 그래서 삼겹살 세겹살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이 아마도 1930년대 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삼겹살은 아니 돼지고기는 부업형 잔반사육이나 비거세로 냄새가 심해서 로스구이로 소금만 쳐서 먹을 수 있는 고기는 아니였다. 1960년대 1970년대 외식으로 인기있던 요리는 한우 불고기와 한우 로스구이였다. 그런데 1970년대 경제가 압축성장하면서 육류의 소비량이 급증하는데 한우는 그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가격이 급등하게 된다. 반면 돼지고기는 1971년 일본이 돈육 수입자유화가 되면서 1972년 오백만불이라는 놀라운 대일수출실적을 보이게 되면서 정부는 물론이고 삼성등 기업과 농가들이 돼지 사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상당량 일본으로 수출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정부가 수출을 허가하고 통제하였다는 것이다. 국내의 물가 안정이 최우선이던 박정희정부는 육류 소비가 설과 추석등 육류 소비가 늘어 가격이 인상될 조짐이 보이면 언제든 대일본 수출을 중단하고 수출물량을 국내에 유통시켰다. 1977년까지는 계절적 일시적 수출 통제였으나 1978년 한우등 육류 파동이 발생하자. 대일 돈육 수출을 전면 중단하고 국내 물가 안정에 국내 양돈 생산 전체량을 투입하게 된다. 아마도 이시기부터 돼지고기는 서민의 대표 고기 아니 우리나라의 대표 고기가 되고 그 최전선에 삼겹살이 등장하게 되었다. 수출중단은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수출이 다시 시작된 것은 1985년이었다.
한우 불고기는 가족 외식으로 한우 로스구이는 저녁 직장 회식으로 즐겼던 1970년대 1978년 돈육과 쇠고기 가격이 모두 두배이상 상승하게 되지만 그나마 돼지고기는 사먹을 수 있는 가격선을 유지하게 됨으로 한우 로스구이식당은 삼겹살 로스구이 식당으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삼겹살의 사회적 배경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다시 그 맛칼럼니스트가 인기있는 방송프로에 나와 우리나라 양돈산업은 일본 수출을 위해 일본 자본이 투자되었고 삼겹살은 수출 잔여육이라는 방송을 또 하는걸 보았다.
아무리 먹는 음식이지만
서민의 삼겹살이지만
압축성장의 산업화와 반민주적 독재체제하에서 힘없고 가난한 민중에게 위로와 종교가 되어 주었던 삼겹살의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왜곡되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삼겹살의 시작을 쓴다.
그의 잘못된 주장이 방송과 언론 매체에 보도되고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삼겹살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없었던 까닭이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삼겹살과 대일 수출이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일 수출이 국내 삼겹살의 선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삼겹살이 유행하던 시절 1977년부터 1984년까지 대일 돈육 수출은 거의 없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삼겹살을 포함해서 정육 부위 전체가 다 수출 되었다. 따라서 삼겹살을 대일 수출 잔여육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삼겹살이 대일 돈육수출에서 제외된 건 1985년이후 본격적인 대일 돈육 수출이 재개된 이후로 봐야 한다.
1977년과 1978년에 약간의 돼지고기가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그 당시에 등심, 안심만 수출 되었을 수는 있다. 그 량이 국내 유통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였다.
삼겹살은 우리 사회의 현대화의 상징적 음식이다. 전통적 사회의 현대화되는 산업사회의 혼돈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게 해 준 고마운 음식이다.
삼겹살은 “우리가 남이가” 하던 시절의 종교 의식였을 거다.
용서와 화합의 역사를 만드는 밤마다의 의식
근현대 130년 힘들고 억압받고 분단되고 싸웠던 우리 민족에게 힘이고 위로였고 현대화의 에너지였다.
이즈음 삼겹살의 시작과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미래의 삼겹살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지 기대해 본다.
근현대 130년의 한(양)돈산업의 역사를 돌아 보면서 양적으로 산업화된 한(양)돈산업이 더 맛있는 돼지고기로의 질적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프트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역사는 무기다.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는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삼겹살의 시작을 통해 역사를 보고 미래를 준비하자.
조선시대 돼지 해체도에는 삼겹살이 없다.
그냥 갈비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세겹살
삼겹살은 근현대화의 산물이다....
특히 삼겹살 로스구이 (지금의 구이 방식) 현대산업화의 패스트푸드같은 거다.
처음 냉동 삼겹살 로스구이집 지금의 청춘집이나 나리 식당 가서 잘 보자.
고기나오는 시간 햄버거 나오는 시간이나 라면 끓이는 시간밖에 안 걸린다.
아마 서구의 스테이크를 우리식 패스트푸드로 만든 것이 삼겹살 로스구이라고 봐야 한다.
삼겹살 로스구이가 197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거라면 이제 벌써40년이 넘어간다.
언제까지 유행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