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페이스북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페이스북이다. 

돼지고기 소비량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구제역 발생 등으로 일시적인 소비 위축은 있어도 돼지고기는 점점 더 많이 먹고 있지요. 그런데 돼지고기 가격은 떨어졌습니다. 공급량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국산도 늘었고 수입도 늘었습니다.
양돈업계는 당장에 돼지고기 수입을 줄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입되는 돼지고기는 삼겹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여 가장 많이 먹는 부위입니다. 국산 돼지고기 소비도 삼겹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국산 돼지고기 도매가격을 보면 삼겹살이 안심과 등심에 비해 2~3배나 비쌉니다.
외국에서는 삼겹살이 인기가 없고 가격도 쌉니다. 한국에서는 국산 삼겹살이 비싸 소비자에게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외국 삼겹살을 수입하여 국내에 판매하는 사업이 번창하게 됩니다. 정부가 나서 수입을 억제하면 가뜩이나 비싼 국산 삼겹살 가격이 더 뜁니다. 다시 금겹살이라는 말이 돌 것입니다.
...
 첫줄에 제가 “돼지고기 소비량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고 하였는데, 정확히 표현하면 “삼겹살 소비량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의 문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풀 수 있습니다. 당장에 정부가 수입을 막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단기 대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삼겹살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똑같은 뇌와 감각기관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인간이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에 따라 음식 기호가 달라집니다. 자신의 삶터에서 가장 많이 주어지는, 그러니까 처음에 익숙해진 음식에 강력한 기호를 가지게 됩니다. 한국인의 몸에 삼겹살은 특별히 맛있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유전자는 없습니다. 어쩌다가 많이 접하게 되어 익숙해진 것일 뿐입니다. 삼겹살을 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삼겹살 대신에 인심, 등심, 다릿살 등등으로 요리하여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 부위의 소비가 늘면 돼지 전체 가격이 오르고, 양돈농가는 돼지를 마리로 파니까 이득이 생깁니다.
제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압니다. 우리 모두 삼겹살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강력한 요인이 존재합니다. 한국인이 계속 삼겹살만 먹어야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끝없이 “한국인은 삼겹살을 좋아하는 민족이며,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삼겹살을 먹으면 환장을 하는 것이 삼겹살은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돼지고기 요리이다”고 홍보를 합니다. 그들에게는 큰 돈벌이이니 여러 홍보 매체를 동원합니다. 티브이만 틀면 삼겹살 삼겹살 합니다.
한국이 세계 삼겹살 블랙홀이 되고, 그 블랙홀 가장자리에서 한국 양돈산업이 뒤틀리는 일 같은 것에 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삼겹살 공화국으로 더욱 번창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들은 막강합니다. 그들에 의해 제 말은 늘 묻힙니다. 그럼에도, 삼겹살 블랙홀에다 작은 모래 한 알을 하나씩 던져봅니다. 삼겹살 시대를 끝낼 때가 되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kyoik.hwang.7?epa=SEARCH_BOX







내가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을 걸고 넘어가자는 아니다. 그가 말하는 많은 것들중 내가 모르는 건 난 전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의 정치적 사상이나 일본에 대한 감정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다 나름의 자유의사니 내가 관여 할 일이 아니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내가 모르는 분

야에 대한 이야기는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내가 모르니 그러나 내가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잘못된 글을 바로 잡아 주고 싶다.
우리민족이 지난 30,40년간 삼겹살에 미치고 환장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삼겹살 소비는 많이 위축되고 있다. 이늘 2017년과 2018년 수입육 부위별 실적을 살펴 봐도 알 수 있다. 2017년까지는 삼겹살을 가장 많이 수입하였지만 2018년 가장 많이 수입한 부위는 앞다리다.  전년비 신장면에서도 삼겹살은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 돼지고기 소비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자료다. 
시장이 조심스럽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대표 맛칼럼니스트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만 계속하고 계신다. 
우리나라에서 삼겹살 소비가 많았던 것이 수출 잔여육이라고 주장하셨는데 최근 대한민국돼지산업사에서 난 분명히 그가 주장하던 1970년대에는 삼겹살도 수출되었던 부위임을 입증했다. 

식육을 전공하고 지난 30년간 현업에서 삼겹살 유통을 했던 사람으로  또한 식육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삼겹살을 왜? 좋아하는가에 대해서는 수출 잔여육 설보다는 조금더 깊이 있고 전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민족에게 고기는 축제식이다. 일상에서는 거의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돼지를 키우는 건 비료를 얻고 청소를 시키기 위해서 였다.
닭 역시 고기 생산이 주 목적이 아니라 계란을 공급해 주는 귀한 가축이었다.
소는 논농사 중심의 우경에서는 꼭 필요하고 소중한 가족같은 가축이었다.
인도등 농사에 소를 귀하게 쓰는 나라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등으로 쇠고기를 먹는 걸 금지하고 백성들이 그 종교적인 금기를 잘 지켜는 것 같은데 우리 조상님들은 예외였다.
소를 열심히 잡아 먹으니 아주 자주 임금은 우금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고려시대에는 아예 고려 전기에 육식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다들 소긍의 고려도경 도재편을 근거로 몽골의 침략이후 육식을 다시 시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난 서긍의 고려도경 이자겸편을 근거로 고기는 그 시절 귀한 것이었고 무지 좋아 하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얼마나 귀한 것이었으면 당대의 최고 권력자 이자겸의 집에 고기 선물이 가득했을까? 안 먹고 종교적인 금기품목이었다면 권력자에게 고기를 선물할 수 있었을까?
고려 전기 육식 위축설, 그리고 몽고에 의해서 육식을 배웠다는 설은 일제에 의해서 지어진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자신들보다 육식의 역사에 대한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일본은 열등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열등감은 친일 세력에 의해서 우리 음식학회의 정설로 만들어 졌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고려말 이후에 아니 유교 국가인 조선의 건국이후에는 소에 대한 기록과 쇠고기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 많다. 백정의 이야기도 양반집에서 밀도살을 하던 이야기도 참 많은 이야기가 있다. 한양에 도축장과 푸줏간을 겸한 (이 시절에는 도축과 정선 판매를 한 곳에서 진행했다고 봐야 한다.) 24개의 현방과 그 위치 까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돼지와 돼지고기의 관한 기록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세종때 거세를 했다는 것 정도  쇠고기 전문 현방은 한양에 23개 24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저육전을 3곳뿐이었다는 기록 조선 말기에 가서 육류 소비가 확대되어 돼지고기가 쇠고기 보다 더 비싸게 팔리고 저육전이 80개이상 생겼다는 것 정도가 다다 물론 기록들도 정리하면 상당한 분량이 된다.
역사는 약자와 여성에 대해서는 늘 관심이 없다.
일제 강점기나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양돈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 보면 돼지를 키우는 일은 여성이 농가 부업정도로 하는 일이지 돼지키우는 일을 전업으로 하는 것 농촌이 아니라 수요가 있는 도시 근교에서 도시의 식당에서 나오는 잔반으로 20마리정도 키우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난 최근 공저로 출판한 대한민국돼지산업사에서 1970년대말부터 삼겹살의 유행 기사가 신문에 나고 본격적으로 삼겹살을 열심히 먹기 시작한 이유는 수출 잔여육이 아니라 1970년대 경제 성장으로 육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처음에는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상대적으로 늘었는데 소는 일년에 한 마리의 새끼밖에 낳을 수 없는 생산성의 한계로 가격이 급등하자. 대체 육으로 돼지고기를 소비하게 되었고 그 당시 쇠고기 로스구이라는 외식 메뉴에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 그중 삼겹살이 대체되게 되었다고 본다. 1970년대 후반에는 삼성등 대기업의 양돈 참여와 돼지고기 일본 수출로 양돈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달하고 전업 양돈가들이 늘어나서 거세도 하고 잔반 사료 중심이던 급여 방식도 배합사료를 먹이는 농장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거세와 배합 사료를 먹이면 돼지고기의 냄새를 줄일 수 있다.

그럼 왜? 돼지고기의 여러 부위중 유독 삼겹살이었을까?
아마 1970년대말 삼겹살 로스 구이가 유행하기 전에는 돼지고기의 주 소비 형식은 삶거나 찌는 것이었다. 로스구이는 해방이후 미군정과 전쟁을 통해서 미국 스테이크 문화의 한국화라고 봐야 할 거다. 삼겹살 이외에 지방이 적은 부위는 구워 먹을 때는 맛이 좀 없었을거다. 
난 여기서 삼겹살이 일본의 돈가스를 많이 닮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돈가스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인 음식이다.
삼겹살과 치킨 역시 한국의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음식이다. 
일본은 1871년 1200년만에 다시 육식을 시작하면서 쇠고기를 먼저 즐겼다. 육식이 늘어나 쇠고기 수급이 어려워지고 가격도 많이 오른 1912 ~ 1925 다이쇼 시대에 본격적으로 카레라이스, 돈가스등의 요리가 유행하면서 돼지고기를 일반인들이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기하면 쇠고기다. 특히 한우고기는 맛을 떠나서 계급 상징이다.
한우고기는 접대와 대접의 척도다. 양반들이나 먹는 귀한 것이었다. 일반 백성들이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을 거다.
아니 지금 우리가 고기를 먹는다는 건 구이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고기소비 형식은 50그램 100그램정도를 사다가 육수를 끓여서 정미식품으로 주로 이용했던 것 같다. 고기를 구워 먹는 건 양반 계급이나 평안도 지역 정도의 문화였을거다. 

30KG 도 안되는 조선의 재래돼지 육류 공급이 주목적이었다면 조금 키우는 쪽으로 개량을 해 왔겠지만 조선의 돼지는 농가에서는 채비 동물이고 왕가에서는 제사나 빈례(오례(五禮)의 하나로서 손님을 접대하는 예. )에 사용되었다. 빈례용으로 당저 당나라 돼지를 수입해서 키우기도 하였지만 농가로 적극적인 보급을 하지 않은 걸 보면 돼지를 많이 키우는 일이 일반 농가에서는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조선반도에 서양종 돼지가 들어 온 건 1885년이다. 
네이버에는 1903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조선 농업사를 근거로 해방이후 농업 교과서에 그렇게 쓰여졌고 그렇게 배웠다. 1967년인가 역사 학회에서 농무 목축시험장의 역사를 찾아내서 학회에서 발표를 했고 농무목축시험장의 역사 기록을 보면 1885년 미국에서 돼지 8마리가 수입된 기록이 있다. 
일제는 강점이후 1920년대 본격적으로 버크셔를 농가의 보급 재래돼지와의 누진 교배 정책을 시작한다. 1942년까지 누진교배 잡종이 70%정도 사육되고 있었던 통계가 있으니 상당히 좋은 성적이었다고 봐야 할 거다. 제주지역을 제외한 내륙의 흑돼지는 대부분 이 당시의 버크셔와 재래 돼지의 누진 교배종의 후손이라고 봐야 할 거다. 제주도 흑돼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겠다.
해방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일소가 남한에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해방된 기쁨으로 육류의 소비는 늘어났다.
소를 더 이상 잡아 먹으면 농사일을 할 소가 없어진다.
1948년 돼지와 닭을 도시근교에서 장려하기 시작한다.
아마 일산, 포천지역이 양돈의 장려 지역이 아니였을까?
해방이후 미국의 원조로 다양한 돼지들이 들어 온다. 
1970년대까지 다양한 돼지 종이 한반도에서 사육되었다.
1970년대 용인자연농장 지금의 에버랜드에서 삼원교잡종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삼원교잡종을 키우는 농가들이 늘어 났다. 문제는 일제 강점기에 버크셔와 재래돼지 잡종보다 전쟁이후 도입된 단일 품종의 돼지들보다 삼원교잡종은 생산성은 좋은데 맛을 통일벼 같다고 해야 할까 좀 떨어졌던 것 같다. 
앞다리, 뒷다리는 삶거나 구워도 예전 맛이 아니였다. 그런데 지방 많은 삼겹살은 제법 맛이 있다. 삼겹살이 다른 부위보다 맛이 있어서 삼겹살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사실 삼원교잡종 돼지가 맛이 듀록이나 버크셔 같은 돼지보다 맛없다는 건 나도 최근에 알았다.
그걸 입증해 준 것이 광화문 국밥, 옥동식, 신도세기 식당이다. 
일반 백돼지로 국밥을 끓이면 국물도 진하게 나오지 않고 맛이 없다는 걸 광화문국밥, 옥동식에서 처음 알았다. 그전의 국밥들이 다 사골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라 순순하게 고기만 삶았을 때 맛의 차이를 모르고 그냥 넘어갔던거다. 신도세기의 듀록 삼겹살을 먹어 보면 우리가 먹던 삼겹살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가 삼겹살 미치게 좋아하게 된 건 다른 부위보다 삼겹살이 맛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앞다리, 뒷다리 , 삼겹살, 목심, 갈비는 해방이후 늘 먹어 왔는데 가격이 훨씬 싼 앞다리, 뒷다리가 여전히 인기가 없는 건 맛 때문이지 황교익의 주장처럼 공급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황교익의 논리라면 앞다리, 뒷다리 역시 많이 먹고 미치게 좋아해야 한다. 
뒷다리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쌀거다. 그런 뒷다리가 돼지 한 마리를 작업하면 정육으로 더 많이 생산되는데 우리가 삼겹살만 좋아하는 건 황교익의 주장과는 맞지 않는 소리다. 

왜? 처음 삼겹살은 냉동으로 시장에 나왔을까?
수출로 먹고 살고 수출에 목숨을 걸었던 1970년대 대한민국 머리카락까지 잘라서 가발 만들어 수출을 하고 돼지고기 역시 무섭게 일본으로 수출했는데 돼지고기는 다른 수출품목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전복이나 김같은 농산물들은 물가에 영향을 안미쳐서 국내에서는 수출하고 남는 걸 공급받으니 비싼 값으로 유통되었는데 돼지고기는 국내 물가 안정이 수출보다 최우선이었다. 기록을 보면서 설과 추석시즌에는 수출을 중단하고 국내 돈가가 상승하면 수출하려고 비축했던 냉동육이 국내 시장에 방출되었다. 그 당시 국내 돼지고기 유통 시장은 부위별 유통 개념이 없었다. 그냥 살코기와 비계 정도로 구분해서 돼지고기를 먹었다. 도축이후 온도체로 지육이 유통되고 정육점에서도 냉동하지 않고 그냥 냉장고에 고기를 보관하다 손님이 오면 팔았다.
냉동육은 수출을 위해 비축했던 것이다. 
그래서 1970년대 후반 한우고기 가격이 오르자 정부는 1984년까지 대일 돈육 수출을 중단하고 국내에 물가 안정을 위해 돼지고기 공급을 치중하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가 먹는 삼겹살 소금 구이는 한우 로스구의의 대체품이고 로스구이는 한국형 스테이크라고 봐야 할지 모른다. 2018년 삼겹살시장에 변화가 시장되었다. 2019년 이변화가 어디로 갈지 잘 지켜 봐야 한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의 영향으로 돼지고기 가격에 이상이 생기면 수입쇠고기 시장의 확장이 무섭게 진행될 수 있다. 
삼겹살은 맛이 있어서 먹은 거다. 맛있는 삼겹살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거다. 그러나 신라면이 진라면에게 1위 자리를 위협 받듯이 삼겹살의 인기 독주가 계속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아니 세계 육류시장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니 육류 시장에 대해서 깊이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 할때다.  돼지고기 소비가 2018년 2017년보다 늘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소비가 자발적 소비인지 비자발적 소비인지 잘 관찰해야 한다는 거다. 식당에서 “삼겹 주세요”“ 오늘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지” “ 돼지갈비 먹자” 이런 내가 선택하는 자발적 소비시장에는 분명 이상 증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단체급식이나 HMR, 편의점 도시락에서 제공되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돼지고기의 소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앞에서 본 앞다리 수입량이 늘어나는 건 이런 측면으로 해석해야 한다. 물론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으로 국내로 미국산 앞다리가 많이 수입된 건 사실이지만 이 미국산 앞다리의 소비를 계속 관찰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설우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