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오래된 미래다.-한우 음식 변천사


농민신문 2021-1-18 한우 기사

한우, 한마리 소에서 100가지 맛 우리 민족의 든든한 식재료

[우리소 맛있소] 시대별 ‘한우 음식’ 변천사


흰 소의 해가 밝았다. 소는 수천년 동안 우리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삼국시대에는 ‘농경의 신’으로 신격화되기도 했고, 농사를 지을 때는 든든한 일꾼으로 장정 몇보다 나았다. 한때는 소를 팔아서 대학을 보내는 일이 허다했으며, 그래서 대학을 ‘상아탑’이 아닌 ‘우골탑’으로 부르기도 했다.



음식으로서도 소는 특별했다. 소를 두고 ‘일두백미(一頭百味)’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한마리 소에서 100가지 맛이 난다는 뜻인데,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영국·프랑스는 소를 35부위로 나눠 먹는데, 한국은 120부위로 먹는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소는 ‘하품 빼고는 버릴 게 없는’ 귀한 동물이다.




고구려인 제사 음식으로 ‘맥적’ 만들어 왕·귀족 연회 때 먹으며 잔치음식 등극


조선시대 계급 막론 ‘한우 사랑’ 빠져 강력한 우금령 반포에 몰래 즐기기도


일제강점기 때 양념갈비·냉면 꿀 조합 1960년대 불고기…이후엔 구이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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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고분인 안악3호분 벽에 그려진 외양간.





◆삼국시대 제사 음식 맥적=고구려 생활사를 알 수 있는 벽화고분인 안악3호분에는 외양간이 그려져 있다. 그만큼 소는 실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구려인들은 귀하게 키운 소로 ‘맥적’이라는 제사 음식을 만들었다. 쇠고기에 양념을 발라 통째로 굽는 요리인데, 이를 불고기의 시조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맥적은 처음에는 제사용으로만 쓰이다가 왕과 귀족이 연회에서 먹으면서 잔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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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난로회를 묘사한 단원 김홍도의 ‘설중난로도’.





◆조선시대 우금령 속 난로회=바야흐로 조선시대는 한우 식문화의 황금기였다. 고려 때 불교의 영향으로 쇠고기를 먹는 문화가 위축됐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계급을 막론하고 ‘한우 사랑’에 빠졌다. 재밌는 건 조선시대 내내 필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를 잡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우금령’이 반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쪽에선 쇠고기를 몰래 즐기면서 되레 먹지 않는 사람을 특이 식성으로 보고 놀리기까지 했다.



이때 양반들 사이에선 겨울 무렵 ‘난로회’를 여는 문화가 유행했다. <동국세시기>에선 화로에 둘러앉아 쇠고기를 기름·간장·달걀·파·마늘 등에 조리해 먹는 식도락 모임을 난로회라고 소개하고 있다. 김홍도의 그림 ‘설중난로도’에서도 양반과 기녀가 소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쇠고기를 굽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자타 공인 ‘한우 애호가’였던 정조 역시 신하들과 난로회를 즐겼다.



백성에겐 구이보다 부산물을 이용한 탕이나 국이 친숙했다. 그 시대 주막에선 못 끓여내는 쇠고기가 없었다. 살코기와 내장을 함께 넣어 만드는 고음·잡탕·육개장이 있었고, 내장으로 만드는 양탕이 있었다. 뼈가 붙은 고기로는 족탕·꼬리탕을 만들었다. 그중 한양의 ‘무교탕반’은 당시 제일가는 국밥집으로, 요즘 ‘배달의 민족’으로 시켜 먹듯 양반들이 하인을 불러 사오라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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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한우의 좋은 부위를 공출하고 남은 부산물로 만든 것이 유래가 된 나주곰탕. 사진=연합뉴스





◆일제강점기 양념갈비와 냉면의 조화=양념갈비와 냉면의 ‘꿀 조합’은 사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해온 것이다. 양념갈비는 처음에 선술집 술안주로 등장했다가 음식점 정식 메뉴로 자리 잡았는데, 1930년대 평양냉면집에서 갈비구이와 냉면을 함께 팔면서 인기를 끌었다.



설렁탕과 곰탕도 서민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음식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사실주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아픈 아내가 ‘설렁탕 한그릇 먹는 게 소원’이라고 한 말이 꾸며낸 얘기는 아닌 셈이다. 이때는 일제가 한우의 좋은 부위를 공출해 통조림으로 만들어 서민들은 남은 부산물밖에 먹을 수 없었다. 나주가 곰탕으로 유명해진 계기도 그곳에 큰 통조림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윤은숙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설렁탕과 곰탕은 부산물을 끓여 만들 수 있으면서도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사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줬던 최고의 요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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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대표적 외식이었던 육수 부은 불고기. 게티이미지뱅크





◆등·안·채 구이 전성시대=쇠고기 소비문화가 지금처럼 등심·안심·채끝을 구워 먹는 것으로 바뀐 건 얼마 되지 않았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외식은 육수를 부어 자작하게 끓인 불고기였는데, 소득이 올라가면서 양념고기보다는 고급육을 그대로 구워 먹게 된 것이다. 또 농가들의 기술력 향상으로 한우의 품질이 좋아진 것도 식문화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힘입어 국민 1인당 연간 한우 소비량은 2010년 3.1㎏에서 2019년 4.1㎏으로 크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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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채로운 한우 조리법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볏짚으로 40일 훈연한 한우. 사진제공=모퉁이우RIPE





요즘은 단순히 고기를 구워 먹는 데서 한단계 더 나아가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먹는 법’이 유행하고 있다. 한우고기를 코스로 즐기는 일명 ‘한우 오마카세’가 대표적이다. 또 최근 캠핑 붐에 따라 고기를 돌도끼 모양으로 큼지막하게 정형한 뒤 숯불에 굽는 ‘한우 토마호크’ 등 여러 부위를 다양하게 조리하는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우 오마카세로 유명한 ‘모퉁이우RIPE’의 김호윤 셰프는 “기존의 한우 구이는 좋은 원물을 찾는 데만 주력했다면 점점 조리법이 진화해 다양하게 한우고기를 즐기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맛만 아니라 담음새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참고=<한우와 한반도 육식문화의 변천사 및 한민족의 정체성(성경일 강원대학교 교수 외,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김동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박준하, 사진=김도웅 기자


농민신문의 한우 관련 기사


[우리소 맛있소] 시대별 ‘한우 음식’ 변천사


나름 요약 정리를 열심히 한 기사다.


그런데 이 기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첫째 맥적이 불고기 원류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이견을 가진다.


황교익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맥적이 고구려의 고기구이라는 설명은 틀렸다. 맥적이 고구려의 고기구이라는 주장은 최남선에 의한 것이고, 최남선은 동진시대의 기록인 <수신기>를 근거로 삼았다. <수신기>를 찾아보면, 맥적은 "적족의 음식"이라 쓰고 있다. 적족은 고구려와 관련 없다. 최남선이 왜곡했거나 실수한 것이다. 아래는 <수신기>의 원문과 번역문이다. (貊炙은 맥자로도 맥적으로도 읽는다.)


<수신기> 권칠, 181


[원문]


胡床, 貊槃, 翟之器也; 羌煮、貊炙, 翟之食也。自太始以來, 中國尙之。貴人富室, 必畜其器, 吉享嘉賓, 皆以爲先。戎、翟侵中國之前兆也。


[번역문]


호상(胡床), 맥반(貊槃)은 적족(翟族)이라는 민족이 쓰는 용기의 이름이고 강자(羌煮), 맥자(貊炙)는 적족이 먹는 음식의 이름이다. 그런데 진무제 태시 연간부터 중원지구에는 이런 도구와 음식이 유행되었다. 귀족들과 부자들의 집에는 모두 그런 용기들을 갖추어 놓고 희사 때 귀빈들이 오면 우선 그런 용기와 음식을 상 위에 내놓는다. 이것은 서융(西戎)과 북적(北翟)이 중원지역을 침범할 징조를 미리 보인 것이다.


(<수신기>, 중국 연변인민출판사, 2007년 발췌)


* <수신기> 원문 공개와 최남선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 10년도 넘었다. 내 책에도 썼다. 이를 뒤집어서 다시 맥적이 고구려의 고기구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 어떤 문헌도 없다. 그러니 우리 음식문화에서 맥적은 빼내서 버려야 한다. 최남선의 왜곡 혹은 실수를 답습하지 말라.




황교익 페이스북







맥적이 어떤 음식인지 알 수 있는 문헌이 있다. 한나라에서 3세기에 발간한 사전인 <석명>(釋名)에 맥적이 나온다.


貊炙, 全體炙之, 各自以刀割出於胡貊之爲也


"맥적은 통으로 구워, 각자의 칼로 저며 먹는다. 호맥(胡貊)의 방식에서 나왔다."


유라시아 대륙의 유목민이 이런 식으로 고기를 구워 먹었으며 이 음식 전통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아래 영상은 크로아티아의 통구이이다. 이런 걸 맥적이라 불러야 한다. 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을 하여 굽는 한국 불고기와 통구이인 맥적은 거리가 아주 먼 음식이다.




황교익 페이스북






맥적에 대한 논쟁을 가장 학술적으로 잘 정리한 건 박유미 박사의 책들과 논문이다. 박유미의 맥적의 요리법과 연원 국문 초록만 간단히 살펴 보면




맥적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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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맥적과 불고기와의 관계를 아니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고구려 음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가 확실히 결론 내리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다.


나 역시 맥적의 문제는 한민족의 범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 양념된 고기를 굽는다." 양념된 고기를 건식 조리법으로 요리했다는 점에서 불고기와 연관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맥적이 소고기 요리가 아니였을 수도 있다.


지금은 우리가 고기하면 소고기라고 생각하지만 고려시대 몽골의 관심이전까지 소고기를 먹을 기회도 소고기에 자체의 인기도 지금만 못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불교 문화의 영향으로 고려시대에 육식을 멀리하다 몽골의 간섭기에 몽골의 영향으로 육식을 즐겼다는 너무나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사실과 다를 수 있다. 몽골의 영향으로 쇠고기 맛을 탐식하게 되고 이후 조선시대에 권력층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쇠고기 탐식 역사가 깊은 민족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일두백미, 120가지 부위를 찾아낸 쇠고기 탐식의 역사가 가장 긴 민족이다.


세계 쇠고기 역사를 살펴 보면 유럽은 낙농과 역축으로 이용하기 위해 소를 키웠지 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키운 역사는 산업혁명 이후 신대륙에서 소고기를 수입하고 4윤작법으로 휴경기에 도시의 노동자들의 늘어나는 육식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소를 사육하고 부터 였다.







음식으로서도 소는 특별했다. 소를 두고 ‘일두백미(一頭百味)’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한마리 소에서 100가지 맛이 난다는 뜻인데,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영국·프랑스는 소를 35부위로 나눠 먹는데, 한국은 120부위로 먹는다”고 감탄하기도 했다




농민신문






한우의 가치를 연구하는데 있어 과거 일두백미라고 표현했다. 120가지의 부위가 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지 백가지 맛이 어떤 맛인지


120부위는 어떤 명칭들이 있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없다.


아마 이건 정리하지 않은 면 영원히 복원해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동국세시기>에선 화로에 둘러앉아 쇠고기를 기름·간장·달걀·파·마늘 등에 조리해 먹는 식도락 모임을 난로회라고 소개하고 있다"


난로회의 음식이 어떤 모습인지 재현해 봐야 할 과제다.


"일제가 한우의 좋은 부위를 공출해 통조림으로 만들어 서민들은 남은 부산물밖에 먹을 수 없었다. 나주가 곰탕으로 유명해진 계기도 그곳에 큰 통조림 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150만두의 소가 일본으로 이출되어 갔다.


소고기 통조림 공장이 나주에 있었다는 건 확인된 사실이지만 서울에 통조림 공장이 있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그럼 서울의 설렁탕의 유행에 대해서 통조림 공장설을 증명할 수가 없다.


일제는 기록에 충실했으므로 소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생산한 통조림의 정확한 생산 수량과 레시피 정도가 남아 있어야 한다. 이 자료 역시 난 여런 찾아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지금은 상식적으로 일제가 150만두의 조선우를 일본으로 가져 간 것이 부족한 쇠고기를 얻기 위해서 라고 생각하겠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이 조선우를 부지런히 이출해 갔던 이유는 당시 부족한 농촌의 노동력을 순하고 능력이 뛰어난 한우로 대체하기 위해서 였다.


통조림 공장설에 대한 구체적인 문헌이나 근거 자료를 찾아야 한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외식은 육수를 부어 자작하게 끓인 불고기였는데,"


육수가 자작한 서울식 불고기는 1950년경부터 유행했다. 지금은 서울식 불고기를 요리하기 위해서는 육수를 부워야 하지만 1980년대 이전까지 서울에서 유통되는 소의 90%정도가 물먹인 소라 이 물먹인 소는 구울 때 육수가 저절로 빠져 나왔다. 당시는 생체 400kg 내외의 지금보다 작은 한우에 물을 잘 먹이는 사람은 60리터까지 물을 먹였다고 한다.


서울식 육수 불고기의 탄생과 요리법


맥적이 설하멱이 되고 너비아니가 되고 다시 불고기가 되고 이 불고기 언양식, 광양식, 서울식, 뚝불등 다양한 불고기가 되면서 분명 일제 강점기 불고기까지는 불고기는 건식 요리법에 의한 고기요리였는데 지금에 와서 전골식 습식요리도 불고기, 광양식, 언양식 건식 요리법도 불고기라고 이름하는지 불고기의 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다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소고기 소비문화사를 정리해야 할 때다.


이 기사에서 참조한 한우와 한반도 육식문화의 변천사 및 한민족의 정체성(성경일 강원대학교 교수 외,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김동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나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된 책들이지만 한우와 한반도 육식문화의 변천사 및 한민족의 정체성(성경일 강원대학교 교수 외,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는 근현대 한우의 명칭의 탄생에 대한 의문점을 풀지 못 했다. 역우가 육우로 전환되는 역동의 한우 현대사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무엇보다 몽골의 간섭으로 육식이 성행했다는 식민사관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세계 최고의 소고기 탐식문화를 지닌 우리의 소고기 소비에 대해서 더 깊이 연구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평양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평양우 복원의 필요성을 이야기 해야 했다.


조선우가 일본 소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일본은 161종으 소가 있다.


중국은 87종의 소가 있다.


프랑스도 23종의 소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단 3~4종의 소뿐이다. (한우, 칡소, 흑소, 백우)


왜? 우리의 다양했던 소의 품종이 멸종되었을까? 그 수난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제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김동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김동진 박사


조선 생태 환경사등 새로운 시각의 훌륭한 연구를 해 주셨지만 축산학의 기초 지식이 없어서 한우가 오키나와 물소와 조선우의 교잡이라고 책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는 한우와 오키나와 물소는 이종교배라 태어나도 말과 당나귀의 이종교배 노새나, 호랑이와 사자의 이종교배 라이언처럼 후대를 이어가지 못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도 역사학을 전공해서 조선시대의 소중한 문헌들에서 소고기 이야기들을 찾아 내어 준것은 훌륭한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우 역사 연구는 소비사, 산업사등 방대한 연구다.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된 많은 자료가 일본 국회도서관에 있다. 러시아로 수출이 되었으니 러시아에도 조선우에 대한 자료가 있다. 미국에도 상당한 자료가 있을거다. 이 모든 자료들을 다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석해서 한우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역우였고 동시에 육우였다는 것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할 때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다.


미래를 만들려면 과거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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