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제5의 맛을 만들어내는 숙성
1.4 제5의 맛을 만들어내는 숙성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인들의 육류 소비 트렌드는 지방의 맛에 맞춰져 있었다. 소고기는 마블링으로 불리는 등심의 근내 지방에, 돼지고기는 삼겹살의 근육 사이에 존재하는 근간지방에 맛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가 좋은 고기로 비싸게 팔렸고, 돼지고기는 지방함량이 가장 많은 삼겹살이 국민 고기로 인기가 높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역사적으로 육류의 섭취가 부족했던 민족이라서, 그래서 동물성 지방의 섭취가 부족했던 민족이라서 그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전쟁 이후 압축성장의 산업화 추진 과정에서 빨리빨리 문화가 육류 소비에까지 영향을 미쳐 과거 삶거나 끓여 먹는 습식 조리의 육류 소비 방식이 급격히 건식조리법인 직화 구이로 전환되면서 지방이 많은 부위가 건식조리법인 직화구이로 요리시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삶거나 끓이는 요리는 40분 이상의 요리 시간이 필요한 반면 건식조리법인 로스구이, 직화구이는 주문과 함께 바로 먹을 수 있는 한국형 패스트푸드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반세기 동안 급변하였다. 짧은 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리나라는 이제 더 이상 육류섭취가 부족한 국가도 아니고 동물성 지방의 섭취 부족은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아니 오히려 저급 영양이 넘쳐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지방의 맛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던 육류 소비 트렌드가 육단백질의 감칠맛으로 옮겨져 가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류는 야생동물을 가축화시켜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할 때는 살코기에 있는 육단백질 맛인 감칠맛으로 고기를 먹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고기를 지방의 맛으로 먹기 시작한 건 불과 100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 특히 고기를 삶거나 끓여서 탕으로 먹었던 한국인들에게는 육단백질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이 매우 중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는 이 감칠맛이란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일까? 감칠맛은 ‘우마미’라고도 불리며 학계에서는 '제5의 맛'으로 통용된다. 이 감칠맛은 1908년 일본 도쿄제국대학의 이케다 기쿠나에 박사가 처음 발견하였다. 그는 자신이 늘 먹던 다시마 국물(말린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로 만든 국물)의 향미들을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수수께끼의 맛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다시마 11킬로그램을 구입해 자르고 끓이고 증류하여 결국 그 수수께끼의 맛을 내는 물질인 글루탐산염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케다 박사는 일본의 한 학술지에 자신이 발견한 이 수수께끼의 맛을 '우마미(旨味)'라고 명명하였고, 이 맛을 유발하는 결정체가 글루탐산이라고 발표하였다. 단백질에 결합된 글루탐산은 아무 맛도 나지 않지만, 글루탐산 분자는 요리나 발효에 의해 단백질이 분해될 때면 L-글루타메이트(L-glutamate)라는 혀로 맛볼 수 있는 아미노산이 된다.
이후 이케다 박사는 글루타메이트를 안정한 분자로 묶어두지 않고는 혀가 그 맛을 즐길 수 없음을 알고 염을 붙여 안정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백색 가루가 바로 화학명 글루탐산나트륨으로 줄여서 MSG(monosodium glutamate)라고 부른다. 이 백색의 가루는 달지도 쓰지도 않은 밍밍한 맛을 지녔지만, 다른 맛물질과 결합하면 그 맛을 몇 배로 증폭시켜 맛있게 만들었다. 우마미는 일본어로 '맛이 좋은 느낌'이라는 뜻이다. 이케다 박사는 인간의 4대 기본 미각을 어떤 방식으로 섞어도 우마미의 맛을 낼 수 없다는 이유로 이것을 또 다른 일차적 기본 미각이라고 주장했다.
이케다 박사의 연구는 맛의 생리학에서 획기적인 발견이었지만, 긴 시간 동안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1985년 우마미 국제 심포지엄 이후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며 국제 공용어 우마미(Umami)로 지정되게 되었다. 그리고 1997년 미국 마이애미대학의 니루파 차우드하리와 스티븐 로퍼 박사에 의해 동물 혀의 특정 미각 돌기가 유독 MSG에 대해서만 반응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제5의 미각 '우마미'로 다시 명명하게 됨으로써 감칠맛의 우마미가 공식적인 독립적인 맛으로 세계에 인정되게 되었다.
감칠맛은 기본적인 맛으로서는 생물학적으로 단맛과 비슷하여 뇌의 쾌락 중추로 곧장 연결되는 통로를 제공한다. 우마미는 고기가 맛있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잘만 요리하면, 육류에 들어있는 글루타메이트는 분해되어 우리 혀가 맛으로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리거나 절인 고기나 치즈에도 적용된다. 돼지 다리로 프로슈토 햄을 만들 때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장 많이 증가하는 아미노산은 다름 아닌 글루타메이트이다. 물론 고기를 숙성하면, 특히 건조숙성하면 글루타메이트의 함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일반적으로 짠맛, 신맛, 단맛, 쓴맛의 4대 기본 맛은 감각의 맛이라고 하는 반면 제5의 맛인 감칠맛은 감성의 맛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감칠맛에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주요 식품 원료에서 감칠맛을 찾아왔다. 한국은 콩의 주산지라 콩이 풍부해서 콩으로 간장, 된장을 만들어 감칠맛을 일상화하였다. 태국 같은 동남아에서는 생선이 풍부해 생선을 이용한 젓갈이나 피시소스를 만들어 감칠맛을 일상화하였다. 그리고 유럽은 초원이 많아 가축이 풍부해서 가축을 이용 치즈나 생햄 그리고 숙성육을 통해 감칠맛을 즐겼다.
감칠맛은 모유에도 포함되어 있는 성분이다. 인류는 태어나자마자 이 감칠맛을 본능적으로 혀와 뇌에 기억해두었고, 엄마의 젖을 떠나 성인이 되어서도 감칠맛을 감성적으로 찾아다녔다. 따라서 어쩌면 오늘날 현대인들이 감칠맛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숙성육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숙성육은 감칠맛을 책임지는 글루탐산 이외에도 아스파탐산과 핵산관련물질들도 대량으로 함유하고 있기에, 지방의 맛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이라도 숙성육의 맛에 금방 반할 수밖에 없다. 숙성육의 감칠맛, 이것이 고기 소비 트렌드를 변화시키는 핵심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