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숙성육이 맛있는 과학적 이유
어떤 고기가 맛있고 좋은 고기인가? 라는 질문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고기의 맛과 품질은 객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주관적으로 결정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전라도 사람이 맛있고 좋다고 하는 사후강직 전 생고기를 서울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고, 마블링이 많아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버리는 것 같은 고기보다 약간 씹히는 감이 있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숙성육도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다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정상적인 입맛을 가진 사람이라면 신선육보다 숙성육의 맛을 더 좋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맛있는 고기는 크게 3가지 조건의 합으로 결정된다. 첫 번째는 혀끝에서 느껴지는 미각으로 소위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 등이다. 두 번째는 코로 느껴지는 냄새로 이것은 고기의 풍미를 크게 좌우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고기를 씹을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저작감으로 연도나 조직감 등이 중요한 요인이다. 맛있는 고기는 이 3가지 항목, 미각, 후각, 저작감이 모두 좋아야 한다. 만약 이 3가지 항목 중 하나라도 이상하면 그 고기는 결코 맛있는 고기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감칠맛이 풍부하고 냄새도 좋지만 고기가 질기면 맛있는 고기라고 할 수 없다. 또 고기가 연하고 혀끝으로 느껴지는 맛도 좋지만, 냄새가 이상하다면 그 고기도 절대 맛있는 고기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질기고 감칠맛이 부족한 고기도 잘 숙성시키면 고기가 연해지고 감칠맛이 풍부해져 맛있는 고기가 된다. 이게 숙성의 매력이고 부가가치 창출의 결정적 요인인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과학적 이유가 있다.
고기는 축종에 따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의 맛이 각각 다르며 그 이유는 역시 근섬유 조성과 지방을 포함한 구성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적색근섬유와 백색근섬유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화학적인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그 조성비에 따라 육색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함량과 조성 및 맛과 육질도 달라진다. 또 적색육과 백색육은 사후 대사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취급방법이 달라야 하며, 당연히 숙성의 방법도 달라야 한다. 일반적으로 숙성은 적색육의 연도를 좋게 하기 위해 개발되고 이용되었지만 근래에는 연도의 증진보다는 맛과 풍미를 증진하기 위해 이용되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연도가 소고기보다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돼지고기도 숙성육으로 이용하는 추세가 많아지고 있다.
숙성육의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육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아미노산 및 저분자 펩타이드(peptide)들과 지방에서 유래하는 지방취를 포함한 수백 가지의 휘발성 물질들이다. 인간은 수용성 물질이 미각기를 자극하고 기체 상태의 물질이 후각기를 자극하면서 맛을 느낀다. 입안의 혀에서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및 감칠맛을 느끼며, 맛이 좋다는 것은 뇌에서 느낀다. 고기에 존재하는 당, 아미노산, 핵산 등은 중요한 영양성분일 뿐만 아니라 미각을 좋게 하지만, 염이나 산은 그 농도가 심해지면 유해성분이 되고 미각을 나쁘게 한다. 고기를 숙성하면 감칠맛을 높이는 아미노산이나 핵산 물질들이 많아지고, 이러한 맛 물질들이 혀를 통해 맛세포막에 흡착하면, 맛세포에 전위 변화가 발생하고, 이 전기적 자극이 대뇌에 전해져 맛의 감지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고기 맛에 대한 감수성은 나이, 성, 민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노인은 맛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고기를 숙성하면 pH가 높아지고 맛물질의 농도가 높아져 맛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열처리를 안 한 신선육을 씹으면 단지 피의 맛과 같은 맛만을 느낀다. 그러나 고기를 가열하면 독특한 풍미가 형성되는데, 이는 가열 중에 수백 가지의 휘발성 물질들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고기의 풍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비교적 적은 수의 물질들로, 주로 수용성 저분자 물질인 아미노산, 펩타이드, 핵산물질, 환원당, 비타민 등과 지방산들이다. 풍미는 실제로 소비자가 고기를 조리할 때 생성되며 조리방법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그 이유는 조리방법에 따라 가열온도와 시간이 다르고, 가열방법도 습열, 건열, 전자레인지 등 여러 종류가 존재하며 각 가열방법에 따라 생성되는 풍미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신선육과 숙성육의 가열에 따른 풍미 물질의 생성도 확연하게 다르다,
고기를 가열하면 생성되는 풍미는 기본적으로 아미노산과 펩타이드, 그리고 기타 탄수화물들의 화합물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축종별 고기의 종류에 따라 아미노산과 환원당에서 나오는 가열 향기는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숙성육의 경우는 고기의 종류와 관계없이 신선육과 확연히 다른 가열취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고기의 숙성 중에는 단백질분해효소인 칼파인에 의해 아미노산과 펩타이드가 정량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기인하여 풍미가 좋아진다. 특히 숙성 중 육단백질이 분해되어 그 함량이 증가하는 아미노산 중 알라닌(alanine), 글라이신(glycine), 아스파라긴(asparagine)산, 세린(serine), 글루타민(glutamine)산 등은 단맛과 정미를 증진시킨다. 또 ATP의 분해 산물인 IMP나 이노신(inosine)산도 풍미 향상에 기여하는데, IMP가 축적된 고기는 감칠맛이 크게 좋아진다. ATP가 IMP로 분해되는 속도는 백색근섬유가 많은 고기, 즉 닭고기가 돼지고기보다, 또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빠르다. 그런데 IMP는 계속 분해되어 하이폭산신(hypoxanthine)이 되고 쓴맛을 나타내기 때문에 백색근섬유 비율이 높은 고기일수록 숙성의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 것은 좋지 않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의 풍미가 다른 기본적인 이유는 단백질보다는 지방의 함량과 지방산조성의 차이에 기인한다. 축종별 고기의 지방함량 및 지방산조성의 차이는 기본적으로는 근섬유 조성이 다른 것에 기인하지만, 가축이 섭취하는 사료에 의해서도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소고기가 닭고기보다 지방함량이 많고 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은 이유는 적색근섬유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색근섬유의 비율이 높고 또 가축이 섭취한 사료의 영향으로 고기가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아지면, 장시간 보관을 요하는 숙성기간 동안 지방의 산패가 빠르게 진행되어 역겨운 산패취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고기를 공기 중에 노출하여 숙성하는 건조숙성의 경우는 적색근섬유와 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은 고기가 백색근섬유와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높은 고기보다 맛있는 풍미 형성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건조숙성의 경우, 포화지방산의 비율이 높은 고기는 숙성기간이 길어지면서 지방산화에 따라 견과류 향이나 치즈 향이 나는 화합물들이 생성되지만, 불포화지방산은 산화되면서 불쾌한 산패취만 생성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소고기는 90일 건조숙성을 하지만 돼지고기는 그렇게 길게 건조숙성하지 않는다.
숙성은 고기의 미각이나 풍미뿐만 아니라 저작감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고기는 질기지 않아야 하지만 씹힘성이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연해도 좋지 않다. 따라서 고기를 이루고 있는 근육조직의 상태에 따라 숙성의 방법과 기간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고기의 연도는 근육조직의 구조와 구성비에 따라 다르며, 또 사후 근원섬유단백질의 생화학적 변화에 의해서도 크게 차이가 나타난다. 고기는 근원섬유가 모여 근섬유를 이루고, 다시 근섬유가 다발로 모여 형성되기 때문에, 고기의 연도는 가열육을 입안에 넣고 저작할 때 고기 조각의 크기나 근섬유의 절단되는 방향에 따라 연도가 결정된다. 즉, 고기의 연도는 기본적으로 근원섬유와 근섬유의 굵기, 근속을 구성하는 근섬유 다발의 수, 또는 길이 등에 의해 차이가 나며, 일반적으로 근섬유가 굵고, 수가 많으면 질기고, 길이가 짧을수록 고기는 연해진다. 또 콜라젠이나 엘라스틴 등의 결체조직단백질의 함량도 연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숙성 중 단백질분해효소에 의한 연도의 증진에 관한 과학적 설명은 앞에서 충분히 설명한 바와 같다.
한편, 고기의 다즙성은 고기를 저작할 때 방출되는 육즙의 양과 고기를 계속 씹을 때 유리되어 나오는 지방의 양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다즙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분함량과 지방함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기를 씹는 동안 느끼는 다즙성은 처음에는 육즙에 기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리되어 나오는 지방이 타액의 분비를 자극하여 입안에 지속적인 물기를 느끼게 하므로, 고기의 지방함량이 수분함량보다 더 다즙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기를 숙성하면, 특히 건조숙성을 하면 고기의 pH가 높아져 보수력이 좋아지기 때문에 다즙성도 좋아진다. 또한 고기의 포화지방산인 팔미트산, 스테아르산, 미리스트산의 비율이 증가하여 다즙성을 좋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숙성육은 신선육에 비해 미각, 후각, 저작감을 좋게 만드는 맛관련 물질들이 많이 생성되고, 이러한 맛관련 물질들의 함량이나 성질은 숙성의 방식이나 기간에 따라 차이가 난다. 따라서 맛있는 숙성육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고기의 맛과 관련된 과학적 지식을 염두에 둔 올바른 숙성법을 현장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