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의 시작에서 못다한 이야기 삼겹살 로스구이의 탄

현대 양돈

삼겹살 로스구이의 탄생

사실 우리 민족이 돼지고기의 특정부위만을 가지고 요리를 해 먹었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1934년 11월 3일 동아일보에 육류의 좋고 그른 것을 분간 해 내는 법 또 살때에 주의할 몇가기에 세겹살(삼겹살)이란 단어가 처음 나오지만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도 그냥 돼지고기라는 표현하거나 살코기라는 말로 통합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스라는 말이 일본 말로 등심이다. 위의 기사에도 조선에서도 제일 맛있는 곳은 등심이란 즉 오늘날 로스라고 하는 소등한가온대 고기가 제일위를 차지라고 적고 있다.

일본말로 등심이 로스이고 로스란 말을 일제 강점기에도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로스구이가 있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방자구이를 삼겹살 구이랑 연관시키는 건 무리다. 그냥 이런 것도 있었다 정도 참고로 이야기해 보자,

고려 시대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도 방자고기에 대해 쓰여 있다. 고려도경 방자조에도 방자라는 하인은 박봉이라 채소 등이 급여될 뿐이어서 간혹 윗사람이 먹다 남긴 고기 찌꺼기를 비록 조금 변질돼 냄새가 나도 달게 먹고 집에 가지고 가기도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여담으로 서긍의 고려도경을 근거로 우리민족이 고려초기에 불교를 믿어서 육식을 잘 몰랐다고 주장하는 음식학자들이 많은데 고려도경에는 이 방자구이말고도 여러 고기 이야기가 나온다.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짧은 기간 머물다간 서긍의 책에 여러 고기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1970~1980년대 식생활문화를 연구한 이성우 교수는 그의 책 고려 이전 한국식생활연구에서 방자구이는 소금만 뿌려서 굽는 것이므로 특별한 양념재료나 조리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식품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먹을 때는 날파나 상추의 겉절이를 곁들여 먹기도 하였다고 설명했다.

방자고기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씻지도 않고 다른 양념없이 소금만 뿌려 구운 고기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양념하지 않고 구운 고기를 부르는 이름인데, 방자가 얼떨결에 고기를 구해도 양념할 틈도 없어서 그냥 구워 먹었다고 해서 방자구이라고 알려져 있다. 방자는 고을 원님 밑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하인을 일컫는 말. 또는 궁궐에 있는 궁녀의 시중을 드는 하녀를 가리키기도 한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의 하인으로 나오면서 방자가 사람 이름처럼 불리지만 정확하게는 관청의 직위 중 하나다.

방자가 급하게 구워 먹어서 방자구이라고 하는 것을 민간어원설이라 한다. 민간어원설은 학문적 근거보다는 민간에서 전설이나 속담에서 어원을 찾는 행위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여성들이 앞치마에 돌을 날랐다고 해서 행주치마라고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행주치마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쓰인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방자구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 표준어로 사용된 것은 방자고기이며, 신문기사에서도 방자고기로 2000년대 이전에 7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문헌상으로는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에도 방자구이가 나온다. 조선요리제법에 기록된 구이는 가리구이, 닭구이, 꿩구이, 염통구이, 생선구이, 제육구이, 우육구이, 북어구이, 방자구이로 총 9가지이다. 조선요리제법에 소개된 방자구이는 소의 연한 살코기를 재료로 하는 음식으로 연한 살코기를 얇게 저며서 칼로 다져 설탕을 치고 잘 주물러 기름과 후춧가루와 소금을 쳐 다시 잘 주물러 석쇠에 굽는 음식이다.

1943년에 발행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방자구이가 아닌 방자고기가 등장한다. 이 책에서도 연한 고기를 얇게 저며 씻지 말고 그냥 석쇠에 놓고 소금만 치고 굽는다고 서술돼 있다.

1923년 1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에는 서양요리 삡스테키(비프스테이크)와 비슷한 조선의 요리가 방자고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소금을 슬슬 뿌려 구워먹는 것을 방자고기라 하는 것으로 보아 소금구이와 같은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방자고기는 특정 부위가 아닌 구워먹는 방식을 뜻하는 것으로 지금의 삼겹살을 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983년 4월 4일 한국의 문화적 전통을 소개하는 기사에 돌과 돌을 괴어놓고 그 위에 석쇠를 얹은 다음 재어온 고기를 굽는 것이라고 방자구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는 이것을 몰라서 요즈음 사람들은 소금구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일본말을 직역한 말이라며 방자고기, 방자구이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등심을 구워 먹다 - 로스구이

방자구이에서 소금구이 또는 시오야끼에 이어 한국에 등장하는 고기를 구워 먹는 요리법으로는 로스구이가 있다. 이외에도 기사에서는 돼지고기구이, 제육구이 등이 등장하지만 양념에 재웠다가 굽는 방식으로 삼겹살과는 다르다.

새국어생활 1986년 가을호에 김주영 소설가가 투고한 ‘다시 쓰고 싶은 사라져 가는 우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쇠고기를 저미어 양념해 구운 것을 불고기나 주물럭으로 부르고 있는데 실은 <너비아니>란 고유한 우리말이 있다. 간혹 어떤 음식점에 가면 그것을 바로 써서 너비아니로 적은 것을 볼 때도 있으나 그것이 오히려 낯설어 보이니 탈이다. 양념하지 않고 그냥 구워서 소금이나 참기름에 찍어 먹는 것을 두고 로스구이라 부르고들 있지만 그 역시 <방자고기>란 우리말이 있다.

로스구이는 국어사전에 고기 따위를 불에 굽는 것. 또는 그렇게 만든 음식이라고 나와 있다. 어원으로는 영어로 굽는다는 뜻의 로스터(roast)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73년 언어 순화 차원에서 로스구이를 등심구이, 리꾸사꾸를 배냥, 리야까를 손수레, 마호병을 보온병, 미깡을 귤, 사리를 접시 등의 우리말로 언어 순화하자고 주장하는 기사가 있다. 이를 보면 1980년대까지는 로스구이와 등심구이가 혼용해서 쓰였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로스구이란 말을 자주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로스는 일본에서도 사용한다. 일본어 로스(ロース)는 등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서 로스 설명을 보면 어원을 roast(로스터)에서 전래한 단어이며, '로스터에 적합한 고기 부위'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구워 먹기 좋은 부위라는 뜻이며 일상적으로 등심을 뜻한다. 참고로 일본어로 로스는 등심, 히레는 안심이다. 돈가스집에서 로스까스는 등심까스, 히레까스는 안심으로 만든 걸 말한다. 돼지고기의 등심은 기름기가 적어 굽기에 나쁘지만, 마블링이 잘된 쇠고기 등심은 철판이나 숯불구이에 가장 적합하다.

1971년 12월에 연세대학교 식생활과 학생들이 조사한 직장인의 식사 현황에 의하면 저녁 식사는 1주일에 2~3회 외식한다가 남자 46.6% 여자 44.8%이고, 외식 메뉴로는 불백 41.5%, 함박 27.7%, 로스구이 34.6%를 선택했다. 불백은 불고기백반이고 함박은 함박스테이크이다.

이런 내용을 통해 볼 때 1970년대 초의 외식 메뉴는 불고기와 로스구이로 여전히 쇠고기 선호도가 높았다. 다만 불고기 정식은 1992년 조사에도 1위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로스구이는 30위 안에 없다. 대신 삼겹살의 8위에 올라 로스구이가 쇠고기에서 돼지고기 삼겹살로 교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프랜차이즈 유행을 타고 로스구이전문점이 잠시 생겨나기도 했다.

로스구이는 입맛에 따라 생등심에 소금 또는 후추를 뿌려 굽는 요리로 인기를 끌었지만 1970~1980년대에는 국내 쇠고기, 즉 한우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가 많아 대체할 육류가 필요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양념에 재운 고기를 선호했지만, 소금과 후추만 뿌려 굽는 간편한 로스구이도 제법 인기가 있었다. 1994년 로스구이전문점 관련 신문 칼럼을 보면 돌판에 양념하지 않는 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것이 로스구이라고 소개하면서 대다수 사람에게 익숙한 것이 주로 양념한 갈비나 불고기였지만 최근 부위별로 구워 먹는 쇠고기 맛을 본 사람들은 잊지 않고 로스구이집을 찾는다고 했다.

1980년대까지 한우는 일을 시키기 위해 키우는 역우에서 산업화로 농촌이 기계화되면서 역할이 달라졌다. 한우는 역우에서 고기를 생산하는 육우로 그 사명이 바뀌었고 1990년대 이후 고급화를 위한 마블링이 대중화되면서 고열량의 비싼 곡물 사료를 사용하게 돼 생산비가 상승하고 한우의 가격도 높아졌다.

1970년대 국내 양돈 산업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늘어나는 국내의 육류소비를 충족시키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였고 일본 돈육 수출까지 호황을 맞았다. 일본으로 돼지고기를 대량으로 수출하기 위해 양돈 산업단지를 통해 규모화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품질을 위해 기존의 구정물이나 군대 짬밥 또는 식당에서 음식 찌꺼기를 얻어다 키우는 것이 아닌 배합사료를 통해 규격화된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규모화 된 전업농들이 곡물 사료와 거세 등 과학적인 사육기법으로 돼지를 사육하면서 고질적인 수퇘지 냄새(웅취)와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이취) 등의 문제가 개선되면서 냄새로 인해 강한 양념으로 볶아먹거나 삶아 먹던 돼지고기도 로스구이가 가능해졌고 삼겹살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고도의 압축 성장을 하던 산업화시대, 경제성장에 따른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음식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1970~1980년대 빈약하기 짝이 없던 외식 메뉴에서 삼겹살은 손쉬운 창업이 가능했다. 비싼 투자비가 들어가는 한우 로스구이집이 아니라 드럼통으로 만든 탁자와 부루스타에 김치랑 파무침, 된장찌개만 할 줄 알면 특별한 요리기술이 없어도 삼겹살집을 여는 것이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명예퇴직하거나 실직을 한 회사원들이 대거 삼겹살집을 차리기도 했다.

1970년대 양돈산업은 대일 수출 시장을 보고 확대 일로에 있었다. 아니 내심 국내 수요의 확대도 전망하는 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제의 빠른 성장은 육식소비의 확대로 이어지만 전통적으로 좋아하던 쇠고기의 소비에 불이 붙었다. 전통적인 불고기도 인기가 있었지만 다소 생소한 로스구이의 인기도 매우 높았다.

핖자는 로스구이를 방자구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고기요리라고는 일반적인 생각보다는 미군정시절 미군의 스테이크 문화와 연결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해방이후 미군이 이땅에 진주하고 그들의 스테이크 문화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고기를 소금과 후추만을 쳐서 구워 먹는 건 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모습이었다. 옛날 요리책들을 보면 쇠고기는 연화 즉 부드럽게 하지 위한 요리법이 거의 다이고 돼지고기는 냄새를 잡는 요리법에 관한 기술이 거의 다다. 그런 우리 요리문화에 소금과 후추만으로 쇠고기를 요리해서 고기의 고유의 풍미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요리는 신기한 요리였을 거다.

따라 하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고깃소가 없었다. 일소를 두툼한 스테이크형으로 구워 먹는건 즐겨서 어려운 일이다. 그래 고안한 방식이 엷게 썰어서 살짝 구워 먹는 로스구이였을거다.

육절기가 도입된 것이 1960년대라고 하는데 육절기 도입이전에 어떻게 고기를 엷게 썰었을까 하는 건 의문이다. 아니 어쩜 을지면옥이나 필동면옥 수육의 칼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971년 연세대생들의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지만 불고기, 로스구이는 인기 외식메뉴였다.

여기서 불고기, 로스구이는 다 한우고기를 말하는 거다.

이렇게 1970년대 너무 쇠고기의 인기가 높으니 수요가 늘었고 공급은 원활하지 못했다. 그래서 쇠고기 파동이 1976년에 일어난다. 그 여파는 1970년대 후반 육류 시장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 온다. 고기맛은 알았는데 한우값이 너무 비싸서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당시 대일 수출로 전업화 되어 냄새를 그래도 좀 잡은 돼지고기들이 등장하고 간혹 물가 조절기간 방출되었던 냉동육을 로스구이형태로 먹어본 사람들이 쇠고기 등심 대신 돼지고기 삼겹살 로스구이로 소비 대체가 일어난 것이다. 여기도 두가지 의문점이 있다. 하나는 로스구이가 등심만을 구워 먹을까? 또 하나는 분명 당시 정육 전부위가 수출되어 물가조절용 냉동육이 방출되면 돼지고기 전부위가 시장에 유통되었을 건데 왜 유독 삼겹살 로스구이만 우후죽순처럼 유행할 일까 하는 거다. 필자는 1970년대 말경에서 1980년대 수출을 목적으로 전업농으로 사육되던 돼지 농장들의 품종이 급격히 3원 교잡종으로 전환되었고 이 삼원교잡종 돼지들은 성적은 좋았으나 우리가 키워왔던 돼지들에 비해 맛이 연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름끼가 많은 삼겹살의 기름맛으로 고기를 먹는 것이 새로운 맛이여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즉 1970년대중반까지도 우리는 고기의 감칠맛으로 고기를 먹었다. 지방은 그 감칠맛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3원 교잡종은 좀 맛이 연해서 지방맛이 고기맛의 주도가 되어 삼겹살 로스구이가 지난 40년 우리 육식소비 문화의 중심을 형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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