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돈육 수출의 역사 4

2.3.냉동 돈육(냉동 지육) 수출

2.3.냉동 돈육(냉동 지육) 수출

다음 수출품목은 냉동 돈육이었다. 냉동 돈육은 생돈을 도축한 후 두, 족, 내장, 꼬리 및 돈모를 제거한 다음 돈의 이분도체를 0~5도에서 예비 냉각한 돈육을 다시 –28~-30도의 냉동실에 대략 16~24시간을 급속 냉동한다. 이처럼 냉동이 끝난 냉동 지육은 –15 ~-18도의 냉동고에 넣어 보관하게 되는데 냉동된 고기는 몇 달가량 보존할 수 있으나 해동이 되면 쉽게 부패하게 된다. 1960년대 당시나 지금도 국내에서는 냉동 돈육 정확히 뼈를 포함하고 있는 냉동 지육은 유통되지 않는다. 따라서 생산과 수출이 직결된 수출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 12월 30일 상공부에서 개최된 무역위원회에서는 냉동 돈육의 제한조치에 대일본지역에 대한 수출은 한국냉동식육수출조합에 한해 허용하였다. 1962년 1월 19일 농림축산식품부는 62년도 가축 및 축산물 수출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에 의하면, 생돈 11만두, 4,400,000달러 돈육 만두분 400,000달러를 계획하였다. 냉동 돈육(냉동 지육)은 생돈 수출에서 오는 제반 애로- 수집, 수송, 검역 등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량의 돈모를 확보할 수 있다는 데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냉동 돈육 수출은 1962년 2월 4일 처음으로 남동산업주식회사에 의하여 홍콩에 처녀 수출하였는데 1년 6개월간 독점수출조치를 받고 1962년도에 31.4톤의 냉동 돈육을 수출하여 14,224달러의 외화를 획득하였다. 근당 수출가격은 465환이었다. 홍콩에서의 한국산 냉동 돈육은 상당히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냉동 돈육의 생산은 국내 소비를 목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므로 수집된 생돈의 도축한 다음 도축현장에서 검역을 실행하여 합격한 것에 한하여 급속 냉동과정을 거쳐 생산하였다. 1962년 말 전국의 돼지 사육두수는 1,690,353두로서 1961년 말보다 428천두가 증가하였다. 한편 1961년 중의 도축 두수는 237,809두이었고 1962년 249,203두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해외 시장을 개척 계속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면 수출량 증대를 위한 생산은 쉬우리라고 예측하였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도축장과 냉동 시설을 갖춘 현대적 육류전문가공공장을 건설 중이었다.


image02.png 그림1-2 냉동 돈육의 대홍콩 수출 공고 자료 : 관보 제3,091호, 1962.03.09

그 당시나 현재나 이러한 형태의 냉동 돈육(지육)은 국내수요가 전혀 없다. 본래 수출을 위해 신선 돈육(지육)을 냉동하는 것이므로 국내공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축장에서 도축한 돼지의 신선육은 우육과 같이 일반 정육 상을 통해 제공되고 있으며 일부 소시지, 햄 등의 제조를 위해서는 쓰이고 있으나 그 수요량은 소량에 불과하였다.

냉동 돈육(지육)은 1962년에 처음 홍콩에 수출을 실현하여 1962년 중 14,224달러(31.4톤)의 실적을 올렸으나 1962년도에 신용장이 내도 된 분이 81,950달러(173톤)지만 되는데 중국의 덤핑 수출로 말미암아 채산이 맞지 않아 수출을 실현시키지 못하였다. 1962년 3월 9일 상공부공고제 2787호에 냉동 돈육의 대 홍콩 수출은 공고일로부터 1년간 남동산업주식회사에 한하여 허용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한편 1963년에 들어와서도 55톤의 신용장을 받았으나 구상무역을 허가하지 않아 수출이 실현되지 못했다. 1963년 8월 16일 상공부는 돼지의 대일지역 수출은 한국 축산물 수출조합을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1963년 8월 21일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생돈 및 돼지고기 등 대일본 및 홍콩의 수출을 지속시키고 생산자의 가격을 보장하며 축산물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수출요령을 상공부에 회부 하였다. 특히 생돈 1만두와 냉동 돈육 5백톤의 대일 수출을 위한 수출요령을 다음과 같았다.

한국 축산물 수출조합이 일본상사와 계약을 체결하여 가격 및 수량을 결정한다.

대일지역의 수출할 돈은 농협이 집하한다.

축산물 수출조합의 조합원인 수출업자는 전기 2항의 농협 집하분에 한하여 현지 집하 장소에서 입찰 매수한다.

돈의 대일본 수출에서는 전기 3항에 의하여 매수한 분에 한하여 수출할 수 있다.

수출 가능 시장으로서 시선을 끌게 하는 일본과의 냉동수출 협상 내용을 보면 당시 일본 식육협의회와 한국 축산물 수출조합 간에 냉동육 200톤을 수입할 것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한일간의 돈육 수출입을 위해서 방한 중인 일본 가축 수출입협회 대표와 한국 축산물 수출조합 사이에 가격협의가 쉽지 않았다. 냉동 돈육(지육)가격은 톤당 715달러로(F.O.B) 홍콩 수출가격 410달러(C&F)보다 유리한 가격조건으로서 차후 본격적인 수출을 위한 좋은 현상으로 보겠다.

1963년 가을 부산지역에 콜레라가 발생하였다. 이미 냉동 돈육 200톤은 생산이 완료되고 생돈 600두의 돼지도 이미 부산지역에 집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1963년 10월 1일 일본 농림성은 한국에서의 콜레라 감염위험이 없어지고 일반 위생상태가 우려되지 않을 때까지 한국으로부터의 생육수입을 금지한다고 결정하였다. 이로써 돼지고기 200톤과 생돈 600두마리로 예정되었던 한국 생육의 첫 일본 대일 수출은 실현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1963년 상반기 중 냉동 돈육의 수출실적인 23.7톤에 9,728달러로서 계속 수출량이 증대되었다. 냉동 돈육의 수출과정을 보면 주 수집지역은 경남, 전남 일대이며 냉동 시설을 갖춘 부산 시립도축장과 목포에 소재하는 1개소의 도축장에서 도축하여 냉동과정을 거쳐 냉장고에 입고한 후 검역관 입회하에 검역과 포장을 완료하고 통관 및 선적하였다.
1968년 농림축산식품부는 생돈으로 수출해 온 돼지 수출방법으로 앞으로는 지육(냉동 돈육)으로만 수출하기로 하고 제1차 120톤(2400마리 상당)의 냉동 돈육(돈지육)을 1968년 8월 중 일본에 수출하도록 허가했다.

수출가격은 톤당 CIF 1094달러였다. 이 수출계약은 일본의 복강 식육 상사와 광성기업 간에 체결되었다. 이러한 정부의 계획은 국내 시세와 국제시세 간의 현격한 가격 차로 어렵게 된다. 1968년 8월 1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의하면, 국내 광성기업 측은 톤당 수출가격을 1060달러 선(CIF)으로 제시한 데 반해 일본의 구매선은 국제시세인 800달러 선을 제시함으로써 260달러라는 엄청난 가격 차이를 보여 수출이 어렵게 된다. 한편 1968년 농림축산식품부는 제주도 이시돌 목장에서 냉동 돈육 15만톤 대일 수출 신청을 추천했다. 톤당 수출가격은 톤당 1030달러 CIF이며 수출 대행상사는 국제약품 상사였다.

중요한 해외 시장의 냉동 돈육 수요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홍콩은 1961년도 연간 총수입량은 15,343천 파운드에 홍콩달러로 20,806천달러이었으며 1962년도에는 총 9,837천 파운드에 12,603천 홍콩달러의 냉동 돈육을 수입하였다. 1962년도 중 총수입량의 73%는 중국에서 수입하였으면 다음이 덴마크이었으며 다음으로는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호주, 미국, 서독, 남아공, 네덜란드, 영국의 순이었다. 일본의 1961년도 냉동 돈육수입량은 4천 달러 (157,482kg)로서 주수입대상국은 미국과 오키나와였고 다음으로 호주, 덴마크, 뉴질랜드 등에서 수입하였다. 1962년도에는 오키나와에서 1,594kg만 수입하였다.

1962년도 냉동 돈육 수출 시 문제점을 살펴보면 첫째, 수출원가와 출혈 수출문제 - 일시 생돈의 해외수요 증대와 사료 및 나이론실과의 구상무역의 허용으로 국내 생돈 수집가격이 급등하여 냉동 돼지고기 수출원가 높아 손실을 보게 되었다. 이에 겹쳐 중국의 정치적인 덤핑수출이 출혈수출을 증가시켰다. 따라서 출혈 수출을 다소라고 보상해 줄 수 있는 인기품목과의 구상무역을 허가를 요청하였다.

둘째, 제반 수수료의 감면과 시설의 완료 생산원가의 절하를 기하기 위하여 수출용 냉동 돈육에 충당되는 생돈의 도축세와 도축료를 감면하여 줌으로써 수출의욕을 증진시켜 줌은 물론 냉동시설의 확충과 수출용 축산물검사시설을 완비하여 대량수출이 가능하도록하여야 한다.
이외에도 수출가능한 해외수요국과의 제도적인 애로점을 타개하여 수출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을 것, 예를 들면 미국의 F.D.A.법에 의한 검사상의 저촉을 면하기 위해서는 축산물검역협정 등을 체결할 것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1968년부터 1971년 사이에 총 893,000달러의 돈육을 일본에 수출하였는데 이는 대부분이 냉동 지육이었다.


image03.png 그림 1-3 상공부 공고 제4,596호 자료 : 관보, 상공부 공고 제4,596호, 1967.12



두당 43kg (총 230두)

우리나라의 옛 화폐 단위. 1 은 1전(錢)의 100배이다. 1953년 2월 15일부터 1962년 6월 9일까지 통용되었다.

1950년~1960년대 도축 후 지육은 상온 유통되었다.

동아일보, “부산 콜레라 발생으로 일본 수출 무산”, 1963.10

경향신문, 1963.08.

경향신문, “냉동 지육 수출“, 1968.07.

CIF는 매도자가 상품의 선적에서 목적지까지의 원가격, 운임료, 보험료 일체를 부담할 것을 조건으로 한 무역계약이다. CIF가격이란 수출입 상품의 운임ㆍ보험료를 포함한 가격, 즉 도착항까지의 인도가격을 말한다. 반면 FOB가격이란 ‘본선인도가격’ 또는 ‘수출항 본선인도가격’이라고도 하며, 무역상품을 적출항에서 매수자에게 인도할 때의 가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통관통계 시에 수출은 본선인도가격(FOB)을, 수입은 운임 및 보험료 포함가격(CIF)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매일경제, “광성기업과 일본 제시가격 큰 격차”, 196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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