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돈육 수출의 역사 3

2.2 생돈 수출창구 일원화

2.2 생돈 수출창구 일원화

당시의 홍콩 생돈 수출은 우리나라 수출산업 중에서 그 비중이 컸다. 생돈 수출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을 뿐 아니라 생돈 수출가격 상담에 있어서도 상호 덤핑 등 사례로 손실을 보게 된 일이 빈번하게 생겨났기 때문에 이를 규제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써 창구를 일원화하게 된 것이다. 1963년 8월 16일에 상공부는 무질서한 생돈 수출에서 오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1963년 3월에 설립된 한국 축산물 수출조합이 대일지역에 대하여는 수출조합이 담당하게 되는 동시에 수집을 농협이 담당하게 되어 1963년 9월 12일에 농협은 산하조합에 5,000두를 수집 인도하는 계약을 맺고 4,255두를 수집 인도하였다. 이리하여 대일 수출에는 농협이 그리고 홍콩 수출에는 일반 수집상이 각각 수집을 담당하는 복잡한 유통체계를 가지게 되었다. 생돈 수출창구로 한국 생돈 수출조합(한국생돈진흥협회)을 만들어 이를 통해서만 수출하도록 조처를 하게 되었다.
축산물 수출조합과는 별도로 5개 기존업자가 주동이 된 한국 생돈 진흥협회의 창립총회가 25일 개최되었는데 이날 총회에서는 협회 정관을 결의한 다음 임원진을 다음과 같이 선출했다. 회장 대한 농산 부사장 박용학, 이사 대한 농산사장 최호, 이한 산업 사장 박도연, 천양 산업 사장 황상근, 남방무산 사장 곽동선, 감사 삼미사 사장 김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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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경향신문, “회장 박용학씨 선출 생돈 수출진흥협회 창립총회”, 1963




1965년 이래로 일시 중단되었던 대 홍콩 생돈 수출이 3년 만에 재개되었다. 1967년 8월 31일 국내 굴지의 양축가인 광성기업의 박연서 대표와 홍콩의 다그라스리 회사 사이에 우선 5만두의 수출규모로 하는 대홍콩 한국 수출 장기 계약을 체결하였다. 지난 61년 이래 중국의 가격 덤핑으로 중단상태에 놓여 있던 생돈 수출은 1967년 초부터 중국 내 정국혼란으로 중국산 돼지의 대홍콩 수출이 급감하여 홍콩시장 내의 돈육 품귀 상태를 빚어내어 그 부족분은 한국에서 수입하게 되었다. 당시 약 3년 만의 재개된 생돈 수출 장기계약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7년 우선 1500두를 시험 수출

단, 68년도 수출량은 총 5만두 내외

향후 합의에 따라 이 계약은 1969년 이후에도 계속 연장 가능

1967년 시험 수출량인 1500두에 대한 L/C를 일괄 개설하여 500두 단위로 3회에 걸쳐 부분 선적

1967년 12월 29일 관보에는 상공부 공고 제4,596호 생돈 및 냉동 돈육 대 홍콩 독점 수출을 광성기업 주식회사에 1967년 12월 26일부터 1968년 12월 25일까지 독점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1968년 초 광성기업이 추진하던 대홍콩 생돈 수출은 국제가격의 하락으로 큰 차질이 초래되게 되었다. 광성기업은 홍콩의 다그라스리사와 1968년 생돈 5만 두를 수출키로 계약을 체결하고 그중의 200두를 1968년 4월 24일 선적했으나 홍콩의 돈육 시세가 1967년 피클당 210HK달러에 비해 25달러이나 다시 떨어졌다. 광성기업은 1967년도에도 1500두를 시험 수출하였으나 국내가격이 국제가격보다 비싸 16백만원 적자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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